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독일은 우리나라 미디어 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친 나라다. 신군부 시절 자행된 언론 통·폐합,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 보도지침과 언론기본법은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언론정책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괴벨스는 지역 방송국과 통신사를 통·폐합하고, 비판적 언론인들을 대량 해직하는가 하면, ‘제국정부 언론심의회’를 통해 보도지침을 내리고, ‘편집인 법률’을 통해 신문과 잡지의 편집인도 국가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게 함으로써, 나치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을 봉쇄했다. 신군부도 유사한 정책을 통해 12·12 군사 쿠데타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비판여론을 봉쇄할 수 있었다.

언론 통·폐합으로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공영방송 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는 대부분 전후 독일의 공영방송 제도에서 빌려 왔다.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라는 전제로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등 공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TBC, DBS 등 민영방송을 KBS로 편입시키는 한편, MBC의 민간지분을 환수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방송정책이 필요할 때마다 우리 정책 당국자들이나 방송학자들은 독일의 방송제도를 참고했다. 현재 방송법 제4조4항에 규정된 편성규약이나, 제69조2항에 규정된 시장점유율 제한 등도 독일의 방송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최근 들어 독일의 공영방송 제도는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이 독일의 공영방송 방송평의회를 모델로 했다는 25명 규모의 ‘공영방송 운영위원회’案을 내놓았고, 더불어민주당이 이 案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이번에 발의된 법안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일 방송평의회의 운영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독일 방송평의회를 모델로 했다고 하는 이유는, 국민이 독일 방송평의회 제도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닐까 한다.

향후 국회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 과정에서, 독일의 공영방송 제도를 비롯한 선진국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인용되는 일이 자주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의 공영방송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나라 공영방송 제도에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독일 공영방송의 개관

독일 공영방송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분권성이다. 지역 라디오 방송국들이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제국방송에 통·폐합되고, 나치 정권의 선전도구로 악용되었던 쓰라린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1950년 출범한 제1 공영방송 ARD는 독일의 9개 지역 공영방송과 해외방송인 DW의 연합체 성격을 띤 독특한 형태의 공영방송 시스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점령군에 의해 도입된 공영방송 형태가 이들 지역 공영방송의 전신이다. 지역 공영방송사들은 가청권 인구수에 비례하는 비율로 편성을 분담해서 Das Erste라는 이름의 전국 채널 1번을 구성하는 한편, 자신의 방송권역에서는 채널 3번으로 지역방송을 하고 있다.

ARD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은 ARD 총회인데, 총회에서는 1년 동안 ARD의 사업을 책임질 공영방송사를 결정하고, 그 방송사의 사장이 ARD의 의장이 된다. 개별 공영방송사들이 돌아가면서 1년씩 ARD의 운영을 맡는 것이다.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의장의 ARD 운영을 보좌하는 사무국을 별도로 두고 있다. 연방공화국이라는 독일의 정체성을 잘 반영하는 ‘따로 또 같이’ 방송 시스템인 것이다.

ZDF는 ARD와는 달리 네트워크가 아닌 전국 단일방송이다. 1961년 ARD의 진보성향 보도에 불만을 가졌던 기독교민주당(CDU) 정권의 아데나워 수상은 연방정부 주도로 새로운 TV 방송국을 설립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이 집권하고 있던 州들의 참여를 배제하려 했는데, 이 州들이 연방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였다. 그 결과 방송사의 설립, 조직, 프로그램에 대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 州정부이며, 연방정부는 중계기술에 관한 권한만을 가진다는 제1차 방송판결이 나왔다. 연방정부에 의한 단일 방송사 설립이 무산되자, 당시 기독교민주당 정권은 야당과 타협하여 전국 단일채널인 ZDF를 1963년 설립하였다. ZDF의 본사는 독일 남서부의 소도시 마인츠에 있으며, 16개주의 州都에 상설국이 있고, 베를린에는 특별 편집 및 제작시설이 있다.

