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 11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중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공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 내 X-파일’을 언급한 데 대해 보도자료를 내고 “사실 여부를 떠나 원장 재직시 알게된 직무사항을 공표하는 것은 전직 원장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1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중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공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은 지난 11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중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공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박지원 전 원장의 ‘국정원 내 X-파일’ 언급에 국정원은 강한 유감 표명

국정원이 이같이 강한 유감을 밝힌 데는 박 전 원장이 국가정보원직원법(제17조)에 따른 비밀 엄수의 의무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을 풀이돼, 향후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박 전 원장은 10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오후에는 JTBC와의 인터뷰에도 나섰다. JTBC와의 인터뷰는 11일 오후 방송됐다.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의 이런 기이한 행동과 관련해 "전직 원장 중에 퇴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 업무를 언급한 전례도 없다"라고 밝혔다. 특히 비밀 엄수 의무 등을 규정한 국정원법 제17조를 들어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정치 개입 물증인 ‘X-파일’ 존재는 안기부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해

국정원이 즉각적으로 반발한 것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에 존안 자료 혹은 ‘X파일’이 존재한다는 것은 ‘국내 정치 개입’ 논란을 촉발할 소지기 크기 때문이다.

박 전원장도 이 점을 다분히 의식하고 발언했다. 그는 CSB라디오에서 “국정원에 보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 모든 분들을 존안 자료, ‘X-파일’을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면서 “이것(X-파일)이 공개되면 굉장히 사회적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X-파일’이 공개되면 ‘X-파일’에 포함된 당사자는 치부가 드러날 것이라는 뉘앙스이다. 뿐만 아니다. 국정원도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원장은 “여야의 불행한 역사를 남겨놓으면 안 되니까 특별법을 제정해서 폐기해야 된다고 하는데 이걸 못 했다”고 주장했다.

올해 80세인 박 전 원장 정계 복귀 앞두고 X-파일 언급, 늙은 ‘종이 호랑이’가 아님을 과시하려고?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 전 원장이 이 같은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국내 주요 인사들의 존안(存案) 자료가 국정원에 축적돼 있다고 언급한 배경을 두고, 정가에서는 무성한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전직 국정원장의 국정원 업무 관련 발언은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 전 원장 스스로도 ‘X-파일은 증권가 정보지에 불과한 내용’으로, 확인 안 된 내용도 많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원장이 퇴임 이후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X-파일의 존재를 굳이 강조한 이유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함으로써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올해 만 80세이다. 정계 복귀를 앞두고 자신이 늙은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는 점을 과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CBS와의 인터뷰에서는 X-파일의 존재에 대해서만 언급한 박 전 원장이 JTBC와의 인터뷰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의 X-파일’까지 언급했다.

박 전 원장은 “국정원법을 위반하면 감옥을 가기 때문에 디테일하게는 얘기를 못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파일도)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국내 정치개입을 금지함으로써, 국내 정치인에 대한 사찰도 중지됐다고 박 전 원장은 주장하고 있다. 문 정부 이전에는 하위직 검사에 불과했던 윤 대통령의 X-파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박 전 원장의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극적인 상황에서는 ‘윤 대통령의 X-파일을 흔들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점으로 풀이되고 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JTBC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X-파일’에 대해서 언급했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JTBC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X-파일’에 대해서 언급했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X-파일 관련 발언은 국정원장 직으로서 보안 준수 의무가 있지 않냐’는 JTBC 기자의 질문에 박 전 원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개인 정보를 위해 그 정도는 밝혀도 문제가 없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 누가 어떻게 기록됐다 이것은 얘기할 수 없다”며 궁금증을 부추기는 발언을 덧붙였다.

박 전 원장, “윤 대통령이 10일 취임하고 11일에 나를 쫓아내서 섭섭해”

앞서 박 전 원장은 ‘국정원을 떠난 소회’를 묻는 JTBC 기자의 질문에 “섭섭하다”면서 “청문회 끝나면 후임자가 오고 저는 나와야 되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하고 11일에 쫓아내 버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인사에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는 자신이 윤 대통령의 X-파일을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X-파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박 전 원장은 ‘5.18을 기념하는 윤 대통령의 호남 행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인사’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거론했다. “(5.18 국립 민주 묘지에) 전부 데리고 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얼마나 잘했냐”면서도 “실력 위주다 해서 (인사에서는) 완전히 배제를 해 버리니까, 다시 고립감이 싹트고 있지 않느냐. 이걸 잘 해달라 하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 부분을 언급했다. 박 전 원장은 역대 정권들이 남북 분단과 동서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균형 인사를 해 왔고 배려도 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수위, 내각, 청와대 수석. 광주, 전남은 한 사람도 없다. 이러면 되겠냐”라고 지적했다.

“능력 있는 사람 우선으로 하다 보니 그렇다라는 설명이었다”는 CBS진행자의 발언에, 박 전 원장은 “그쪽에 능력 있는 사람이 많다. 저보고 추천해 주라고 하면 많이 하겠다”면서 “저도 능력 있다”고 웃음기를 품고 대답했다. X-파일의 구체적인 목적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는 부분이다.

정치 재개한다는 박 전 원장, ‘윤 대통령 X-파일’ 거론하며 은근히 공치사?

CBS 인터뷰 말미에 박 전 원장은 ‘이번 주 중에 (민주당에) 복당할 계획’을 밝혔다. 당대표에도 도전하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2선에서 돕겠다”면서 “이번에 비대위원장 설이 있어서 복당신청도 미뤘다”고 덧붙였다. 일선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지난 10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퇴임 후 처음으로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X-파일’에 대해 언급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지난 10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퇴임 후 처음으로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X-파일’에 대해 언급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다시 정치를 재개하겠다는 박 전 원장의 인터뷰를 접한 여론은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 국정원장을 그만두고 나서 정치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는 것부터 적절치 않다는 비판 일색이다. 당대표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2년 후 총선에 다시 나설 가능성은 다분하다는 점을 지적한 댓글도 눈에 띄었다.

심지어 언론 플레이에 능한 박 전 원장이 윤 대통령의 X-파일을 언급한 이유는, ‘윤 정부에서 자신을 입건할 경우, 방패막이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X-파일을 손에 쥔 자신의 존재삼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론을 이용해 X-파일의 존재를 흘렸다는 것이다.

또 윤 대통령의 X-파일을 대선기간 중에 흘리지 않음으로써,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일부 기여했다는 식으로 은근히 공치사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박 전 원장 사과는 했지만...국정원은 ‘흥신소’로 격하시키고 자신의 몸값은 높여?

그러나 국가 정보를 담당하는 국정원을 증권가 정보지를 생산하는 일개 ‘흥신소’ 수준으로 전락시킨 책임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전직 국정원장으로 경박하게 행동하고 발설한 내용에 대해서 위법 사항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심지어 국정원이 박 전 원장의 처신에 대해 ‘강한 유감’으로만 끝낼 게 아니라, ‘국정원법 위반’으로 고소해서, 전임 국정원장처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무엇보다도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수장으로 박 전 원장을 임명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이 제일 크다는 비난도 거센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다 못했는데, 사람쓰는 걸 제일 못했다”는 지적이다.

박 전 원장은 파문이 커지자 11일 밤 9시쯤 SNS에 글을 올려 “국정원과 국정원 직원에게 부담된다면 앞으로 공개 발언 시 더 유의하겠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 9단’인 박 전 원장이 자신의 발언이 초래할 논란을 예측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자신의 방패막이 혹은 몸값 높이기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윤 대통령 X-파일’이라는 무리수까지 던진 박 전 원장이 민주당에 복당한다면, 민주당의 지지도는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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