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박왕자 씨 피격 사건과 차별화 시도’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격당한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 씨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몰아간 이유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이씨 피살 3시간 만에 유엔총회에서 ‘남북화해 및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화상 연설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피하려는 의도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9일 전해졌다.

검찰은 서훈 전 실장이 당시 국정원으로부터 이대준 씨 피살과 시신 소각 사실을 공개할 경우 2008년 7월 북한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박왕자 씨 사건처럼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이씨를 북한 해역에 불법 침입한 월북자로 조작하면서 합법적 관광을 하다가 북한군에 피살된 박씨 사건과 차별화하려고 했다고 봤다.

법무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포함된 서훈 전 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공소장은 A4 용지 117쪽 분량이다.

검찰에 따르면 서 전 실장은 이대준 씨가 2020년 9월 22일 밤 북한군에 피살되고 난 뒤 정부의 부실 대응 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국방부와 해경 등에 관련 사실 은폐를 지시했다. 그러나 다음 날 이씨가 피살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서 전 실장은 9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씨가 월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정하고 김 전 해경청장에게 자진 월북 취지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훈 전 실장이 ‘(이씨의) 주변 인물 진술, 통화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월북 의도를 발견되지 않음’ 등 이씨의 자진 월북과 배치되는 증거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해경에 자진 월북 관련 지시를 내렸다고 봤다.

또한 검찰은 서 전 실장이 2020년 9월 23일 오후 해경으로부터 ‘이대준 씨 실종 및 수색 계속 중’이란 취지의 보도자료 초안을 보고받은 뒤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여기에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이 발견’ ‘목포에서 가족 간 문제로 혼자 생활 중’ 등의 내용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직접 가필한 것으로 파악했다.

서 전 실장은 이런 허위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도록 김홍희 전 해경청장에게 지시했고, 김 전 청장도 이를 해경 실무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또한 서 전 실장은 2020년 9월 23일 오전 9시께 열린 비서관 회의에서 “발생한 사건을 신중히 검토하겠다. 비서관들은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일부 반발한 비서관들은 사무실로 돌아와 "이거 미친 것 아니야, 이게 덮을 일이야?", "국민이 알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해? 알 수밖에 없을 텐데", "실장이 그러잖아. 실장들이고 뭐고 다 미쳤어"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같은 날 새벽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 서 전 실장의 은폐 지시를 받은 서욱 전 국방장관이 더욱 강도 높은 지시를 국방부에 내렸다고 검찰은 파악했다.

최고 수준의 작전보안 유지, 첩보 및 보고서 등 모든 자료를 삭제하고 출력물은 즉시 세절, 예하 부대가 관련 내용을 알면 화상 회의를 통해 교육 등을 이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56개 부대에 수신 전문,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 내 60건, 18개 부대 군 내부 정보 유통망 내 5천417건 사건 첩보 보고서가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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