최영미 시인. 최 시인이 12일 '성추행' 관련해 일절 사과 없이 문단에 복귀한 고은 시인을 비판했다. [사진=최영미 페이스북]

최영미 시인이 '성추행' 관련 사과 없이 지난해 말 책 두 권을 낸 고은 시인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최 시인은 12일 오전 페이스북에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란 한 문구를 올렸다. 이는 지난 10일 고 시인이 신간을 출판하며 문단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나온 후 올린 첫 게시물이라 사실상 고 시인을 저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 시인은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최초로 폭로해 한국의 미투(METOO) 운동 시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난 2017년 종합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 제97권 겨울호에 '괴물'이란 제목의 시를 기고했는데, 이 시의 내용은 고 시인의 젊은 여성에 대한 성추행·성폭력이다.

최영미 시인이 12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짧은 문구. [사진=최영미 페이스북]

최 시인은 '괴물'에서 고 시인을 "En선생"으로 명명하고 그를 "괴물"이라 칭하는 한편 노벨문학상은 "노털상"으로 부르며 고 시인의 여성편력을 비판했다. 시 내용 중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TOO(나도 역시)/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실제로 최 시인이 고 시인의 성추행 대상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라는 시의 내용을 보면 최 시인은 성추행에 대해 실제로 고 시인에게 항의하고 문단 선·후배 사이를 의절한 것으로 보인다.

최 시인은 또 이 시에서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라고 해 문단 내에서 고 시인의 성추행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에도 암묵적인 방조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이에 더해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불쌍한 대중들"이란 문구에서는 고 시인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면서 그를 추종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도 엿보인다. 

최 시인은 시의 종반에서는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괴물을 잡아야 하나"라며 절망하기도 했다. 자신이 이렇듯 시를 통해 고발한들 문단 내에서 대선배이자 거물이 되어버린 고 시인의 진면목을 드러내기엔 역부족이란 것이다.

최영미 시인이 지난 2017년 황해문화 제97권 겨울호에 기고한 시 '괴물'. 여기서 '괴물'은 고은 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인스타그램]

최 시인은 시 '괴물'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 한 일간지를 통해 고 시인이 지난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술집에서 바지 지퍼를 열고 다른 여성에게 신체 특정 부위를 만져 달라 요구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 시인은 허위 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최 시인 등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냈지만 1·2심 모두에서 패소한 뒤에는 상고를 포기한 상태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이 지난 2019년 2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이 끝난 뒤 미리 준비한 글을 읽고 있는 모습.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15일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과 박진성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박진성 시인만 1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었다. 즉 최 시인이 소송에서 승리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고 시인은 지난해 말 책 두 권을 새로 발표했다. 하나는 『고은과의 대화』로 지난해 12월 15일 발간됐다. 다른 하나는 『무의 노래』로 그해 12월 20일자로 출판됐다. 성추행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고 시인은 이렇게 5년만에 다시 등단한 셈인데, 그는 여전히 "나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고 시인은 1958년 등단한 이후 1970년대까지는 순수문학만을 지향했지만 1974년을 기점으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며 저항시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가라기보다는 반미·친북·친미 정부에 대한 반정부 활동에 진력한 문인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더 크다. 또한 고 시인은 한동안 계속해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는데, 이는 좌파의 올려치기로 해석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고 시인이 훌륭한 시인으로 거론될 만큼의 시재(詩材)를 갖추지 않았음에도 좌파 추종자들에 의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능하단 식으로 부풀려졌다고 보고 있다.

고은 시인이 지난해 말 새로 내놓은 두 책 중 하나인 '무의 노래'. [사진=알라딘]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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