1980년대 초반 민영방송의 설립이 허용될 때까지 독일에는 ARD, ZDF의 양대 공영방송만 존재했다. 방송 관련 권한을 연방정부가 아닌 州 정부가 가지고 있고, 방송은 여러 주 또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방송정책은 각 州들이 모인 협의체에서 州間협약 형식으로 결정된다.

공영방송 채널에 대해 불만이 컸던 기민당이 민영방송을 도입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도, 사민당이 권력을 잡고 있던 주들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82년 총선에서 기민당(CDU)이 승리한 후 케이블TV를 도입하여 전파의 희소성 문제를 해소하자, 사민당도 결국 민영방송의 도입을 최소한으로나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RTL 미디어 그룹과 ProSiebenSat.1 계열의 민영 방송사가 설립되면서, 독일도 공·민영 이원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2. 독일 공영방송의 존재근거 – 내적 다원주의

‘독일 방송법은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집이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독일 방송제도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각州의 방송법이 ‘방송의 자유’를 규정한 독일 기본법 제5조 제1항과 합치하는지에 대해 판단하는데, 그동안 14차례에 걸친 방송 관련 판례를 통하여 독일 공영방송의 존재근거와 구성 원리를 확립하는 역할을 해왔다.

1961년 있었던 제1차 방송판결에서는 ‘내적 다원주의’를 공영방송의 필수불가결한 원칙이라고 천명하였다. 인쇄매체에 비해 극히 제한적인 전파를 이용하고, 방송사업에 대자본이 소요되기 때문에 소수에 그칠 방송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여, 방송사에는 국가 또는 사회 특정그룹으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가능한 한 모든 사회계층의 프로그램 참여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능으로서 방송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제1차 판결에서 제시한 ‘내적 다원주의’이며, 이 원칙에 따라 민영방송은 금지되었다.

독일의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사장, 방송평의회, 행정위원회의 삼권 분립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내적 다원주의’ 원칙을 방송사 지배구조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방송평의회다. 방송평의회는 사장 선출과 해임권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공영방송 이사회, 시청자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감독 및 규제기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州 미디어청은 민영방송에 대한 감독권만 가지고 있을 뿐, 공영방송에는 개입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평의회는 사회의 모든 세력이 공영방송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달리 말해 어느 특정 사회그룹이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구성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ARD 계열의 각 지역 공영방송사들은 28명에서 74명까지, ZDF는 60명의 방송평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공영방송 25인 운영위원회’案의 모델이라고 하는 제2 공영방송 ZDF의 방송평의회 위원 구성방식은 다음과 같다.

△ 16개 州정부 대표 각 1명과 연방정부 대표 2명

△ 독일 郡협의회에서 1명, 도시간 협의회 및 ‘시와 기초단체연합’ 중에서 각 회기마다 윤번제로 1명

△ 개신교에서 2명, 카톨릭에서 2명, 유대교 중앙위원회에서 1명

△ 노동계 3명, 사용자단체 2명, 농업중앙회 1명, 수공업중앙회 1명

△ 신문발행인연합에서 2명, 독일기자연합에서 1명

△ 민간복지단체에서 4명(개신교봉사단 1명, 카톨릭봉사단 1명, 적십자협회 1명, 노동자복지 중앙회 1명)

△ 올림픽 스포츠연합에서 1명, 독일 유럽연합에서 1명

△ 자연보호단체에서 2명

△ 추방자 연합에서 1명, 스탈리니즘 희생자 연합에서 1명

△ 각 州마다 특정 영역 대표 1명씩

가령 헤센州는 이민자 영역 대표, 튀링겐州는 성 소수자 영역 대표, 니더작센州는 무슬림 대표 1명과 같이, 각 州마다 어떤 영역의 대표를 파견할 것인지 ZDF 주간협약에서 구체적으로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보호단체, 인터넷, 음악, 미디어와 영화, 고향과 관습, 소수언어 관련 영역 등 독일의 다양한 이해단체들이 ZDF 방송평의회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방송에 반영할 수 있도록 입법화한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공영방송 25인 운영위원회’案은 운영위원 추천 방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국회 교섭단체가 의석수 비율에 따라 추천하는 사람 7명과 비교섭단체 추천 1명

