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의 고금리정책으로 인플레이션 현상이 고착화된 가운데 경기후퇴(Recession)의 공포가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생산과 소비가 감소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동시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업생산과 소비가 감소하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 채소 판매대에서 시민이 장을 보는 모습.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먹거리 물가는 1년 전보다 8.4% 올라 2009년 4월(8.5%) 이후 13년 4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 채소 판매대에서 시민이 장을 보는 모습.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먹거리 물가는 1년 전보다 8.4% 올라 2009년 4월(8.5%) 이후 13년 4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예견하면서 민간중심 경제성장을 해법으로 제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예견하면서 그 해법으로 민간중심 경제성장정책을 제시했다. 민간기업의 연구개발과 투자확대를 핵심대책으로 정립한 것이다.

진보성향 경제학자들이 요구하는 소비진작책을 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확장재정 대신에 부채비율을 줄이는 건정재정에 방점을 뒀기 때문이다.

결국 민간분야 신규투자 확대가 관건이다. 하지만 국내외 투자주체들은 위축돼 있다. 금리급등 기조로 인해 글로벌 증시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투자 손실이 큰 상태이다. 신규투자를 유도할 동력이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결국 정부가 민간 중심 경제성장을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을 돌파하려면 파격적인 규제개혁을 통해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덕수 국무총리와 취임 후 첫 주례 회동을 하고,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가시화할 수 있게 각종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덕수 국무총리와 취임 후 첫 주례 회동을 하고,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가시화할 수 있게 각종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현실화되는 경기침체 시나리오=글로벌 경기침체-수출급감-대기업 재고 급등- 생산 감소- 소비 감소-경기침체 고착화

그만큼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재고 증가추세가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본격적인 경기침체 조짐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6일 발표한 '기업 활동으로 본 최근 경기 상황 평가'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산업활동동향의 제조업 재고지수 증가율이 작년 동기 대비 18.0%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분기별 수치로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분기(22.0%)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 폭이다.

“최근 재고 증가 흐름은 작년 2분기를 저점으로 4개 분기 연속 상승하는 이례적인 모습이고, 이처럼 분기 기준으로 장기간 재고지수가 상승세를 보인 것은 2017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라는 게 대한상의의 설명이다.

특히 대기업 재고지수가 폭등세이다. 중소기업의 재고지수 증감률은 지난해 2분기 1.2%에서 올해 2분기 7.0%로 올랐다. 완만한 증가세이다. 반면에 대기업 재고지수 증감률은 같은 기간 -6.4%에서 22.0%로 급등했다. 원화약세에도 불구하고 수출급감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주요국가들이 경기후퇴 또는 경기침체에 돌입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대한상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글로벌 인플레이션,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수요 기반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출하 감소 폭이 생산 감소 폭보다 더 커지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기업들이 3분기부터 본격적인 생산 감소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업생산 감소는 순차적으로 고용감소와 소비감소로 이어진다. 경기침체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우리 경제는 수출증가율이 둔화되고 고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내수 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업 재고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생산이 급감할 경우 경기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하반기 정책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미 연준, 20일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 밟아?...‘킹 달러’ 강화로 수입물가 폭등 우려

가뜩이나 고공행진 중인 물가가 추가 폭등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국 물가를 잡으려고 큰 폭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동월 대비 8.3%를 기록했다. 시장 전망치 8.0%를 웃돈 것이다.

연준은 지난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각각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오는 20~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1%포인트 올리는 '울트라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처럼 미국이 고물가를 잡으려고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을 지속할 경우, '킹 달러'(달러화 초강세) 현상이 심화된다. 이는 한국처럼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직격탄이 된다. 원화약세로 수입물가가 폭등하면 물가는 날개를 달 수밖에 없다.

농심은 26개 라면 브랜드의 가격을 평균 11.3% 인상했다. 신라면 1봉지당 편의점 판매가격은 900원에서 1천 원으로 올랐다. 라면 가격의 비상은 인플레이션 악화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시장 주체들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휩쓸리고 있다. 자동차, 조선 등 핵심 제조업이 몰려 있는 울산지역 기업들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주요 리스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장 많이 꼽았다.

자동차 및 조선기업들, 스태그플레이션 해법으로 ‘규제 완화’, ‘노동시간 유연화’ 등 꼽아

울산지역 기업들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주요 리스크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가장 많이 꼽았다. 사진으 울산 석유화학공단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지역 기업들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주요 리스크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가장 많이 꼽았다. 사진은 울산 석유화학공단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상공회의소가 82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진행해 13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주요 리스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태그플레이션(31.3%)이라는 응답율이 1위였다.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가속화를 야기하는 물가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24.5%)가 가장 많았다.

'부정적인 대내외 환경 대응을 위해 우선 추진해야 할 경제 정책'으로는 '규제 완화 등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충'(15.4%), '노동시간 유연화'(11.9%),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침체보다 물가안정 주력'(11.5%), '긴급 경영안정 자금 등 정부자금 지원'(11.5%) 등이 제시됐다.

시장일선에서 위기 돌파책 1순위로 규제 완화를 꼽은 것이 눈길을 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민간중심 경제성장으로 돌파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전략과 무관치 않다. 규제 완화를 해줘야 신성장 동력을 확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나 ‘킹 달러’와 같은 글로벌 불확실성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인식인 것이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들은 최근 조사에서 ‘원격의료’, ‘차량공유’, ‘숙박공유’ 등의 신산업 분야 규제로 인해 한국에서 사업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