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경기도·아태평화교류협회와 北 통일전선부의 대북거래
아태평화위원회와 이종혁의 실체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018년 11월 15일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의원회 부위원장은 판교 테크노밸리를 방문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과 비공개 회담한 후 자율주행차 '제로셔틀'을 함께 탔다. 이 부위원장은 당일 저녁 숙소인 고양 엠블호텔 1층 중식당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만찬을 했다. 이 대표와 이 부위원장은 만찬 이후 배석자 없이 따로 단독으로 만나 환담했다. (사진=연합뉴스)

북측의 외화벌이와 경협 등의 대남전술

"뭘 한 게 있다고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북측 이선권(리선권)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 오찬장(옥류관)에서 우리측 기업인들을 향해 내뱉은 말이다. 이선권은 이런 막말에도 외무상을 거쳐 당 중앙위 정치국 위원, 통일전선부장으로 승진해 대남·대외 통일전선사업을 이끄는 실세가 됐다. ​

이선권이 김정은이나 당 고위층에 잘 보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거친 표현을 쓴 것이지만, 그 막말의 속내에는 대북 경협에 나서지 않는 우리 대기업들에 대한 분노와 초조함이 담겨 있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강도가 세지면서 우리 대기업들은 북측에 투자는 물론이고 인도적 지원조차 꺼리고 있다. 김정일이 통치하던 시기에 현대아산이 남북경협을 이끌었으나, 최근 몇년 사이에는 그마저 중단됐다. 문재인 친북세력이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우리 대기업들을 북측의 아가리에 밀어넣으려 갖가지 책동을 했지만 삼성 등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형식적인 제스쳐만 취할뿐 실질적인 대북투자나 인도적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강도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북측에 발을 들이는 순간 리스크만 더 커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국과 EU, 호주, 캐나다, 일본 등의 대북 감시망도 점차 강도가 세지고 있다. 무기 판매 및 인력 수출, 마약 판매 등 쏠쏠했던 북측의 외화벌이조차 1/10로 줄어들고, 우리 대기업의 대북투자 중단은 물론이고 그나마 운영되던 개성공단까지 문이 닫히니 김정은의 통치자금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북측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동당 정찰총국 소속의 '라자루스 그룹'과 같은 해킹조직을 동원해 방글라데시 은행(9억5000만 달러 규모) 등 은행의 현금을 탈취하는가 하면, 가상화폐 기업과 거래소를 노린 사이버 공격도 시도하였다. 라자루스는 블록체인 게임인 액시 인피니티의 가상화폐 6억 달러 탈취를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가상화폐 해킹은 미 CIA와 FBI, 재무부에 발각돼 물거품이 됐다. 라자루스 소속의 박진혁(박광진)은 이 사건 외에도 소니 픽쳐스 해킹과 북한발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공격에 가담한 것이 발각되어 미국의 요청으로 인터폴 수배 최고 단계인 '적색 수배' 대상이 되었다.

​또한 북측은 문재인 정권 당시 크게 논란이 된 석탄 밀거래 반입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베트남, 러시아, 남아시아해 및 중국 주변 해상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넘나들며 밀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AIS(선박자동식별장치)를 부정 조작해 배의 위치를 숨기는 등의 교묘한 수법으로 외화벌이를 충당하고 있다.

여기에 북측의 지하자원, 관광, 물류, 철도 등의 대규모 이권을 노리는 국내 중견·중소기업과 지자체를 포섭하는 대남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쌍방울(KH 등)과 경기도, 아태평화교류협회, 동북아평화경제협회 등이 북측의 대남전술에 걸려든(또는 협력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북측에서는 통치자금 등 경제적 이득도 얻는데다 한국 내에 친북세력을 강하게 안착할 수 있으니 통일전술사업의 좋은 먹잇감인 것이다.

