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하반기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방송 분야를 주관하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먼저 야당이 1년을 맡고, 그후 1년은 여당이 맡기로 합의가 되었다. 위원장을 여야 어느쪽이 맡느냐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의 쟁점이었는데, 소위 언론 장악 논란이 그 배경에 있었다. 대선 기간 공영방송의 편파보도를 둘러싸고 MBC, KBS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나오는 상황에서 하반기 국회에서는 상반기의 방송법 개정 논의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논의의 핵심 쟁점 법안은 KBS, MBC 사장 선출방법 개정에 관한 야당이 제안한 법안이다. 여당과 시민단체 및 KBS, MBC의 소수노조는 언론 노조가 공영방송의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현체제를 영구히 유지하려는 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언론의 다수 종사자를 구성원으로 하는 민노총 산하 언론 노조가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의 배경은 방송사의 사내 정치의 측면과 함께 오래된 방송 편성권 논의를 둘러싼 제도적 배경의 측면이 있다.

오랫동안 진행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논의는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 방식과 사장 선출 권한이 있는 공영방송의 이사진 임명과 관련된 논의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배구조 논의의 다른 내용은 방송 내용을 결정하는 편성권을 경영진과 방송종사자들이 공동으로 행사하게 하는 것으로 하는 편성위원회를 입법하자는 논의다.

방송사에 편성위원회 설치를 명문화하고 방송종사자를 참여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노사동수로 구성된 방송편성위원회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2018년의 방송 재허가시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노사 동수의 방송편성위원회 설치를 재허가조건으로 요구하였고 그후 지상파방송사의 노사간 협약으로 종사자 참여의 방송편성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입법에 의하지 않고 방송종사자가 참여하는 방송편성위원회 설치가 현실화 되었다. 이러한 노사협의 과정에서 편성위원회 참여외에도 인사와 관련된 종사자의 주장을 반영하는 내부 규정들이 갖추어졌다. 실질적으로 방송종사자가 방송운영에 간여할 수 있게 되는 조합주의 방식의 방송체제가 갖추어진 것이다. 방송사의 주류 노조가 민노총 산하 언론 노조이기에 현재의 언론 장악 논란의 배경이 되었다.

문제는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서 정치를 따라서 움직이는 방송의 행태다. 다수를 점하는 노조의 정치 지향성으로 인하여 방송 내용이 특정 정파에 치우쳐서 편향성 논란이 이어지고 정권옹호방송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는등 공영방송에서 보도의 공정성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대선기간 중에 KBS, MBC 소수 노조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영방송 보도를 모니터해서 편파성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일이 있었다. 선거 이후에도 공영방송의 편파보도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탈진실의 시대는 톡정한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언론 지형을 만들었고, 언론은 분열된 특정 정치 세력의 지지자들을 위해서 상대방에 대한 분노 해소의 도구인 분노산업이 되어버렸다. 공영방송 마저 이러한 행태를 적극 따르고 있는 형편이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일방 정치세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반대세력을 악마화하는 내용을 방송을 내보내서 정치에 적극 개입하여 정치 분열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공영방송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방송법상 공정성 책무를 방기하는 위법한 행위다.

미디어의 정치화는 미디어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에 관한 문제다. 정치가 뉴스를 타고 전달되지만 뉴스는 정치를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미디어는 강력한 영향력으로 현실을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권력이다. 미디어는 그 힘의 사용 방식과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권력이란 그것이 자제할 수 있을 때 부여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는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미디어 지형 변화의 시대에 경쟁력과 신뢰를 상실한 공영방송의 제도 개선 논의가 있어왔지만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데, 공영방송이 정치화된 상황은 이러한 제도 개선 논의를 가로막는 수단으로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아가서 우리 사회의 산적한 공공부문 개혁의 문제가 지지부진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정치화된 공공부문이 기대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개선에 나서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현재와 같이 편파보도로 비난을 받는 공영방송의 문제는 정치 지향적 미디어 문화가 배경에 있다. 정치권이 방송에 개입한다면서 언론 장악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방송 자체의 정치 지향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 과거와는 달리 상당한 정도로 방송이 조합주의 체제를 갖추게 된 이상 방송의 편파성 문제는 방송 자체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 스스로 정치에 기대는 성향을 지속하면서 특정 정파의 방송으로 나가는 것은 공영방송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송의 정치지향성이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문제를 항상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는 상황에서 방송의 불공정성 논의는 반복되는 상대방에 대한 정치적 공격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공영방송은 정치적 지향을 중단하고 방송의 공정성 책무 준수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공정성과 참여 그리고 투명성등 지향해야 할 미디어 가치들이 정치적 논의와 뒤섞여서 제대로 추구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정치 논쟁의 재료로만 사용되는 상황은 타개되어야 할 방송의 상황이다.

하반기 국회에서의 다시 재개될 방송법 개정 논의를 바라보면서 어떤 외형적 제도 개선 논의 이전에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방송 자체의 정치 지향성 문화를 지양하고 스스로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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