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사를 맡은 해양경찰청 간부들이 이 사건을 전후로 잇따라 승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진실의 배경을 짐작케 하고 있다. 당시 해경은 사건 발생 7일 만에 고 이대준씨 피살 사건에 대해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관할 서장은 ‘자진 월북’ 발표를 꺼려...이례적으로 해경 본청에서 마이크 잡아

해경은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발표자를 교체해가며 자진 월북 발표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에게 사살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대준씨(사망 당시 46세) 사건과 관련해 당시 관할서장인 신동삼 인천해양경찰서장은 당초 월북 가능성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고 이대준씨 사건 당시 관할서장인 신동삼 인천해양경찰서 서장은 ‘월북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사진은 신 서장이 2020년 9월 2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 이대준씨 사건 당시 관할서장인 신동삼 인천해양경찰서 서장은 ‘월북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사진은 신 서장이 2020년 9월 2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 서장은 24일 진행된 1차 브리핑에서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월북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발표하자는 해경 지휘부 방침에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따라 5일 후인 같은 달 29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발표자가 교체됐다. 해경의 핵심 관계자는 “정년퇴직(2020년 12월 말)을 3개월 앞둔 신 서장이 본인 입으로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해경 지휘부는 중부지방해양경찰청에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지시했지만, 중부해경청 역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윤성현 당시 본청 수사정보국장(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발표자로 나서면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간 수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발표하는 것이었다면 최초 발표자였던 신 서장이 발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해경 내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이달 17일 “월북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최종 발표는 다시 관할서장인 박상춘 인천서장이 했다.

해경 홍보담당자는 당시 발표자가 교체된 것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 본청에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경의 ‘자진 월북’ 발표는 “그럴 사람 아니다”는 이대준씨 동료들 진술과 어긋나

해경이 이처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브리핑 발표자를 교체한 것을 두고, 이대준 씨(사망 당시 46세)의 월북 가능성을 둘러싸고 해경 내부에서도 이견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씨가 근무했던 ‘무궁화10호’ 동료들은 이씨의 월북 가능성에 대해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건 조사를 맡은 인천해양경찰서 내부에서도 당시 ‘자진 월북’ 가능성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윤성현 당시 본청 수사정보국장(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은 해경 내부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르게 “종합해 볼 때 실종자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신 서장의 입장에서 훨씬 나아간 입장을 밝힌 셈이다.

자진 월북 발표한 윤성현 수사정보국장은 3개월 뒤 ‘치안감’ 승진...김홍희 당시 해양경찰청장은 ‘보은 수사’ 논란

이후 사건 관계자들은 줄줄이 승진했고, 이를 두고 해경 내부에서는 ‘대가성 승진’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 전 국장은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발표 3개월 뒤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승진했으며, 본청 기획조정관을 지낸 뒤 남해해경청장으로 옮겨갔다.

고 이대준씨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윤성현 당시 본청 수사정보국장은 3개월 뒤인 2020년 12월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윤성현 신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헬기를 타고 관내를 항공 순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 이대준씨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윤성현 당시 본청 수사정보국장은 3개월 뒤인 2020년 12월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윤성현 신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헬기를 타고 관내를 항공 순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 전 국장은 해경의 중간 수사 발표에서 “이씨가 급여와 금융사·지인 등에게 빌린 돈으로 수억원대 인터넷 도박을 했다”며 이씨가 얼마나 빚을 졌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밝힌 인물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이를 두고 “법익의 균형성을 상실한 채 내밀한 사생활까지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라며 해경에게 윤 전 국장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릴 것을 권고했다.

김홍희 당시 해양경찰청장은 이대준씨 사건 발생 전에 해경 역사상 최초로 두 계급 승진해 해경청장으로 직행한 인물로 주목된다. 김 전 청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8월 치안감으로 승진해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을 지낸 뒤, 2020년 3월 치안정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치안총감인 해경청장에 임명됐다.

고 이대준씨 사건이 발생하기 6개월 전의 일이다. 이 사건 이후 해경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발탁돼 고속 승진한 김 전 청장이 청와대의 의중을 모른 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거나 “보은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청장은 작년 12월 물러났다.

현장 수사를 책임졌던 옥현진 당시 인천해양경찰서 수사과장도 작년 1월 총경으로 승진한 뒤 해경청의 외사과장으로 옮겨갔다. 그는 당시 이씨 유족과 동료 선원에 대한 참고인 조사 등을 지휘했다. 또 윤 전 국장 밑에서 수사에 관여했던 김태균 전 해경청 형사과장은 이후 울산해양경찰서장으로 전보됐다.

국방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지침 받아 하달...해경은 민정수석실 지침 의혹 부인

따라서 1차 발표와 중간 수사 결과 내용이 바뀌는 과정에 청와대 지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동아일보는 ‘해경을 담당하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A 행정관이 청와대 지침을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하지만 A 행정관은 전화를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건 발생 7일 만에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서둘러 발표한 걸 두고, 해경도 국방부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의 지침을 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방부는 지난 17일 “2020년 9월 27일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주요 쟁점 답변 지침을 하달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 지침이 해경에도 전달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고 이대준씨 사건 당시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앞줄 왼쪽 두 번째)은 문재인 정부에서 치안정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치안총감인 해경청장에 임명된 인물이다. [사진=연합뉴스]
고 이대준씨 사건 당시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앞줄 왼쪽 두 번째)은 문재인 정부에서 치안정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치안총감인 해경청장에 임명된 인물이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김홍희 당시 해경청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사 내용에 어떻게 민정수석실 지침을 받느냐”며 부인했다. 이에 대해 해경 고위 간부는 “수사 관련 사항은 독립성 유지를 위해 보고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뤄진다”며 “청와대 지침이 조직을 총괄하는 청장이나 수사를 총괄하는 부서장에게 전달됐을 수 있다”고 했다. 고 이대준씨의 유족 측은 “22일경 고소 예정인데, 대상에 김종호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추가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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