쌍방울·경기도·아태평화교류협회와 북측 통일전선부의 대북거래

2018년 8월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은 북측의 초청으로 3박 4일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이들은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원회) 대표단과 남북경제협력을 협의하고, 그해 11월 경기도에서 개최 예정인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이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2월 중국 심양에서는 이화영 부지사, 김성태 쌍방울 회장, 안부수 아태협 회장과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관계자가 만나 북한 지하자원 개발 및 대북송금 관련 사항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자원 개발권 관련 대상 기업은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이다. 이때 등장하는 북측 인물이 '북한 외화벌이 총책'으로 불리는 이호남(리호남) 참사다. 이호남은 영화 '공작'에서 등장하는 흑금성의 대북 파트너인 이명운(리명운)으로 실제 인물이다. 국정원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화영과 김성태 등이 북측 이호남과 만나 나눈 대화 중에는 쌍방울이 북한 지하자원 개발 대가로 '쌍방울 내의 50만 장을 보내기로 약속했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000만 달러 규모이다. 그해 12월 말에는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안부수 아태협 회장이 방북하여 북측 고위 인사에게 7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소식도 공개됐다. 이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직전에 2018년 1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국제대회)'가 개최됐는데, 이 자리에 이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이 행사에 북측은 이종혁 부위원장 등 5명이 참여했고, 경기도 및 정치권 등에서도 많은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 행사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행사에 쌍방울은 수억원을 후원했다.

2018년 11월 행사에는 이해찬계·이재명계 인사들이 많이 참여했다. 이해찬 전 더불당 대표와 정세현 전 장관, 홍익표, 김경협, 김한정, 박정, 최경환, 김병욱 등의 국회의원, 이한주 경기연구원장, 다수의 경기도의원 등이 참석했다. 국제대회 전날(15일)에는 이재명이 이종혁 등 북측대표단을 판교테크노밸리에 안내하여 자율주행차 시승과 스타트업캠퍼스의 3D 시연 등 산업시설을 참관시키고, 이종혁의 부친 이기영의 소설 '고향'을 건네는가 하면, 경기도농업기술원을 방문해 장미 신품종을 선물하는 등 (준)국빈급으로 대우했다. 당일 저녁 만찬이 끝나고 이해찬과 이종혁은 별도의 배석자 없이 비공개 회동을 진행했다. 당시 김정은의 서울 답방 등에 대해 논의했을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도 있었는데, 두 사람의 비공개 회동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든 대북제재를 우회한 대북 밀거래든 중대 사안을 협의했을 것이다. 이해찬은 이종혁에게 어떤 제안을, 이종혁은 이해찬에게 어떤 요구를 했을까.

이후 이화영 부지사와 쌍방울·아태협 관계자들은 2019년 1월과 5월 중국에서 북측 인사를 만났다. 1월에는 중국 선양에서 아태평화위원회와, 5월에는 중국 단동에서 민경련 관계자를 각각 만나 '경제협력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합의를 통해 쌍방울(나노스)은 지하자원 개발, 관광·도시 개발, 물류·유통, 에너지, 철도, 농축산 등 6개 분야의 '우선적 사업권'을 획득했다. 이 합의에는 쌍방울이 지하자원 개발 관련 우선적 사업권 취득에 따른 대가를 북측에 추후 지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재명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쌍방울과 아태협 관계자가 중국 선양 등에서 북측 인사에게 수십억 원을 송금한 정황을 포착했다. 2019년 쌍방울 임직원 60여 명이 1인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돈을 쪼개기 방식으로 중국으로 밀반출하여 북측 인사에게 전달한 진술을 확보하고 현재 수사 중이다. 한 쌍방울 관계자는 "북한 관계자들에게 환전한 돈과 함께 말안장 등 고가의 사치품 선물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북한에서 말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말안장 등 고가의 선물은 김정은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검찰은 쌍방울이 북한 지하자원 개발사업을 추진하던 시점에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역시 남북 광물자원 협력 사업을 주요 사업으로 내세운 점이 대북거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이화영이 2008년 만든 단체로 설립 초기부터 이사장을 맡았다가, 2018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된 이후에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쌍방울은 2013년 중국 당국으로부터 '북한 내 위탁가공사업'을 허가받았지만 통일부의 미허가로 결국 사업을 하지 못했다가, 이화영이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부임하자 쌍방울그룹 고문(이후 사외이사)을 맡았던 그를 통해 대북사업을 재개했다.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는 2018년 1분기 평균 주가가 2650원에 불과했는데, 2019년 5월에는 7550원으로 크게 올랐다. 쌍방울은 이화영을 통한 대북거래로 주가 부양의 재미도 본 것이다. 2017년 2월 나노스의 전환사채 200억원을 인수한 쌍방울은 2019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몇 차례에 걸쳐 전환사채 180억원에 대한 전환 청구권을 순차적으로 행사해 약 1600억원 정도를 벌었다. 이재명과 이화영의 지원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은 쌍방울은 이 돈을 어디에 썼을까.

