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은 사실상 민노총 구제법...노조의 불법 파업도 용인하라는 식
'폭력·파괴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은 대표적 독소조항
文정부 집권 때도 통과시키지 못한 '노란봉투법'...이제와 민생 법안으로 포장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56인이 9.14일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 법률안’(노란봉투법)은 지난해 8월 민주노총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의 통제센터 불법 점거 및 올해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불법 독(dock) 점거와 무관치 않다.

두 사건에 대해 현대제철과 대우조선해양은 비정규직 지회와 하청지회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거나 낼 예정이다. 하지만 야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업들은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손배소를 제기할 수 없다. 노란봉투법은 귀족노조의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있다.

동법의 제안 이유를 보면, 노조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배상청구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그 금액에 상한이 없어 노동조합의 활동이 위축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근로자, 사용자, 노동쟁의의 정의 규정을 수정하고,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확대하며,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는 등 조항을 개정 및 신설하여 개인 등에 대한 불합리한 손해배상을 제한하고,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O ‘노란봉투법’이 사실상 민주노총 구제법이나 다름없는 이유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을 펼쳐 온 시민단체 ‘손잡고’가 지난 2020년 말 펴낸 ‘노동권과 손해배상 가압류-소송기록 자료집’을 보면 2020년 기준 노조 대상 손해배상 소송은 59건이었다. 손해배상 청구액 658억5028만원, 가압류 금액 181억7000만원이었다. 동(同) 조사에 따르면 59건 중 노조가 없는 곳 1건을 제외한 58건(98.3%)이 모두 민노총 사업장이었다. 민노총 내에서도 금속노조(48건·81.4%)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손해배상 청구액을 기준으로 보면 전체 99.6%(656억28만원)가 민노총 사건이고, 그 중 금속노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97.0%(638억9016만원)이다. 금속노조와 연관된 주요 손배소 사건을 적시하면 현대차 비정규직지회(207억6891만원), 한진중공업지회(158억9338만원), 쌍용차지부(128억1144만원) 등이다.

실태 조사를 한 ‘손잡고’는 한국노총은 노동 현장 손해배상 청구 내용이 없었다고 했다. 노란봉투법 입법 추진을 위해 지난 14일 출범한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에 민노총과 민변, 참여연대 등 93개 단체가 참여했지만 한국노총은 참여하지 않았다. 손해배상 대상 사업장이 없기 때문이다.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부분이 민노총, 특히 금속노조에 몰린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 만큼 금속노조 산하 노조의 투쟁 수위가 높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폭력적’이었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누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지’ 자명하다. 노란봉투법으로 민주노총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면, 노동조합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정의당과 민주당은 민노총 ‘구원투수’를 자처한 것이다. 공당(公黨)이 특정 경제세력과 손잡는 것에 동의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 ‘손잡고’는 ‘노(勞)와 정(政)’이 손잡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힐난을 자초하고 있다.

O ‘노란봉투법’의 시대착오적 독소저항

노란봉투법의 최대 쟁점은 현행 노조법에서 인정하는 ‘합법 쟁의행위’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를 넘어, 노조의 ‘폭력·파괴행위’까지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입법을 발의한 쪽에서는 ‘폭력이나 파괴 행위 등으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당연히 배상책임이 있다’고 항변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삽입돼있다.

대표적 독소조항은 ‘폭력·파괴 행위가 노조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면 노조 임원, 조합원, 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대로라면 회사 점거 과정에서 노조원들이 회사 시설과 기물을 대거 파괴했다 하더라도 이 행위가 노조 차원에서 계획한 것이라면 개인한테는 소송을 걸 수 없다. ‘노조가 계획한 것을 실행한 조합원은 무죄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조 존립이 불가능해지면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도 독소적이긴 마찬가지다. 손해배상의 취지는 ‘불법 쟁의로 인한 손해를 배상케 함으로써 노조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는 대형 폭력·파괴 사태를 일으켜 회사 측의 손해액이 커질수록 노조가 소송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황당한 조항이다. 이처럼 조합원과 노조에 비상구를 열어주면 노란봉투법은 ‘파업 방조 및 조장법’으로 기능하게 된다.

노란봉투법은 ‘위헌 소지’마저 있다. ‘위법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조법에서 규정한 ‘쟁의 행위는 사회 질서에 위반돼서는 안 되고(37조),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수단으로 할 수 없다’는 조항(42조1항)과도 충돌한다.

노란봉투법이 노조법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바꾸려는 것도 문제가 많다.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근로자 관계로 인정받으려면 둘 사이에 구체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해야 하는데,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정의를 ‘사실상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 근로자를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이런 식으로 바꾸는 건 현행 노사 관계의 틀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근로만 제공하면 특정 기업의 근로자가 되고, 민법상 ‘도급(都給) 계약’에 기초한 원·하청 관계가 부정되어 원청은 하청 노조와 직접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

밖으로 눈을 돌려봐도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독일에서는 노동조합이 정당하지 않은 파업을 한 경우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에게 영업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했다. 공공 부문 노조 등 조합원 10만명 이상인 노조에 적용되는 손해배상 상한액을 기존 25만파운드에서 지난 7월 100만파운드로 4배로 올렸다. 노조 활동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프랑스는 1982년 ‘노조의 모든 단체행동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도록’ 법률을 개정했지만, 헌법위원회의 위헌 결정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도 노조의 불법행위는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O 5년간 낮잠 자온 노란 봉투법, 이제 와서 ‘노동개혁 및 민생법’이라나

‘노란봉투법’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 민주당이 야당일 때 추진했던 법이다. 당시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노란봉투법’은 낮잠을 잤다. 지난 2020년 말 문재인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추가 비준하면서도 노란 봉투법은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동개혁법 그리고 민생 법안으로 포장해 이번 정기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169석 거대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요량이라면, ‘다수의 힘’을 빌린 의회 폭정을 서슴지 않겠다는 것이다.

발을 뻗으려면 발 뻗을 자리를 보고 뻗으라는 속어가 있다. 23일 미국의 연방제도이사회가 연속 3번 자이언트 스텝을 밟음으로써 원화의 미 달러대비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다. 한국에서 환율과 금리는 이미 정책변수로서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미국의 결정을 추종할 뿐이다. ‘빚투와 영끌’로 꼭지에 찬 가계부채를 감안하면 실로 대한민국은 미증유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 와중에 정치권이 겨우 한다는 것이 노조 편향적 노란봉투법 발의다. 한국 정치의 정파성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법리적으로도 타당성이 결여된 법안으로 勞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勞로 뒤집어진’ 운동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노란봉투법은 귀족 노조에 날개를 달아주어 노동쟁의를 부추길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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