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18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다.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던 여왕이었기에 전 영국인의 애도 속에서 2천여 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 내외도 참석하여 한국민을 대표하여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세계평화에 대한 공헌을 기리는 예의였고, 한국과 영국 간의 우호 관계를 다짐하는 노력이었으며, 또한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과 어울려 국익을 선양하는 외교활동이었다. 장례식 전날 저녁에는 여왕의 장남 찰스 3세가 주최한 리셉션에 김건희 여사와 함께 참석하여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귀빈들과도 환담하였다. 장례식 후에는 시내 한 호텔에서 6.25 참전용사협회 빅터 스위프트 회장에게 국민포장을 수여하였다.

장례식 전날 오후 2시 이후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영국 정부의 안내에 따라 장례식 후에 조문록에 서명하였다. 이에 대해 난데없이 SNS를 통해 외교홀대, 외교참사(?)라는 찌라시 뉴스가 튀어나오더니 공영방송에서까지 흠집 내기에 달려들었다. 모나코 국왕, 그리스 대통령, 오스트리아 대통령, 이집트 총리, 리투아니아 대통령 등도 영국 정부의 안내대로 장례식 후에 조문록에 서명했으나 그 나라에서 외교홀대, 외교참사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유치한 의전 논쟁으로 대통령을 깎아내리자는 것이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미동맹 강화나 자유민주주의 연대에 반대한다면 정정당당하게 비판하면 될 것이다. 정론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사실 왜곡과 좀비 식 트집 잡기로 여론을 호도하려는 악의가 발동하였다. 공중파를 독점하여 국민 세금을 축내고 있는 김어준도 중심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광우병 파동의 진원지 역할을 이번에도 재현하려는 것 같다. 의상 전문가인 양 김건희 여사의 베일 달린 숙녀용 검정 모자가 의전에 맞지 않는다는 둥 헛소리한다. 문재인 대통령 때 행사기획을 담당했던 탁현민도 방송에 나와 열을 올리니 더욱 의심스럽다. 공중파 텔레비전에서는 대담프로까지 만들어 야당 의원들이 근거도 빈약한 의전 논거를 들먹이며 국익이 손상되었다는 비난을 퍼붓는다. 문 대통령의 중국 공식방문 시 혼밥 논란이나 수행기자 폭행 사태와 같은 홀대에 사과라도 했다면 일관성이라도 있겠다.

근거도 없는 요설로 조직적인 흠집 내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광우병 소동으로 정권을 좌초시켰던 단맛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광우병 파동으로 겨냥했던 목표와 계산이 깔려 있다. 소위 '개딸들'이라는 무뇌 집단이 인터넷 댓글을 점령하여 김어준 류의 오염된 얘기를 퍼 날라 증폭시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토요일 저녁마다 한경연과 민노총을 중심으로 거리 집회와 행진으로 광우병 사태를 재현시키려고 계속 불씨를 키워가고 있다. 전형적 선전 선동의 길을 걷고 있다.

가정에도 예절이 있고, 마을에도 범절이 있으며, 국가에도 권위와 격식이 있다. 그런 것을 통틀어서 의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틀에 얽매여서 논쟁을 위한 논쟁을 부추긴다면, 마치 조선 왕조가 쇠퇴의 길로 빠질 때 벌어졌던 상복 논쟁처럼 정적을 제거하려 했던 당쟁의 이전투구가 되어버린다. 아니 그보다도 더 저질인 이념공세일 뿐이다. 명분 없는 개싸움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왕조시대나 개도국 시기에 특히 까다로운 의전 논쟁이 기승을 부렸다. 권위주의 정권일 때 의전을 끔찍하게 중요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분초를 가려서 행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행사 참석자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까지도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독재사회, 특히 공산국가의 의전이 특히 까다로웠다. 북한의 김정은을 떠받드는 행사가 가장 좋은 예다. 김정은의 눈에 거슬리면 처형되기도 한다. 무시무시한 사회에서 의전을 뭔가 대단한 것처럼 신성시한다. 그래서 의전 담당자나 경호책임자의 특권이나 위세가 대단하다. 주군을 모시는 의전을 담당하는 자가 호가호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모름지기 현대의 선진적인 의전이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의식으로 진화하였다. 과거 봉건시대처럼 칼로 베어내듯 엄격한 의전이나 분초까지 신경을 쓰는 형식에서 벗어났다.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금기사항처럼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다. 봉건시대의 의전은 왕이나 독재자와 같은 주인을 만족시키지만, 의식에 참여하는 거의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현대사회는 주인이나 손님이나 모두가 만족하는 너그러움을 강조한다.

필자는 한국 민주화의 초석을 놓은 김영삼 대통령의 의전관 책임을 맡았었다. 의전은 본질이 아니라 절차 문제에 해당하기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김 대통령은 “의전, 어렵게 생각하지 말레이. 상식대로 하면 되는 기다.” 나는 그 말씀 속에서 민주사회에 걸맞은 의전을 하라는 뜻을 읽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는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와 같은 과감한 조치로 각인되었지만, 일상 대통령의 행사에서 국민과 함께하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분초를 다투는 의전보다는 물 흐르듯 하는 의전, 상식이 통하는 의전이 대통령을 국민과 가깝게 하였다.

대통령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경호 요원들의 모습도 확연하게 줄였다. 민주화 전과 후의 행사 기록 사진을 비교해보면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청와대 앞길 개방과 인왕산 개방도 김 대통령이 국민과 가까이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제는 김 대통령이 깔아놓은 민주주의 사회, 그리고 현대사회의 의전이 정권이 몇 번 바뀌었어도 이어지고 있다. 이 자체가 한국의 선진화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 국가 의전을 민주화하는 중심에 있었고, 그것이 발전하던 과정을 관찰해 왔다. 이번 의전 참사라는 엉터리 논쟁을 발화시킨 데에는 무언가 나쁜 의도가 숨어있음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시대착오적이라기보다는 제2의 광우병 사태를 겨냥한 책동에 불과하다.

발화하는 과정을 보라. 짜인 각본에 따라 유치한 논리를 차츰차츰 증폭시켜 정권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논리가 틀렸어도 목적을 위해 계속 우기는 것이다. 시시한 사례들을 반복 거론하여 중대한 본질을 덮어 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윤 대통령의 유엔참석 기회에 다자외교의 장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이 너무 허술하다느니, 일본에게 너무 저자세라느니 하더니, 대통령의 혼잣말이 미국에 대해 비속어를 썼다느니 하며,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집중하였다. MBC의 조작된 뉴스 보도로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깎아내리고 한미동맹에 흠집을 내려 하였다. 심지어는 외교홀대, 외교참사라는 억지 명목으로 외교장관 불신임안을 169명 전원의 이름으로 제기하여 가결하였다. 외교 수장으로 가장 출중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을 제물로 삼아 정쟁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외교정상화의 길을 막으려 한다. 나라의 품격이 다시 한번 가라앉으려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만으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모두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국가 주요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시시비비를 따지고 건전하게 비판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 풍토가 저질의 의전 논쟁에서 졸업하고, 국민이 건전한 상식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토론이 가능할 때 선진국, 선진사회가 되는 것이다.

10월 3일 개천절 날 계속된 빗속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 운집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 통일 정책을 지지하였다. 광우병 소동 제2탄을 노리는 좌파 집단의 악의적 책동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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