쌍방울의 대북 송금 외에도 경기도와 아태협은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식량, 묘목, 방역마스크와 방호물품 등 다양한 명목으로 북측을 지원하였다. 경기도와 아태협의 예산 및 결산서류 등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수십억원에 이른다. 또한 아태협은 만수대창작사의 북한 그림 40여점을 국제대회 행사에 전시(이 그림 중 3점만 통일부 반입 승인된 것)하고, 2021년 11월 '이재명 대북코인'으로 불리는 가상화폐 'APP427'을 발행하여 태국 가상화폐거래소에 상장했다. 버질 그리피스가 개발에 참여한 이더리움의 기반의 가상화폐를 국제 제재 회피 및 자금 세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도 확인하고 있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장관의 미국 출장이 이 사건 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관련 가상화폐 의혹으로 불똥이 튀었다.

​이 모든 대북거래의 중심에는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인 아태평화위원회와 민경련이 있다. 특히 아태평화위원회는 대북거래를 주도했고, 비밀스럽게 추진된 이 대북거래를 실질적으로 관장한 인물이 이종혁이다. 그는 어떤 인물일까?

아태평화위원회와 이종혁의 실체

아태평화위원회(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김일성이 사망하기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에 북한 중앙방송에서 처음 언급됐다. 실제로는 1992년에 설립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단체이다.

노동당 대남비서로 알려진 김용순이 통일전선부장을 담당하며 아태평화위원장을 겸했다. 2003년 의문스런 교통사고로 김용순이 사망한 이후 통일전선부장은 임동욱, 김양건, 김영철, 이선권 등으로 바뀐다. 현재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은 아태평화위원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등이다.

​초기 아태평화위원회는 3명(송호경, 전금철, 이종혁) 부위원장 체제로 운영되었다. 2004년에 송호경이, 2007년에 전금철이 사망하면서 이종혁이 그 업무를 대체했다. 이종혁은 2020년경 와병설이 제기된 잠깐의 시기를 빼고는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활동을 멈춘적이 없는 통일전선부의 베테랑이다. 당초에 아태평화위원회는 미국과 일본과의 민간교류용으로 만들었으나,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사실상 남북관계에 전념했다가 2000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일수교협상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생기자 대남·대외업무의 유일 창구였던 아태평화위원회 업무 일부를 민경련과 민화협으로 이관했다.

​이종혁은 1936년 강원 출생으로 월북작가 이기영의 아들이다. 이기영은 북한에서 조선문학예술총연맹 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역임한 고위 관료로 1984년에 사망했다. 이기영의 작품은 '두만강' '고향' 등이 있는데 이종혁이 2018년 경기도 주최 국제대회에 참석했을때 이재명이 '고향'을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이종혁은 그의 부친의 작품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며 한동안 그 책을 보았다고 한다. 이종혁은 북한에서 부친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나 했을까.

이종혁은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와 국제관계대학 불어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외무성에서 교육을 이수한 후 프랑스 유네스코 대표부 대표로 갔다가 1985년에 세계식량기구(FAO) 북한대표로 파견되었다. 북측이 FAO 북한대표로 보낸 이유는 대내외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북측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교황을 초청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바티칸 교황청과 비밀협상을 위해 그를 이탈리아에 보낸 것이다. 그는 1987년에 교황청 대표단의 첫 방북을 성사시켜 김일성·김정일로부터 칭찬과 선물을 하사받았다.

