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과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2020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기일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서울 청운동 옛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과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2020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기일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서울 청운동 옛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사진=연합뉴스

현대중공업은 한국경제의 기적을 상징하는 세계 최대 조선회사다.

1973년 설립된 이후 1983년부터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으며 대한민국을 세계 제1의 조선 대국으로 이끌었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는 단일 조선소 수주 잔량 기준으로 세계1위(600만톤 이상)에 올라 조선 그룹 기준 글로벌 수주잔량 역시 꾸준히 1위를 달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에는 정주영 창업주가 울산 바닷가 허허벌판에 조선소 부지만 잡아 놓고 거북선 그림이 새겨진 500원권 지폐로 영국 은행을 설득해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사업, 해양, 플랜트, 엔진 기계 등 기존 사업에 더해 2010년에는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는 등 세계적인 종합 중공업 회사로 도약했다.

정주영 창업주는 현대중공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6남 정몽준 현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정몽준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1982년에 사장, 1987년에 회장을 지내며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 조선회사에 올려 놓았다.

정 이사장은 1988년 제13대 총선을 시작으로 7선 국회의원을 비롯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후 대선 출마, 2009년 한나라당 대표 취임 등 오랜 기간 정치와 스포츠외교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1991년 현대중공업 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이후 현대중공업은 10대 그룹 중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유일한 기업으로 30년 가까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은 정몽준 이사장의 외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겸 한국조선해양(KSOE) 사장(41)으로의 3세승계가 한창 진행중이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 지주회사다.

정몽준 전 의원이 정치권에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자신의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말한 바 있다. “미국처럼 대주주로 편안하게 살면 되지 골치 아프고 피곤하게 경영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현대중공업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고달픈 경험을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정기선 사장의 첫 직업은 신문기자였다. 동아일보사 기자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남짓 기자로 일했다. 아버지 정 이사장은 국회의원 시절 입버릇처럼 “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라고 했는데, 그 영향이 많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정 부사장은 지난 2006년 현대중공업 재무팀에 입사해 대리로 근무했고 미국으로 유학해 MBA를 취득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했다.

정기선 부사장이 가업 승계의 길로 가게 된 것은 ‘필연’으로 보인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이 아직 창업한 지 50년 정도밖에 안되고 재계 전반에 가족 경영이 뿌리내린 재계 상황에서 현대중공업과 같은 큰 회사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을 비롯한 범(凡)현대가 기업 대부분이 3세 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있는 것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한국 재벌 특유의 계열사간 수평 수직적 분업구조를 감안하면, 현대중공업이 현대가(家)의 일원이 아닌 영구적 전문경영인 체제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주영 회장 시절 현대그룹 계열사 CEO를 지낸 인사는 “현대그룹은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라는 3대 주력기업을 중심으로 정주영 창업주의 형제 및 자녀들이 계열사를 맡아서 수평 및 수직분업을 이루는 기업”이라며 “아직도 범현대가를 통해 이런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현대 가문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선박 건조비용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선박용 후판(厚板)을 현대제철 등으로부터 조달하는데, 현대제철 입장에서 현대중공업의 경영권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원하겠느냐는 것이다. 정몽준 전 의원이 당초 생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그룹 안팎에서는 정 전 의원의 부인 김영명 여사와 정주영 전 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해 작고한 정주영 회장의 막내동생, 정상영 전 KCC 명예회장은 현대중공업의 가족 승계를 주저하는 조카 정몽준 이사장의 생각을 바꾼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이라는 회사 자체가 정주영 회장의 혼(魂)이 서린 상징적 기업이라는 점 뿐 아니라 KCC가 생산하는 도료(페인트)의 최대 소비처가 현대중공업이 만드는 선박이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6일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 등과 손잡고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CO2) 운반선 개발에 나선다는 것이 큰 뉴스가 됐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글로비스가 7만4천입방미터(㎥)급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의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런 프로젝트 또한 현대차 정의선 회장과 정기선 사장의 사촌관계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정기선 사장은 아버지 정몽준 전 의원과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아버지처럼 공부를 잘 했다. 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아들 정기선 부사장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왔다.

정 이사장이 미국 컬럼비아대·MIT·존스홉킨스대에서, 정 부사장은 스탠퍼드대에서 대학원을 졸업하며 미국 명문대 유학도 다녀왔다. 부자(父子) 모두 학군사관(ROTC)으로 군 복무를 한 30 기수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정기선 사장은 말수가 적고, 겸손하며, 수줍어하는 성격도 부친과 판박이라고 한다.

정기선 사장으로의 3세승계가 지난 몇 년간 문재인 정권이라는 정치적 환경에서 급물살을 탄 점은 흥미롭다.

정기선 사장은 2018년 3월 은행대출 등을 통해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 5.1%를 확보하면서 현대중공업지주 3대주주가 됐다.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청, 일본의 수출규제 대책을 논의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정기선 당시 현대중공업 부사장이었다.

38살의 정 부사장이 대통령 주재 행사에 주요그룹 총수와 함께 했는데, 당초 현대중공업에서는 이 행사에 전문경영인인 권오갑 그룹 부회장이 나갈 계획이었지만 청와대 쪽에서 정 부사장의 참석을 권했다고 한다. 그보다 2주전,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와의 회담 이후 진행된 오찬에도 정 부사장이 참석했다.

당시 재계순위 10위(202년 기중 9위)였던 현대중공업그룹의 동일인, 즉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그룹의 공식적인 대표는 최대 주주인 정몽준 이사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30대의 나이에 직급 또한 부사장에 불과한 정기선을 초청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몽준 이사장의 ‘불편한 대면’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었다.

정몽준 이사장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가 대선 전날 이를 번복하는 일이 있었고 이후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하고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등 민주당에 맞서왔다. <계속>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