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2022.8.17(사진=연합뉴스, 화면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2022.8.17(사진=연합뉴스, 화면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맞이'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전혀 원하지 않는다"라면서 "NPT(핵확산금지조약,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체제를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혀 눈길이 쏠리고 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같은 대북 메시지가 추후 북한 비핵화 문제를 풀기 위한 과정에서 스스로 발목이 잡히게 될 여지가 있다는 것.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10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그의 발언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가 광복절에 발표한 비핵화 로드맵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먼저 비핵화를 시키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확고한 의지만 (북한이)보여주면 거기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저와 우리 정부는 북한 지역에 어떤, 무리한 또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전혀 원하지 않는다. 남북한 간 지속 가능한 평화 정착이고 북한에 대해 경제 및 외교적 지원을 한 결과 북한이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면 그 변화를 환영한다."

여기서 그가 말한 '광복절에 발표한 비핵화 로드맵'이란, 지난 15일 그의 광복절 축사에 담긴 대북 메시지에 담겼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라고 말한다.

이때 쟁점은 3 가지 흐름을 통해 도출된다. 첫번째, NPT 체제의 현존 상황 진단 여부와 두번째, 그동안 대북정책의 흐름 진단, 마지막으로 첫번째와 두번째 조건에 의한 현재 상황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대북 메시지를 통해 향후 대북정책의 흐름을 들여다본다.

1979년 한국을 공식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1979년 한국을 공식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와 NPT 체제와의 관계는, 지난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세계는 냉전체제로 본격 전환된다. 그로부터 20여년간 지속된 냉전 과정에서 '닉슨 독트린'의 여파로 우리나라에 있던 주한미군 제7보병사단이 철수한다. 당시 북한과의 재래식 군사력의 강공 대결 국면에서 美 제7보병사단의 철수는 우리나라로 하여금 상당한 안보위협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세계정세는 NPT체제(핵확산방지조약, 核擴散防止條約, Non-Proliferation Treaty)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던 상황이었다. 미국과 소련간 핵대결 구도가 이어지던 상황이었는데, 1975년에서야 우리나라는 NPT체제에 편입된다.

이때 우리나라에 배치됐던 한반도 전술핵은 지난 1958년부터 1991년 12월까지 한국에 배치됐었다. 미국은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했었고 그 수만해도 무려 950여기에 달했다. 그러다 100여기까지 축소되면서 결국 1992년을 끝으로 모두 미국으로 철수된다. 그렇게 30년간 우리나라는 NPT 체제 가입 이후 전술핵이 없는 상태로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우리나라가 NPT체제에 가입하던 해로부터 5년 후인 1980년 북한은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를 열고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 노선(NL-PDR)'을 천명하면서 대남위협을 직접적으로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85년, 북한은 NPT에 가입한다.

1992년 남북합의서 직전해인 1991년 3월19일 제1차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회의를 시작으로 남북고위급 회담에서까지 북한은 ▲ 외국군의 핵무기 저장 금지 ▲ 외국핵무기 한반도진입 금지 ▲ 핵무기 사용가능한 외국군의 작전 및 연습 참가 금지 ▲ 핵무기 사용 가능한 작전의 영토 내 허용 금지 조건을 내세운다.

일명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론'인데, 이는 북한의 핵개발사(史) 초창기 내세웠던 주장이다. 한반도의 핵위협을 없애야 한다는 명분으로 핵병기를 운용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완전 철수를 내세웠던 것.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노리고 1991년 11월8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을 발표한다. 해당 선언에는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 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 금지 등 일명 비핵화5원칙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지난 1991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핵관련 남북접촉에서 남북대표들이 비핵화 공동선언문안에 최종 합의, 가서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991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핵관련 남북접촉에서 남북대표들이 비핵화 공동선언문안에 최종 합의, 가서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해 12월26일, 북한은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8원칙 : ▲시험금지 ▲제조금지 ▲생산금지 ▲접수금지 ▲보유금지 ▲저장금지 ▲배비금지 ▲사용금지>와 재처리금지 및 농축시설 보유금지 선언안을 받아들인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붕괴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이양 집중기, 고난의 행군 등 북한의 대내외적 여건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정세가 빚어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다 1993년, 북한은 돌연 NPT 탈퇴를 선언한다. 12년 후인 2005년,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1년이 지난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NPT 체제가 한반도에서 결국 무력화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던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17년 9월3일 제6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수소탄 실험 발표를 하는 것으로 무려 6번의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사실상 수차례 핵무기 가용능력을 대내외적으로 알린다. 핵위협의 정수(精髓)이기도 한 핵탄두와 운송수단(미사일)의 고도화를 추진 중인 북한으로는, 앞으로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가 최근 윤석열 정부 집권 초반기까지 행해졌던 미사일 실험 등이다.

지난 2018년 4월20일 북한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다 진행됐다"라며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실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트 시험 발사도 필요없게 됐다"라고 밝힌다. 이같은 발표가 있은지 1달만인 그해 5월24일,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면서 비핵화를 달성했다고 대외적으로 밝힌다. 사실상 일종의 위장술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북한에 의해 한반도 상에서의 NPT체제는 무너진 셈이다. 핵병기 중에서도 핵탄두의 완성을 공공연하게 밝힌 후 운송수단인 미사일 개발과 실험을 대외적으로 내세운 핵개발 고도화 가속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에 필요한, 의미있는 회담 내지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라는 내용의 '담대한 제안'을 했던 것.

결론적으로, 지난 30년간 북한에게 속아 '당근과 채찍'이라는 희망사고에 넘어갔던 지난 북핵 개발사의 오류를 다시금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때문에 대북정책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17일 국방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맞이 기자회견이 있던 이날 새벽 평안남도 온천군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합참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 (CG).(사진=연합뉴스)
합참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 (CG).(사진=연합뉴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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