이종혁은 1994년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통일전선부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1995년에는 당 중앙위 부부장, 1997년에는 조국통일연구원 원장도 겸한다. 김일성훈장과 조국통일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북-독일, 북-영국, 북-유럽동맹, 북-이탈리아 친선의원단 위원장을 맡는 등 대남·대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종혁은 1995년 2월에 북측 고위인사로는 드물게 미국을 공식 방문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과 김정일의 밀약(주한미군 철수 등)에 김용순과 함께 개입하는가 하면, 2002년 북일정상회담 성사 관련 막후 역할 및 후속조치를 담당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학술토론회'에 북측 대표로 참석하여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정일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김대중과 면담했다. 2006년에는 김대중 재방북을 위해 단장 자격으로 방남했고, 2009년에는 금강산관광사업 북측 총책 자격으로 현정은 회장 등의 방북단을 영접했다. 2011년 김정일 사망시 이희호와 현정은 등의 방북 조문을 위해 이들의 평양 방문을 영접하는가 하면, 2016년에는 조국통일연구원 원장 명의로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문재인 평양 방문 특별수행단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면담에 참석하고, 2018~2019년에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남북국회회담 개최 및 우리측 국회의원과 협의 등의 활동을 했다.

이종혁의 형은 이평이고, 형수는 성혜림이다. 성혜림은 김정일의 첫사랑이자 동거녀로 알려져 있다. 예술단을 자주 드나들던 성혜림은 김정일의 눈에 띄었고, 김정일과 성혜림은 동거를 시작하였다. 당시 성혜림은 이평의 아내였으니 김정일과 불륜을 한 것이다. 김정일은 이평을 성혜림과 이혼시킨 후 젊은 여자를 딸려 프랑스 주재 북한 유네스코 대표부로 발령내 북한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1971년 김정남이 태어났다. 김정일은 첫 아들 김정남을 낳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기쁨조에 둘려싸여 지냈던 김정일도 자기 자식은 좋았던가 보다. 동거와 김정남 출생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 압박 등으로 심한 신경성 질환으로 건강이 악화된 데다 김정일이 고용희(김정은의 모친)를 아끼자 성혜림은 북한을 떠나 모스크바와 스위스를 전전하며 치료와 떠도는 생활을 하다가 2002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외롭게 죽었다. 이런 사실은 1982년 한국에 망명한 이한영(성혜림의 조카)에 의해 알려진다. 그는 로열 패밀리라는 책을 통해 김정일 개인사 등 평양 로열 패밀리의 실상을 낱낱히 공개했는데, 199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자기가 살던 아파트 앞에서 총으로 피살 당했다.

