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1분기 적자만 7조 7천869억원에 달하는 한국전력(한전)의 재무위기 해결을 위해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추진하고 있으나 발전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봉착했다. 더욱이 SMP상한제가 새로운 규제라는 점에서, 시장주의 정책을 천명한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국민 여론도 높다.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인 SMP와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판매단가 간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연말 누적적자가 3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사진은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사진=연합뉴스]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인 SMP와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판매단가 간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연말 누적적자가 3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사진은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한전이 110원어치 전기 팔면 90원 손해 보는 기형적 전기산업 구조 방치해

이에 따라 한전의 3분기 전기요금 인상 폭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전망이다. 한전은 21일 3분기 전기요금(판매단가) 인상 여부와 폭을 공식 발표한다.

문제는 현재 전기요금 구조대로라면 한전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라는 데 있다.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인 SMP와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판매단가 간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연말 누적적자가 3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월 통합 SMP는 kWh(킬로와트시)당 202.11원이다. 1개월 뒤인 지난 5월에는 140.34원으로 하락했으나, 전년 대비 77.4% 오른 가격이다. 반면에 한전이 소비자에게 받는 판매단가는 kWh(킬로와트시)당 110원이다. SMP가 200원대를 넘어선 4월 기준으로 따지면 한전이 kWh(킬로와트시)의 전기를 팔 때마다 90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처럼 기형적인 전기산업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방치하는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윤석열 정부는 우선 SMP 상한제를 도입함으로써, 판매단가 인상폭을 줄이려는 전략이다. 한전 적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과도하게 전기요금을 인상할 경우 ‘물가폭등’의 단초를 제공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민간발전협의회 법률대리인인 김앤장, SMP 상한제의 위헌 소지 지적하기도

산업부가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자체 규제개혁위원회 회의에서 진행된 SMP 상한제 심의는 난항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5시간을 넘기는 마라톤 회의를 했으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정부는 다음주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심의를 계속할 계획이지만,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회의에 참석한 전국태양광발전협회,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의회, 민간발전협회, 한국집단에너지협회, 열병합발전협회, 연료전지발전협의회 등의 대표와 법률대리인 등은 “SMP 상한제는 한전 적자를 발전사에게 떠안기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태양광발전 업계 측은 “윤석열 정부가 각종 규제 철폐 등의 약속과는 다르게 중소규모 영세 발전사업자 및 시공업체에 타격을 가하는 반시장적 규제를 고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발전협회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 측은 “SMP 상한제는 헌법상 기본권 등을 침해한다”면서 “한전 적자해소를 위해 민간사의 이익을 제한하는 건 정당성이 없으며 비례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SMP 상한제가 위헌논란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앤장 측은 “SMP 상한제를 통해 전력가격에 손을 대는 제도를 만들어서 시장을 왜곡할 게 아니라, 연료비 상승에 적합한 처방을 내리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SMP 상한제는 시장왜곡 정책이므로, 원가주의에 입각해 적합한 연료비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을 시행하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연료가격 급등에도 전기요금 동결한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윤석열 정부에게 짐 떠넘겨

1분기에만 약 7조 8,000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낸 한국전력이 6조원 규모의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1분기에만 약 7조 8,000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낸 한국전력이 6조원 규모의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SMP와 판매가격 격차가 확대되고 그 결과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것은 글로벌 연료비 급등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탈피하기 시작하면서 석유 수요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에 이어 천연가스(LNG) 가격도 폭등했다. 그에 따라 석유와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사들의 SMP 가격이 수직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전기요금 원가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 같은 전기원가를 판매단가에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사살상 동결에 가까운 조치를 취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인상을 초래하고 그럴 경우 민심 동요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즉 문재인 정부가 글로벌 시장에서 연료가격이 폭등함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인상을 억제한 것은, 지난 대선과 6.1지방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포퓰리즘’이 방치한 SMP와 전기 판매단가 간의 ‘격차’, 곪아터져서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 돼

문 정부의 포퓰리즘은 결국 윤석열 정부에게 큰 짐을 떠넘겼다. 이미 곪아터져서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된 것이다.

SMP 상한제 도입이 난관에 봉착했지만, 그렇다고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기란 불가능하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인상폭이 직전 분기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최대 ±3원이다. 연간 변동 최대치는 ±5원이다.

따라서 3분기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최대치인 킬로와트시 3원 인상한다고 해도, 그야말로 언발에 오줌누는 격이다. SMP와 판매단가 간의 격차가 수십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3원을 올린다고 그 격차가 의미있게 줄어들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고 연료비 조정단가 폭에 대한 규제를 완전 철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3분기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3원만 인상해도 가계가 체감할 부담은 상당한 수준이다. 4인가족 평균 전기사용량으로 계산할 때, 연료비 조정단가가 kWh당 3원이 오르면, 월 평균 전기요금은 1050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은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수십% 전기요금 인상해와

해외 국가들의 경우는 연료비 인상에 따라 전기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는 ‘사용자 부담 원칙’을 지켜왔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은 지난 17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선진국 중에 전기요금에 대한 ‘사용자 부담원칙’에 이견이 있는 나라는 없다”면서 “인플레이션으로 국민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지만, 원가가 오르면 전력 요금이 오르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영국은 에너지 요금을 지난 4월 54%까지 올렸고, 10월 추가로 40% 이상 올릴 예정이다”면서 “영국 정부는 전기요금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니 건드리지 않고, 국민(전기 소비자)에게 150억 파운드(24조 원)의 재정을 동원해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도 지난 5월까지 전기요금을 34.6% 올렸다”고 전했다.

김 전 사장은 “우리나라 4인가족 기준 전기요금은 4만원, 이동통신 요금은 15만원”이라면서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문 정부의 포퓰리즘이 만든 나라, ‘분기마다 전기요금 인상되는 나라’

한국전력이 3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한 16일, 서울 시내의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되며, 한전은 이 가운데 분기마다 논의되는 연료비 조정단가의 인상 및 상·하한 폭도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전력이 3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한 16일, 서울 시내의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되며, 한전은 이 가운데 분기마다 논의되는 연료비 조정단가의 인상 및 상·하한 폭도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전은 지난 16일 정부에 3분기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전기요금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우선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최대치인 3원 인상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한전이 건의한 제도 개선 방안은, 현재 분기당 3원, 연간 5원으로 제한된 연료비 조정단가의 상·하한폭을 확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한전은 2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허가한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앞으로도 전기요금 인상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3분기 인상만으로는 SMP와 판매가격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에 손을 놓았던 문 정부의 포퓰리즘 덕분에 앞으로 분기마다 전기요금 인상이 되풀이되는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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