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정부가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불법 공매도’에 칼을 빼들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대검찰청, 한국거래소는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열고 전격적으로 공매도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 공매도에 대해 적발과 처벌을 강화하고 범죄수익·은닉재산을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과열종목 지정제를 개선하는 등 공매도 제도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관계기관 합동으로 불법 공매도 적발, 처벌 강화 및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윤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관계기관 합동으로 불법 공매도 적발, 처벌 강화 및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투자증권 1억 4000만주 공매도 해놓고 ‘일반 매도’로 표기한 게 ‘단순 실수’?

27일 한국투자증권의 공매도 규정 위반 사태로, 투자자 여론이 들끓은 데 따른 긴급 조치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2월부터 약 3년 3개월 동안 900여개사 주식 약 1억4000만주를 일반 매도인 것처럼 공매도했다. 공매도인데도 일반 매도로 거래한 규모는 삼성전자가 2552만주로 가장 많고, SK하이닉스(385만주), 미래에셋증권(298만주) 등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긴급회의까지 소집하며 대책을 발표한 데는 증시가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므로,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권사의 일탈 행위를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금융당국이 3년 3개월 동안 이같은 행위를 방관하다가 2년이 지나서야 처벌을 내렸다는 점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공매도 제도 개선이 아니라, 아예 ‘공매도 폐지’를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 공매도 관련 불법행위 척결 의지 강해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를 잠재우려는 금융당국의 대책 발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매도를 둘러싼 불법행위를 반드시 뿌리뽑겠다는 각오로 관계 기관이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7일 “자본시장의 불법 공매도와 공매도를 이용한 시장교란행위에 대해 투자자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주식시장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떨어진 지지율을 감안하면,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불법 공매도 근절에 강한 추진력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7일 불법 공매도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7일 불법 공매도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사들여 갚고 차익을 얻는 매매 기법이다. 공매도는 차입 공매도와 무차입 공매도로 나뉜다. 차입 공매도는 차입(借入, 돈이나 물품 따위를 외부에서 꾸어 들임)이 확정된 타인의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을 빌려 매도하는 것이다.

반면 무차입 공매도는 현재 유가증권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파는 것을 말한다.

금융당국이 칼을 빼든 것은 불법 공매도인 무차입 공매도를 대상으로 한다.

28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공매도 관련 대책은 ‘적발과 처벌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래소와 금감원 등 조사당국은 전담 조직을 확충해 공매도를 악용한 불공정거래가 의심될 경우 테마·섹터를 선별하고 혐의점 발견 시 즉시 기획조사와 감리에 착수한다.

대검, “공매도와 연계된 시세 조종, 내부자거래, 무차입 공매도 등 엄정 처벌” 강조

무엇보다도 이 대책의 핵심은 서울 남부지검 합동수사단을 중심으로 한 신속 수사전환(패스트트랙) 절차의 부활에 있다. 패스트트랙은 금융감독원 등 시장기구가 사건 초기 단계부터 검찰과 관련 범죄 첩보를 공유하고 수사와 기소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제도이다.

신봉수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은 “공매도와 연계된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및 무차입 공매도 등 불공정거래는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투자자 피해를 야기하는 중대범죄”라며 “남부지검 합수단을 중심으로 패스트트랙을 적극 활용해 적시에 수사절차로 전환해 엄벌하고 범죄수익도 박탈하겠다”고 강조했다. 불법적인 공매도에 대해 엄정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정부가 ‘불법 공매도의 무법지대’로 여겨졌던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칼날을 들이민다는 점에 주목된다. 앞으로는 공매도 목적으로 주식을 빌린 뒤 90일이 지나면 금융당국에 의무적으로 현황을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초장기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하는 이들이 시세조종 등 목적을 갖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또 외국계 증권사 등 기관들이 공매도 주문 프로세스를 적정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공매도 주문 시 주식 차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 ‘무차입 공매도 위반’도 상시 모니터링한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제도’ 강화하고 개인 담보비율은 120%로 낮춰

관련 제도도 대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발표된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방안’의 핵심은 과열종목 지정제도 개선이다. 주가하락률·공매도 거래비중 등 지표를 활용해 특정 기준을 만족하면 공매도를 금지시키는 제도이다. 뚜렷한 효과가 없다고 지적받아온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제도의 기준을 현실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공매도 거래비중이 30% 이상인 종목에 대해 과열종목 지정 기준을 강화한다. 주가하락률 기준은 5%에서 3%로, 공매도 증가율은 6배에서 2배로 대폭 좁혀진다. 또 과열종목으로 지정돼 공매도가 금지된 당일 주가가 5% 이상 하락할 경우, 공매도 금지 기간이 다음 거래일까지 자동으로 연장된다.

한국투자증권의 불법 공매도가 알려지면서, 공매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한국투자증권의 불법 공매도가 알려지면서, 공매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기관과 개인 투자자의 최소 담보 비율·상환 기간이 달라 ‘기울어진 운동장’ 지적이 나오는 점도 조정된다. 개인 공매도 시에는 빌린 주식의 140% 이상의 담보가 필요하지만, 기관 간 거래 시에는 통상 105~120% 정도의 담보만 적용받고 있다. 개인 공매도 담보비율을 120%로 낮추고, 증권사를 통해 전문투자자 대상의 대차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부당수익·은닉자산을 몰수 위해서는 입법 필요...민주당 협조가 관건

정부는 이같은 종합대책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규정 정비 등을 올 4분기 안으로 마친다는 계획이다. 다만 검찰이 부당수익·은닉자산을 몰수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검찰권력 비대화를 이유로 관련 입법에 협조해주지 않을 경우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가 공매도와 불법 공매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그간 공매도에 대한 불만으로 증시를 떠났던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유입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그에 따라 주가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싹트고 있다. 실제 증시 거래 대금은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거래가 감소하면서, 올초와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 난 상황이다. 투자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해 1월에 비하면 80%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기관·외인의 무분별한 공매도 막기 위한 담보비율 상향 조정” 지적에는 귀닫아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정부의 이같은 대책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공매도 제도에 대해 오랜 기간 불신을 이어온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정부의 이런 의지를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지금까지 정보와 금융당국이 ‘불법 공매도’를 엄정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공언해 왔지만, 이번 대책으로 ‘공매도 폐해를 방치했음을 반증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간 개인투자자들이 요구해온 공매도 제도 개선 방향이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동안 개미투자자들은 ‘개인 투자자의 담보비율을 낮출 게 아니라 기관·외인의 담보비율을 높여 무분별한 공매도를 막아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이번 대책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담보비율이 120%로 낮춰지는 데 그쳤다. 게다가 사실상 ‘무제한’인 공매도 상환 기간을 개인 수준(90일)으로 제한해달라고 했으나 당국은 “국제관례상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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