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학제개편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한 살 낮추고 '외국어고등학교 폐지' 철회를 시사하는 등 교육 정책에 있어 혼란을 일으켜 논란을 빚은 바 있는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곧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빠르면 오늘 중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의 사퇴는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취임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고민은 박 장관의 사퇴로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 장관의 사퇴 가능성은 윤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마친 후 업무에 공식 복귀한 8일 오전 재개된 도어스테핑에서 제기됐단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청사 출근 문답에서 "모든 국정동력이라는 게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며 "국민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잘 살피겠다. 그리고 이제 바로 일이 시작되는데, 그런 문제들도 올라가서 살펴보고, 필요한 조치가 있으면 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말한 '국민 관점'이 바로 박 장관 경질 가능성을 내비친 것 아니냔 것이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부정평가 요인으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5%)'이 새로이 추가될 정도로 교육부의 새로운 정책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는 것을 윤 대통령이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여름휴가를 마치고 처음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출근하며 도어스테핑을 재개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국민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잘 살피겠다"고 했는데 이 발언이 박 장관의 경질을 의미하는 것 아니냔 해석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여름휴가를 마치고 처음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출근하며 도어스테핑을 재개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국민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잘 살피겠다"고 했는데 이 발언이 박 장관의 경질을 의미하는 것 아니냔 해석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진을 비롯해 정부 인사들의 조기 인적 쇄신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장 인사 물갈이를 하지 않으면 '국정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단 우려에 일부 반응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 정부 초기 내각 인사 중 가장 큰 물의를 일으킨 박 장관을 시범적으로 자르기로 한 것 아니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박 장관의 사퇴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다. 박 장관이 졸속 정책 발표를 통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윤 정부에 큰 악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기에 인적 쇄신의 일환으로 조기에 물러나는 건 맞지만, 사퇴가 윤 정부의 또 다른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5일에 취임한 박 장관이 만약 8일 물러난다면 임명된 지 35일만에 사퇴하는 셈이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동일한 재임기간이 된다. 이로 인해 윤 정부의 인사 추천 및 검증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에 대해선 애초에 교육부 장관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박 장관은 행정학 학사 졸업,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환경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아 서울대학교에서 행정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또한 박 장관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지만 교육이 속한 '과학기술교육분과'가 아닌 '정무사법행정분과'의 인수위원이었다. 이런 인사를 누가, 무슨 이유로 교육부 장관에 추천했냔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단 것이다.

박 장관의 사퇴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음주운전 경력 등 여러 논란이 있었음에도 박 장관의 취임을 재가한 최종 결정권자이며, 지난 달 29일 교육부 업무보고시 학제개편 관련 보고의 문제점에 우려를 표시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신속히 지시하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장관의 사퇴는 여론에 자칫 '꼬리자르기'로 해석돼 추가적인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정동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박 장관을 경질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셈이다.

다음 교육부 장관이 짊어질 부담도 상당히 클 수 있단 분석이다. 박 장관이 '학제개편'을 여론 수렴 없이 발표해 논란이 빚어지긴 했지만, 이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활동 결과로 펴낸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처음 등장했고 정부가 5년간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청사진인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서 구체화된 핵심 과제들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도 안된 상황에서 교육 정책의 핵심 과제가 학부모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친 셈이다. 다음 교육부 장관은 윤 정부의 교육 분야 핵심 국정 과제를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의 '인적 쇄신'이 박 장관만의 경질이 아니라 대통령실 참모진을 비롯한 전면적 인사 개편을 단행해야 하지 않냔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기획관의 BTS 홀대 논란, 김건희 여사 주변 인물 논란 등 윤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듯한 모습을 청산하고 윤 대통령이 인사 조직을 확실히 통제하고 있음을 여론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단 것이다. 익명을 빌려 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소통 창구를 일원화하는 등 구설수를 차단해야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 수행 및 국정 운영에 있어 정무적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한단 시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아시아 순방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휴가중이란 이유로 만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처음엔 대통령과 하원 의장이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한국 의회에서 대응하는 게 맞다고 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2주 전에 이미 조율이 끝났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대통령실의 해명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적절한지의 여부와는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이 오산 미군 기지에 도착했을 때 한국측에서 아무도 나가지 않아 의전 문제가 발생하고, 대통령과의 회견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8일 발표된 KSOI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부적절했단 응답이 60.3%, 적절했단 응답이 26%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 대상국이었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일본에선 모두 행정부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과 총리가 의장을 맞았다. 결국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윤 정부의 문제가 박 장관의 사퇴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단 얘기다.

8월 1주차 KSOI 여론조사에선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간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대해 60.3%가 부적절하다고 응답했으며 적절했단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이 정무적 감각을 키워야 한단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 [사진=KSOI]
8월 1주차 KSOI 여론조사에선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간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대해 60.3%가 부적절하다고 응답했으며 적절했단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이 정무적 감각을 키워야 한단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 [사진=KSOI]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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