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조순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별세 소식에 '그의 학풍이 지금의 한국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추모사를 남겼다. 생전 조 명예교수는 수출·성장주의로 경제 신장을 거듭해온 한국 경제를 비판했으며 2006년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강하게 성토한 바 있다.

김형동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3일 논평에서 "고인은 '케인스 같은 경제학자가 돼 수천년 가난을 해소해보겠다'는 뜻으로 경제학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고인의 안정과 균형성장을 강조하는 학풍을 따르는 '조순 학파' 제자들이 지금의 한국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고인은 학자이자 실천가이기도 했다"며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내며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도했고 한국은행 총재를 지내며 중앙은행의 역할과 중요성을 전 사회에 시사했다"고 상찬했다.

이어 "고인은 오늘날 국민의힘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며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초대 총재를 역임하며 당명을 직접 지었고 당명에 담긴 '하나 된 큰 나라'라는 국민통합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명예교수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수출·성장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신념을 꺾지 않았다. 그는 2015년 3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국가발전포럼에서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려면) 수출·성장 지상주의 신앙을 버리고 과학적인 방법인 실사구시로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며 "경제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유기체는 일부분이 다른 부분을 무시한 채 오랫동안 독주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수출·성장 지상주의로 경제가 다른 부분을 따돌리는 바람에 중소기업과 내수산업이 낙후했고 교육, 정치, 사회 등 제분야의 왜곡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조 명예교수는 한-미 FTA를 비판하며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성토하기도 했다. 2006년 7월 한겨레칼럼에서는 "미국으로서는 합의가 잘되면 좋고 잘 안 돼도 본전이겠지만, 한국으로서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좋은 일이 적을 것"이라며 "자유무역협정은 윈-윈 게임이라 하지만 그런 공허한 소리로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장밋빛 전망에는 설득력이 적다"며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경제의 모든 병폐를 조장하면 했지 치유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조 명예교수는 같은해 KAIST 경제 특강에서도 "제3공화국 시기 산업정책의 중점은 중화학공업에 있었고, 유능한 대기업 총수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기계, 석유화학, 전자, 조선, 철강 등의 산업구조를 획기적으로 고도화시켰다"면서도 "박 대통령의 중복, 과잉 투자가 우리 경제를 불균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관 주도의 대기업 수출 중심 경제성장 모델로 인해 국제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효율과 능률은 찾기가 힘들게 됐다는 주장이다. 

당시 특강에서 조 명예교수는 노무현 정부를 "불리한 유산을 물려받은 참여정부는 약화된 국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개방만을 외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 상태에서는 중국의 구조개혁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중국은 2보전진, 1보후퇴하는 방법으로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있다"고 했다.

조 명예교수는 2008년 12월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세계경제의 위기와 한국경제의 대응')에서도 "이번 경제위기의 결과 자유주의 원리주의 패러다임이 몰락했다. 그 혼란을 구제하는 책임을 정부가 맡게 됐다"며 "수출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수출에 모든 것을 거는 전략은 재고돼야 한다. 성장률에 너무 구애되지 말고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명예교수의 대표적 애제자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서울대 총장, 그리고 국무총리 등을 두루 지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1년 3월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국내 대기업에 '이익공유제'를 제안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면 충돌했다. 정운찬 위원장은 "삼성전자는 연말이 되면 목표이익을 초과하는 이익이 발생한 경우 그 일부를 내부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으로 제공한다. 이익공유제를 제안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삼성전자"라며 "삼성전자가 이미 실시하고 있는 이익공유제의 대상을 임직원 뿐 아니라 협력사에게로도 넓히자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사회와 나누자는 정 위원장 요청에 이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며 "경제학 책에서 본 적이 없다"고 특유의 촌평을 날렸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2007년 대학 특강에서 "대학 다닐 때 조순 교수님, 정운찬 선생님 당시 강사였는데 이런 모든 분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발전정책을 반대했다. 한국이 자동차를 만들 기술 자본 시장이 어딨냐고 했다"며 "이토록 반대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해냈다. 지금은 이탈리아보다 앞선 자동차 5대국이 됐다. 저는 당시 우리 교수님들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당시 선생님이 틀리셨다고"라고 평가를 남긴 바 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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