​이종혁은 김정일 대학 동창으로 고위직에 진출한 드문 케이스이다. 김정일 대학 동창들은 김정일의 패륜적이고 방탕한 사생활이나 가혹한 행동 등을 알기에 김정일 우상화 작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쫒겨나거나 지방으로 좌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종혁은 통일전선부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승승장구했다. 부친의 후광에다 김용순 노동당 대남비서(통일전선부장)와 김기남 노동당 선전비서가 뒤를 받쳐준 것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렇듯 40여년간 통일전선부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이종혁이 쌍방울과 경기도에 빨대를 꽂고 우리 내부에 깊이 들어오고 있다.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현정은 회장, 백낙청 교수 등 많은 한국측 인사들이 평양 방문시 이종혁은 방북 인사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남북협력사업을 주도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을 비롯해 민족통일대축전과 6·15남북공동선언 행사 등을 매개로 국내 인사들과 깊이 교우해 왔다. 일본에서는 조총련을 매개로 했고, 미국에서는 정기열 목사 등 친북인사들과 연계해 대남공작을 주도했다. 특히 일제 강제동원 관련 활동을 주도하면서 평양과 서울, 일본, 미국 등에 대남공작의 기반을 축적하고, 친북반한의 어두운 그늘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월맹군)이 수도 사이공을 함락하면서 남베트남(월남)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당시 남베트남군은 70만명의 병력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의 지원으로 전투기 600여대, 헬리콥터 900여대를 보유한 세계 4위의 막강한 군사력 보유 국가였다. 그러나 단 10만명의 북베트남군에게 무너졌다. 남베트남의 패망은 체제와 외부의 공격, 각종 위협을 군사력만으로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군사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게 국가 내부로 침투해 오는 스파이와 오염된 사상, 정치공작과 선전선동 등 통일전선전술을 막아내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당시 북베트남의 지휘부였던 '베트남노동당'은 남베트남의 정부기관, 군대, 경찰, 종교계, 언론계, 학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북베트남 공작원을 침투시켰다. 공작원들은 각 분야의 인맥과 정보망을 구축하여 수집된 정보를 북베트남 정보기관에 보냈고, 반정부·반미(미군 철수, 평화협상 등) 선전선동 활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였다. 특히 베트남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승려와 신부들을 포섭하여 북베트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하였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이 바뀔때마다 대공정보기관의 인력들이 교체되어 대공정보기관의 감시망이 무력화되는 상황을 틈타 북베트남 공작원은 행정부 및 정보기관, 군대 등에 쉽게 침투하거나, 남베트남 내부에 통일전선을 지원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로이터 베트남지사에 근무한 스파이 '팜 쑤언 언'은 정치권, 군대, 정보기관, 언론계, CIA베트남지부 등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여, 498건의 보고서를 북베트남 정보기관에 보냈다. 대통령 정치보좌관 '후잉 반 쫑'은 국가정보에 쉽게 접근하여 북베트남을 지원하였다. 1967년 남베트남 야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쯍 딘슈'는 미군 철수, 대화를 통한 평화 구축, 민족단결과 반미·반전 등을 내세웠는데 베트남통일 후에 밝혀진바에 의하면 '쯍 딘슈'는 북베트남이 직접 파견한 간첩 공작원이었다. 이 외에도 녹따오 도지사, 창반만 사이공 경찰장관, 티우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북베트남과의 내통으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의 정치, 군사, 정보, 반정부 활동 등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였다. 한 번 무너진 정보 및 공안기관은 회복이 불가능했고, 북베트남 공작원들의 스파이 활동과 정치공작, 선전선동은 남베트남을 급속하게 붕괴시켰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간첩 잡는 국정원의 존재는 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 시기인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은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쳤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의 골자는 대공·대정부전복 등 국내 보안정보 수집 및 작성, 배포를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제외하고, 국정원이 가진 일체의 수사권을 폐지(3년 유예)하는 것이다. 2024년 1월이 되면 국정원은 공안 관련 정보 수집 및 수사를 할 수 없다. 검찰의 공안부도 '공공수사부'로 변경했다. 당시 문재인 정권은 선거·노동사건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공공수사부로 변경한 것이라 변명했지만 저들의 속내는 검찰의 대공 업무를 없애는 것이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인계 받을 경찰의 안보수사 인력과 예산도 20% 이상 오히려 줄었다. 문재인 정권이 북측의 대남공작과 공작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미 CIA와 FBI, 재무부는 유엔의 대북제재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면서 북측의 각종 불법 거래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좌절시키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경계해야 할 한국은 정보 및 공안기관의 손발을 묶고, 북측의 대남공작과 간첩 활동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친북세력은 물론이고 일부 보수 성향의 인사조차 좌익들의 통일전술에 현혹되어 북측과 지나치게 대립하지 말고 남북교류와 경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 간의 군사합의서 등 김정은의 위장된 평화쇼에도 한때 열렬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북측의 대남공작과 위장 평화쇼가 중국공산당과 베트남노동당의 통일전선전술과 동일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무너진 안보와 국가수호의 담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북측의 대남공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대응할 강력한 의지와 전략은 있는가. 수동적인 방어에 그치지 않고 북한 체제를 흔들 대북전략은 준비, 추진하고 있는가.

​쌍방울·경기도와 북측의 대북 밀거래의 전모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대북거래의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국가안보 관련 기관들을 새로 정비하고, 흩어진 국민들을 결집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통일전선전술의 위험성을 각인시키고 전파하여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인 방어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언론과 지식인, 국민들을 일깨우는 것이고 국정원, 방첩사령부, 군대, 검찰, 경찰 등 국가안보의 최일선에 있는 대공기관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국정원과 방첩사령부(기무사령부), 검찰의 대공수사 기능을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위기다. 위험이 더 확산될지 기회가 될지 기로에 섰다.

허현준 前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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