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5월 10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취임 후 11일 만인 5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계를 안보동맹에서 경제·기술동맹을 넘어 보건·반도체 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친북·친중 기조로 심하게 이완된 한미동맹을 복원해야 하는 시점에서 양국 정상이 ‘더 튼튼하고 넓은 동맹을’을 위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공동목표를 재확인한 것은 시의적절한 안보·외교 성과였다. 사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동안 ‘안보와 동맹’을 거듭 강조했고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는 ‘자유와 공정’을 반복 강조했었다. 이를 기억하는 국민들은 새 정부가 튼튼한 안보와 동맹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는 기조를 펼쳐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새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분야는 안보·외교 말고도 많다. 지금부터 윤 대통령은 경제, 안보,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노동 등의 분야에서 수많은 정책과제들과 씨름해야 한다. 전임 정부들의 좋은 정책은 계승하고 바꿀 것은 바꾸며 사안에 따라서는 전면적인 개혁과 새로운 정책도 필요할 것이나,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챙겨야 하는 것이 국가안보다. 나라가 살아야 정치와 경제가 있고 법치, 인권, 언론의 자유 등을 운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지 않아 보인다. 성공적인 윤-바이든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맞닥뜨릴 한반도 국제 정세가 너무나 엄혹하기도 하지만, 특히 국내 정치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념적·지역·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각양각색의 정치인들이 반지성주의적 정치풍랑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치권력을 되찾기 위해 선전선동을 일삼는 정치인, 더 큰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처세주의 정치인, 지은 죄 때문에 좌불안석인 정치인, 안락사 수순에 들어간 정치인 등의 몸부림이 곳곳에서 윤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갈 데까지 간 ‘두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경제와 기술에서는 ‘개천에서 난 용’이지만, 정치는 갈 데까지 간 나라다. 정치의 수준부터가 그렇다.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애국 정치가(statesman)보다는 사리사욕을 위해 야합과 변절을 일삼는 처세주의 정치인(politician)이 득실대는 정치판에서 우국충정의 정책이 양산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정당의 공천이란 국가와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엘리트를 충원하는 과정이지만, 현실에서는 선거에서 공을 세웠거나 권력자와 가까운 사람들이 벌이는 논공행상이며, 정치에서의 성공이란 권력을 잡은 정치 보스들이 자신의 패거리들과 요직과 권력과 그리고 부를 나누면서 한 세상을 풍미하고 훌쩍 떠나는 ‘먹튀’를 의미한다. 어떤 나라를 또는 얼마나 많은 빚을 후임정부와 후대에게 남길 것인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 역사에도 널리 인재들을 모아 부국강병을 이끈 ‘난세의 영웅’들이 있지만, 오래된 일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언론인과 법조인이 많고 이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도 자유지만, 많은 기자, 앵커, 검사, 판사 등이 정치인 변신을 염두에 두고 직무에 임하는 한국에서 공정 보도와 불편부당한 수사나 판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경제는 선진국 정치는 후진국’인 것이다.

정치가 대한민국을 ‘두 나라’로 쪼개고 있는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통상 민주국가의 선거에서는 경영자는 친기업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고 노동자는 노동자를 우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표를 주는 식으로 자신의 이해득실과 정책관에 따라 투표한다. 그렇게 정치판이 구성되어 이해집단들 간 경쟁과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쪽 진영에 속한 유권자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정책관 또는 후보자의 능력과 무관하게 이쪽 진영에게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고 저쪽 진영 사람들은 저쪽 진영에게만 표를 준다. 이렇듯 두 진영이 제로섬적 대결을 펼치는 상황에서 능력, 진실성, 정당성 등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무능하고 부당하며 거짓이어도 우리 편이면 지지하고 아무리 유능하고 진실되며 정당해도 저쪽 편이면 묻지 않고 반대한다. 이쪽 진영이 ‘전략적·집단적 역투표’를 통해 저쪽 진영의 후보나 대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구도 에서는 정치지도자에 대한 지지도나 여론조사가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은 이렇듯 ‘두 나라’ 현상이 심하게 민주주의를 왜곡시키고 있는 여건에서 내외의 위협들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틀과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언론, 사직기관의 수사, 법원 판결, 선관위 등의 공정성과 권위가 무너진 나라, 실정을 저지르고 떠나는 지도자도 자기 진영으로부터 탄탄한 지지도를 누리는 나라, 임기를 시작하는 대통령을 격려하는 ‘허니문’ 전통마저 사라진 나라, 진영대결을 위해 정치인들이 새 정부의 구성을 가로막는 나라, 국회의원들이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법도 제정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시위와 선동으로 정부를 흔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세력들이 건재하는 나라에서 윤석열 정부는 국가의 단일성을 수호하고 안보와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 이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지켜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하는 기본 책무가 있다. 반지성주의 정치가 기승을 부리든 말든 또는 정부를 흔들려는 촛불 난동이 있든 없든 반드시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 정부에게는 모든 것에 우선하여 추진해야 하는 시급한 안보과제들이 있다. 강한 한국군 재건, 동맹 강화, 북핵 대비 그리고 군 통수권자의 전쟁지휘 능력 함양이 그것들이다.