△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가 추천하는 3명

△ KBS, MBC, EBS 시청자위원회가 추천하는 3명

△ 한국방송협회(KBS, MBC, SBS 사장이 윤번제로 회장)가 추천하는 2명

△ KBS, MBC, EBS 종사자 대표가 추천하는 2명

△ 방송기자협회, PD연합회, 방송기술인협회가 추천하는 각 1명씩 3명

△ 시도의회 의장협의회가 추천하는 4명(KBS와 MBC의 경우)

△ 교육 관련단체가 추천하는 2명과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추천하는 2명(EBS)

민주당은 자신들의 법안이 독일의 공영방송 방송평의회 제도를 借用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철학은 전혀 다르다.

첫째, 독일의 경우 방송전문가나 방송 관련 단체는 방송평의회 위원을 추천할 권한이 없다. 비전문가인 시민 대표가 사장 이하 방송전문가 집단을 견제하는 구조다. 방송의 자유는 국민의 다양한 견해를 담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보장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 노동자측 목소리를 대변하는 위원이 있다면, 사용자측 목소리를 대변하는 위원들도 함께 뽑는 등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의 법안에서는 공영방송사 운영위원을 추천할 권한을 정치권을 제외하면 방송 관련 단체나 전문가들에게 다 몰아주고 있다. 방송 종사자들의 자율성만 보장하면 방송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송 종사자들이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책은 없다. 또한 별도의 행정위원들이 상시적으로 사장을 견제하는 독일과는 달리, 25인의 비상임, 명예직 운영위원으로만 구성될 경우 정보의 격차 때문에 경영진의 전횡을 제대로 견제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사의 행정위원회는 사장이 제안하는 경영상의 주요 결정에 참여하고, 사장을 상시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ZDF의 경우 행정위원은 州정부 총리들이 공동으로 임명하는 5명과, 연방정부에서 1명, 그리고 방송평의회에서 정족수 5분의 3 이상의 다수결로 선출하는 8명 등 14명으로 구성된다.

사장은 방송 프로그램을 포함한 공영방송사의 전체 운영을 맡으며, 법적으로 공영방송사를 대표한다. 방송평의회와 행정위원회의 감독과 승인을 거쳐야 방송운영과 관련한 주요 사안을 결정할 수 있어서, 다른 나라의 방송사 사장보다는 제한적인 권한을 가졌다. 일단 사장에 선임되면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이사회의 견제를 받지 않는 우리나라 공영방송 사장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게다가 ZDF의 경우 평의회 재적 2/3 출석에 2/3 이상의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하는 특별다수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어느 한 정파가 승자독식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사장과 프로그램 본부장을 여당이 맡으면 보도본부장과 경영본부장을 야당에서 맡음으로써, 정치적으로 절충을 하는 관례가 있다.

