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밤 핼로윈 파티를 즐기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라는 초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29일 저녁 이태원에서는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9일 저녁 이태원에서는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핼로윈 축제 참석했던 직장인 A씨 이야기 구술 정리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됐고, 일부 언론에서는 “젊은 영혼들이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날 밤 이태원 핼로윈 축제에 참석했던 30세 직장인 A씨는 펜앤드마이크와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국민적 애도는 충분히 이뤄져야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A씨가 전한 현장 상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응방향 등에 대해 구술정리한다.

이태원은 초저녁에 이미 포화 상태, 코스튬 여성들 저녁 7시30분쯤 이미 이태원 떠나고 있어

내 또래 혹은 나보다 더 어린 젊은이들의 죽음에 슬프지 않을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벌어진 ‘대형 압사 사고’라는 점에서, 준비가 미흡했고 대처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런 지적도 틀린 건 아니지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어제 이태원로에서 헤매던 젊은이 중의 한명이었기 때문에, 어제 상황을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점에서 좀 객관적으로 이 사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나는 국민의힘 지지자도 아니고,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다.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기에, 정파성을 띠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이 사고의 본질에 대해서 좀 한 걸음 물러나 , 이 사고에 대해서 담담하게 얘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어제 여자 친구와 함께 19시 30분쯤 이태원역에 도착해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하의 이태원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차 있었다. 올라가는길 뿐만 아니라, 내려오는 길도 사람으로 넘쳐났다. 올라가면서 온갖 종류의 디즈니 공주 코스튬을 차려입은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이 벌써 이태원을 떠나기 위해 지하철역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상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태원은 사람들로 포화돼 안전한 축제를 즐기기에 부적절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른 저녁 시간에 귀갓길에 오른 그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이태원역 출구는 초저녁부터 인파로 붐벼...평소 10분 거리 식당에 30분만에 도착

이태원역은 코레일 직원인지, 경찰인지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이 통제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2개만 열어놓고, 나머지는 전부 이태원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출구로 열려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많은 인원을 위한 통제는 지하철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지상으로 올라가자, 경찰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경찰을 비롯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는 식의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 생각된다. 적어도 현장에서 내가 느낀 바로는, 경찰들이 나몰라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 식사를 하려고 했던 남아공 가정식 식당은 4번 출구로 나가야했지만, 4번 출구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는 수없이 3번 출구로 나가서 돌아갔다. 평소 같으면 10분이 걸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30분 정도 걸려서 20시경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도 사람들이 넘쳐나서 웨이팅을 해야 했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나서 주위의 다른 식당을 알아봤지만, 이미 편안한 식사가 글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태원 식당에선 정상적 식사 불가능, 한강진역 식당으로 이동

코로나 전에도 핼러윈에 한두번 가본 적이 있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이태원을 거의 가보지 않았다. 어제의 인파는 내가 이태원에서 경험한 인파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만했다. 너무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서, 정상적인 식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대로는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판단을 하고, 한강진역쪽으로 가서 식사를 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파도에 떠밀리듯 넘치는 이태원로를 통과하기는 힘들 것 같아, 이태원1동 주민센터가 있는 언덕쪽을 지나 이슬람거리를 통해 제일기획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리움미술관 근처에 있는 초밥집에 20시 30분경 도착해 식사를 했다. 다행히 거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예 핼러윈 코스튬 차림의 고객에 대해서는 입장을 차단하고 있었다.

20대에도 친구들과 이태원을 방문해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있는 식당에 가서 가끔 식사를 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나 목요일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인파에 밀려서 다닌 적이 많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해밀턴호텔 방향 좁은 길은 평소엔 ‘오르막길’, 사고 당일 ‘내리막길’ 군중과 밀고밀리면서 비극 발생한 듯

이태원 압사 사고의 목격자가 사고 당일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누군가 밀쳤다는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관측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태원 압사 사고의 목격자가 사고 당일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누군가 밀쳤다는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관측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압사 사고가 발생한 내리막길은 ‘세계음식거리’에서 해밀턴 호텔쪽으로 향하는 폭 4m의 좁은 길이다. 거기에서 그런 사고가 어제 발생한 것은 어찌 보면 늦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제라도 그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고 생각된다.

지금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평소에 그 길은 오르막길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이태원 길은 사람이 통행하는 길도 일방통행하게 돼 있는 곳이 적지 않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내리막길이어서 사고가 커졌다고 한다. 따라서 사고 당일에 대규모 역주행 군중이 밀고 내려와서 ‘평소처럼 오르막길로 사용하던 군중과 밀고밀리는 과정에서 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의 명복을 빈다. 하지만 이 사고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생각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고를 막지 못한 경찰과 소방서, 또 심지어는 용산구청 담당자와 용산구청장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 현장에서 미리 통제를 하고 있던 경찰들과, 부리나케 현장으로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잘못을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보다는 핼러윈의 흥분과 격정에 사로잡혀 위험한 순간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당시 분위기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내리막길에서 인파의 이동이 멈춘 상황에서 누군가가 “내려가! 내려가”라는 구호로, 군중의 이동을 압박한 것이 큰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순간 차분한 질서 의식과 이성적인 판단으로 기다렸다면, 이렇게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축제의 자유 즐기기 위해 경찰의 통제 요구?

30세 직장인 A씨는 친구들에게 '이태원에서 압사당할 뻔했다'는 심경을 전했다. [사진= 직장인 A씨 카톡 캡처]
30세 직장인 A씨는 친구들에게 '이태원에서 압사당할 뻔했다'는 심경을 전했다. [사진= 직장인 A씨 카톡 캡처]

한강진역에서 식사를 마친 후, 지하철로 약수역의 카페로 이동해 다른 친구들을 기다렸다. 내가 친구들에게 ‘이태원 갔다가 압사당할 뻔’이라고 카톡을 남긴 시간은 오후 10시 58분이다. 약간의 과장을 더해 ‘압사당할 것 같은 느낌’을 친구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건 오후 11시 39분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고의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의 내리막길에서도 질서를 찾으려는 시민의식이 있었더라면, 끔찍한 압사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축제의 자유를 즐기기 위해서 경찰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모순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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