강한 한국군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전임정부 5년 동안 군을 유약하게 만든 적폐들을 청산하는 개혁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정치중립적인 강군을 재건해야 한다. 유사 사태시 군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사실에 유념하여 애국심, 전략 역량, 전투지휘 능력 등을 기준으로 군 수뇌부를 구성해야 하며, 줄서기에는 능하나 무능한 군인들을 수뇌부에 앉히는 것은 망국을 자초하는 일이다. 동맹 강화를 위해서도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5·21 한미 정상회담으로 동맹복원을 위한 신호탄을 올렸지만, 앞으로 수행해야 할 세부과제들이 수두룩하다. 정부 간, 군 간 그리고 민간 간 동맹신뢰를 복원해야 하고, 특히 연합연습 복원을 통해 확고한 연합방위 태세를 재정비해야 하며, 재미 반한(反韓)단체들이 미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벌려온 로비활동에 대해서도 정확한 분석과 대처가 필요하다. 최대 당면 위협인 북핵에 대해서도 강화된 독자역량과 동맹역량을 통해 확고한 억제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북한이 기존의 ‘억제’ 전략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핵사용을 불사하는 ‘핵전투 전략’을 천명하고 있음에 유의하여 ‘핵균형’을 통한 억제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우산 조항을 삽입하는 동맹조약 개정이 시급하며, 미 전술핵의 한반도 또는 인근 지역 재배치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의 전쟁지휘 능력 함양은 다른 안보과제들에 우선하는 시급과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유사시 군 수뇌부와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논의해야 하며 군에 위임할 결정은 위임하되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들을 결단함으로써 군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생사(生死)를 좌우한다. 검사 생활 27년이 경력의 전부인 윤 대통령으로서는 생소한 업무일 것이다. 새 정부는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상황별로 전쟁지휘를 연습하는 지휘소연습(CPX)를 개발하여 수행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대통령은 유사 사태 발생시 즉각 업무에 복귀하여 전쟁을 지휘하는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국방에 대한 군 통수권자의 의지는 지금까지 충분히 확인된 만큼 여기에 통수권자의 전쟁지휘 능력과 유능한 군 수뇌부가 더해진다면 국가안보는 한결 더 나아질 것이다.

‘원 오브 뎀(one of them)’인가 ‘비수를 품은 혁명가’인가

국민은 대통령이 전지전능한 존재이기를 희망한다. 국내외 안보·외교 정세를 꿰뚫어 보고 장단기 국가생존을 담보해나가는 안보·외교 전략가이기를 바라며, 동시에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국민경제를 살찌울 경제전문가이자 교육의 백년대계를 수립하는 교육가이기를 기대한다. 처세주의 정치인들을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애국 정치가들로 대체하고 내로남불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혁명가이기를 희망하며, 나라가 이념과 지역으로 두 동강이 나면서 그리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과 처세주의자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중에 설 땅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에게 딛고 설 땅을 되찾아 주는 마술사이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런 만능 대통령은 없다. 사람의 능력에 한계가 있고 대통령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은 대통령이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서 인재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지혜와 경륜을 활용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해주기를 원한다. 한 마디로, 국민은 대통령이 혁명가이자 난세의 영웅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세계적으로 이런 대통령은 흔하지 않지만 없지는 않다.

지금으로서 윤 대통령이 조국·추미애 전 법무장관 같은 사람들이 그려낸 기구한 정치역사 속에서 본의아니게 등장한 풍운아일 뿐인지, ‘신의 한 수’와 ‘비수’를 품은 난세의 영웅일지, 또는 지금까지 수없이 명멸해간 여느 정치인들처럼 주변사람들과 관직과 권력을 나누면서 한 세상을 호령하다가 훌쩍 떠나는 ‘one of them’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좌우를 넘나드는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당장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것들이 더 큰 그림을 위한 신의 한 수일지 또는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날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국민은 어떤 경우든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만은 확실히 해주기를 원하며, 그러면서도 그가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혁명가의 비수’가 번쩍 모습을 드러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그래서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검찰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오직 범죄자 뿐”이라는 신임 법무장관의 취임사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국민이 적지 않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