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대만 인근 해상 6개 구역에서 실시 중인 군사 훈련이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반발에 따른 대규모 무력 시위로 해석되는 가운데, 중국의 군사 훈련이 오히려 중국이 가진 군사상의 카드패를 볼 수 있는 기회란 시각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즉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표면화됐을 때, 중국은 대만을 직접 공격해 점령하기보단 해상 봉쇄를 통해 대만의 항복을 유도하겠단 전략이 이번 훈련에서 여실히 드러난단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4일부터 7일까지 대만 인근의 해상 6개 구역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중이다. 중국 푸젠성과 대만 사이의 대만 해협에서는 군부대가 직접 참여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나머지 5개 구역에는 둥펑(東風) 계열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대만의 실질적 수도인 타이페이가 위치한 북부 대만의 해상 2개 구역, 남부 가오슝 시 남쪽의 1개 구역, 대만과 일본 사이의 해상 1개 구역 총 4개 구역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대만 최남단 핑둥현의 남쪽 해상에도 미사일이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현재까진 가오슝 시 남쪽에 집중된 것으로 판단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즈'는 중국의 이러한 훈련이 대만을 육각형으로 포위하는 듯한 형국으로 진행됐으며, 이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여러 강압적인 전술 중 해상 봉쇄(blockade)라는 한 가지 방법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대만의 핵심 도시인 북부의 타이페이 시와 남부의 가오슝 시 인근 바다를 겨냥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사시 대만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을 차단함으로써 대만에 해상 봉쇄 조치를 가하겠단 중국의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단 평가다.
이는 미중 양측 군사 전문가들 모두 공통되게 지적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멍시앙칭 인민해방군 소장 겸 인민해방군 국방대학 교수는 4일 오전 중국 국영방송에 출연해 "이는 대만을 포위하는 것"이라며 "이 훈련은 중국 통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략적 상황을 재형성하기 위한 아주 좋은 조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즉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봉쇄하게 되면 큰 사상자를 내지 않고도 대만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단 것이다.
미국측 군사 전문가들도 중국이 전면전을 벌이기보단 해상 봉쇄를 실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이언 클라크 허드슨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그들이 마치 해상 봉쇄를 이뤄낼 수 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며 "이는 그러한 신호를 여실히 보여주는 훈련"이라고 평가했다.
항구와 대양 항로에 근접해서 군사 훈련을 하게 되면 화물 선적과 선박 출항은 필연적으로 늦춰질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중국은 대만과 세계 시장에 일정 정도 고통을 줄 수 있게 된다. 특히 대만은 자동차에서 고도로 발전된 무기까지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반도체 부문의 선두주자다. 중국은 대만의 반도체 수출을 늦춰 유럽과 다른 선진 경제국들의 대만 지원·지지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엔 모두 일치 단결하여 우크라이나를 지지했으나, 러시아가 천연 가스 수출량을 제한하자 유럽의 단결은 흐트러진 바 있다.
중국의 대만 봉쇄 훈련이 정례화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단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브래들리 마틴 박사는 "중국은 아마도 양안 통일을 위해 전면전까지 벌이긴 원치 않을 것이다"라면서도 "노골적인 갈등 수준 바로 아래 단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힘을 투사하려는 중국의 행태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으로써 대만 경제는 간헐적으로 혼란을 빚게 되어 종국엔 마비될 수도 있단 것이다.
다만 여전히 많은 군사 분석가들과 중국 전문가들은 베이징이 이러한 '대만 고사 전략'을 구사하는 덴 이유가 있다고 본다. 베이징이 대만 침공을 대대적으로 개시할 능력이 아직까진 결여돼 있단 것이다. 육전이 아닌 상륙전은 육·해·공의 복잡하고 긴밀한 합동 작전 수행 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인민해방군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셈이다.
한편 이번 중국의 무력 시위를 반드시 위협적으로만 볼 필요 없이 중국의 대만 관련 군사 전략을 면밀히 꿰뚫어볼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장'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믹 라이언(Mick Ryan) 前 호주군 소장 겸 전략 분석가는 이번 중국의 군사 훈련이 '중국의 군사 전략과 수행 능력을 살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한다. 인민해방군이 사흘간 실시하는 훈련이 △ 어떻게 대만 해상 봉쇄를 수행하는지 보여주며 △ 인민해방군이 전자전, 공중전 능력을 어떻게 통합하는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 군대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운용하는지를 볼 수 있고 △ 인민해방군 합동 작전 수행 능력의 효율성과 동부전구(Eastern Theater Command)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믹 라이언 분석가는 "인민해방군이 2016년 새로이 입안한 '작전 지휘'에 따라 대만을 단기간에 제압하기 위해 동원할 다양한 군(해군·공군·사이버·미사일)이 얼마나 통합적으로 지휘되고 통제될 수 있는지가 관심사"라며 "미 의회에 매년 보고되는 미 국방부 보고서가 인민해방군 발전 정보를 담은 매우 귀중한 자료지만, 실제 '전장'에 동원되는 인민해방군을 보는 것보다 더 이해를 쉽게 해주는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결국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분노한 중국이 무력 시위를 벌여 인민해방군이 이전보다 '환골탈태'한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역내 긴장감이 고조되긴 했지만, 이는 역으로 베이징의 전략을 고스란히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노출한 셈이 되기도 한다. 워싱턴에 위치한 국가안보 싱크탱크의 연썬 중국 전문가가 "중국이 뭘 하든, 가장 많은 부담을 지게 될 나라는 대만이 될 것"이라 전망한 가운데 미국이 중국의 전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시적으로는 중국의 대만 해안 봉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대만의 식량과 식수 공급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거시적으로는 미국이 역내에서 중국이 도발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힘의 우위를 보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군사 분석가들과 중국 전문가들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해군 규모를 늘리고 여러 곳에 산재한 미군 기지에 군사 자산을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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