3. 독일 공영방송으로부터 배우는 교훈

사실 그동안 논의되었던 우리나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들은 사장 선임방식에만 초점을 맞춰온 느낌이 있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를 설계해야 되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질적인 편파방송 논란이다. 과거 보수 정권 시절, 언론노조는 ‘공정방송’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러 차례 총파업에 돌입했었다.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침해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또 총파업에 돌입하는 동기가 정치적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언론노조의 문제 제기가 의견의 다양성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론노조의 주축들이 공영방송의 경영권을 장악한 다음에도 편파방송 논란이 전혀 불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노조 MBC본부장 출신 최승호씨가 MBC 사장이 되고 나서 방송된 <PD수첩> ‘MBC 몰락, 7년의 기록’에서는, 2017년 12월 리얼미터 조사를 인용해, MBC가 ‘가장 신뢰하는 방송사’에서 3위에 머문 반면, ‘가장 신뢰하지 않는 방송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며, 보수 정권 7년 동안 MBC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잘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21년 시사IN이 의뢰하고 칸타코리아가 조사한 신뢰도 조사에서, MBC는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부문에서 KBS, JTBC에 이어 여전히 3위를 머물렀고, ‘가장 신뢰하지 않는 언론사’ 부문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방송사 중에서는 1위여서, 4년 전보다 오히려 악화된 셈이다. KBS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편파방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과거 보수 정권 시절 공영방송이 편파방송을 하는 이유를 설명한 이론이 ‘정치적 후견주의’였다. 자신을 사장으로 앉혀준 청와대에 보답하기 위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할 터이니 낙하산 사장을 막아야 한다며, 오로지 사장 선임 문제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포커스를 맞췄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언론노조원이 중심이 된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자신을 감시자나 관찰자가 아니라, 진보 정치진영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정치적 병행성’이 더 문제가 된 것이다. 과거 필자가 방문진 이사회에서 조국 사태 당시 MBC의 편파 보도를 비판했을 때, MBC 기자 출신의 당시 방문진 이사는 이렇게 설명을 했다. “제가 아는 한 정권과의 교감은 일체 없습니다. 다만 지향점이 같은 것 같습니다. 이 정권과 지금 있는 경영진들이나 기자들과 바라보는 시각, 또 사물을 판단하는 잣대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MBC 구성원들이 당시 정권과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 집회’ 참가인원을 둘러싼 MBC의 보도였다. 2019년 9월 28일 <뉴스데스크>에서는 촛불집회 참가자를 주최측 추산을 인용하여 100만명이라고 보도하더니, 다음날인 9월 29일에는 다시 “주최측은 200만명이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라고 보도했다. 하루 사이에 10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조국 집회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렸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야간 촬영허가도 받지 않고 드론으로 생방송 중계했다. 친문 네티즌들은 MBC가 드론으로 촬영한 조국 집회 영상을 퍼 나르며, ‘MBC가 돌아왔다’고 열광했다.

이에 고무된 MBC 뉴스데스크는 10월 5일 집회 때는 “집회 주최측인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는 오늘 집회에는 지난주보다 100만명 더 많은 약 300만명이 참가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라며 ‘믿거나 말거나’式의 보도를 했다. 물론 자기가 속한 진영이 勢를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지, 실제로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2020년 1월부터 2022년 3월 대선 전날까지 지상파 3사와 종편 3사의 메인뉴스를 비교·분석한 <이슈와 프레임>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정치적 병행성’의 심각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종편이 자사의 논조를 앞세우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은 ‘외적 다양성’의 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공영방송이 제21대 총선과 20대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적 병행성’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이런 ‘정치적 병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어야 한다. 과거 보수 정권 때처럼 ‘정치적 후견주의’가 문제라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장 선임방식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사장만 제대로 선임하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공영방송 25인 운영위원회案도 정치적 후견주의 최소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병행성’이 편파방송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처방전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편파 보도에 대한 지적이 나올 때마다, 지금의 공영방송 경영진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내세웠다. MBC의 경우 한술 더 떠서, 국장이 실무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영진은 아예 보도나 제작, 편성에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방송법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목적이 민주적 여론형성에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독일 공영방송의 방송평의회 구성원칙인 ‘내적 다양성’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정치적 병행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25인 운영위원회’처럼 방송 관련 단체나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프로그램 제작이나 편성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라는 표현에 걸맞게 공영방송 이사회의 권한과 기능, 그리고 인원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처럼 시청자위원회를 이사회에 통합시켜 편파 보도에 대해 강력한 제동을 걸 수 있게 하고, 이사진의 확대로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실해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독일의 행정위원회에 해당하는 상임 이사진을 두는 것이다.

또한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사의 보도와 제작, 그리고 인사에서 행사하는 과도한 권한을 사회적 대표성을 가지는 공영방송 이사회로 이관한다면, 공영방송을 둘러싼 편파성 논란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왕 국회에서 독일식 제도를 차용하겠다고 나선 김에, 독일 공영방송 제도를 제대로 도입해서,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을 해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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