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문가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첫 한국 방문에서 경제 안보를 강조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미국 국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의 민간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톰 번 회장은 24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방문 중에 안보뿐 아니라 경제 협력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해 “경제와 안보는 서로 연계되어 있는 사안이며,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경제적으로도 관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첫날인 20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방문해 공급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한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나는 등 한국 방문 중에 주로 안보 문제만을 강조했던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번 회장은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것에 대해 “지난해 4월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 ‘칩스 포 아메리카 (CHIPS for America Act)’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번 회장은 “미국 반도체 생산이 세계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며 “공급망 회복과 경제 활성화, 안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생산 기지가 미국 내 더 많아지기를 바랄 것”이라고 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VOA에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인 한국에서 공급망과 기술 협력을 강조한 배경에는 중국과의 경쟁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술 혁신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과 관계가 있다”며 “이런 경쟁 구도는 중국이 2015년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계획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기술적으로 세계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고, 기술 분야에서 1위가 되기 위한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의 트로이 스탠거론 선임국장은 VOA에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이어 방문한 일본에서 다자간 경제협력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을 공식 선언한 것을 언급하며 바이든 행정부는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에서 경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거론 국장은 “미국이 공급망 차질 문제뿐 아니라 기술 발전 측면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점점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다”며 “이는 중국이 계속해서 기술을 진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경제적 측면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미국이 안보뿐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굳건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3일 출범한 IPEF는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그리고 베트남 등 총 13개국이 참여했다. IPEF를 통해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세워 글로벌 무역, 공급망, 탈탄소와 인프라 구축, 탈세와 부패 방지 등 4대 분야에 집중한다는 계획으로,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참여국 간에 앞으로 몇 주, 몇 달간의 논의를 거쳐 세부 내용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번 회장은 “미국이 지난 수년 간 인도태평양 지역을 경제적으로 소홀하게 대했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즉시 ‘미국우선주의’ 기조를 실행에 옮기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탈퇴함에 따라 공백이 생겼다”며 “미국이 자리를 비운 사이 중국 주도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세계 최대의 다자 경제 협력체가 세워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한일 순방에서 경제를 강조한 배경에는 중국 견제뿐 아니라 미국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고 분석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미국에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미국 경제 성장과 연결돼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는 분명 미국 국내 경제를 고려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동북아 경제를 가르치는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VOA에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며 “현대차가 2025년까지 100억 달러를 투자하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이 전통적인 안보 중심의 동맹에서 첨단기술과 공급망 등 전략적 경제동맹으로 확장되면서 향후 미한 관계가 더 공고해질 것으로 판단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한미 관계를 재정립한 것은 한미동맹이 북한 사안 보다 더 넓다는 의미”라며 “미국과 한국 간 새롭게 형성된 관계는 기존의 관계 보다 지속성이 더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기존의 한미동맹은 미국이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겠다는 군사적인 약속에 그쳤다면, 이제는 안보에 경제가 더해진 협력 관계로, 이론적으로는 그 범위가 세계 무대로 넓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VOA는 전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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