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대규모 추가 투자를 발표한 데 대해 정 회장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자리라는 게 미측 설명이다.

조지아주에 설립되는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전용공장은 6조3천억원을 투자,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조지아주에 설립되는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전용공장은 6조3천억원을 투자해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는 한미반도체동맹을, 정 회장과는 한미자동차동맹을 결성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는 미국을 ‘제조업 대국’으로 부활시키려는 ‘바이드노믹스’와 ‘한국적 특수성’이 결합된 산물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재용과 정의선 입장에선...한국보다 미국에서 반도체 만들고 전기차 생산하는 게 유리

삼성전자가 지난해 5월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기로 한 것은 ‘미국 내 공급망’ 구축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 사항을 수용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52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세제혜택 등을 통해 시설투자액의 40% 정도를 돌려주는 게 골자이다. 미국 인텔이 삼성전자, TSMC 등 외국기업을 배제하자는 로비를 진행하고 있지만,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반도체 지원법’의 혜택에서 제외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가 한국에 투자를 하면 특별한 세제나 금융지원을 받을 게 없지만, 미국에 투자하면 ‘이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생산공장을 증설할 경우 ‘고임금’과 ‘강성 노조’라는 걸림돌을 피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라는 거대 노조가 현대차지부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공장별 자동차생산 모델 및 일정까지 통제할 수 있는 구조이다. 임금인상이나 상여금 지급, 정년연장과 같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수시로 공장가동이 중단될 개연성이 높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미국 내 생산공장, 강성 노조 파업도 없고 평균 임금도 낮아

반면에 미국 내 자동차 생산공장은 울산의 현대차 공장보다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노조나 파업 이슈가 없고 평균 임금도 낮다. 미국 등에 수출할 차량은 무조건 미국에서 생산하는 게 남는 장사이다.

더욱이 미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다양한 지원정책도 기대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기간(20~22일) 동안, 공장 건설 부지인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지역에서 조지아주 당국과 ‘전기차 전용 공장 투자 협약’을 체결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내 생산공장 신설에 ‘한미경제동맹 강화’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지아 전기차 전용공장은 6조 3천억원을 투자해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건립된다. 해당 공장은 내년에 착공돼 2025년 상반기에 완공될 예정이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첫 전기차 공장이다. 앨라바마의 현대차 공장과 조지아주 기아 공장에 이어 미국 내 세 번째 공장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내 생산기반이 빠르게 확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의 고질적 병폐에서 벗어나면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은 빠르게 강화될 듯

차제에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내 물류시스템과 전기차 기술기반도 강화된다. 신설 전기차 공장은 조지아 기아 공장, 앨라바마 현대차 공장과 함께 부품 협력사와 물류 시스템을 공유함으로써 효과적인 공급망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게 현대차측의 설명이다.

신설 공장에는 현대자동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가 실증 개발한 스마트 제조 시스템이 설치된다. 인공지능(AI)에 의한 자동화 시스템, 탄소중립(RE100) 달성을 위한 친환경 저탄소 공법 등과 같은 다양한 제조 신기술이 도입된다. 국내 현대차 공장에서 이 같은 기술혁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강성인 현대차 노조와의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노조가 반대하면 도입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미국 내 생산공장은 이 같은 불합리한 변수로부터 자유롭다.

정 회장이 바이든 대통령과 구축하려는 한미자동차동맹은 이 같은 한국자동차산업의 고질적 병폐로부터 탈출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켜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노조의 미국 공장 신설 반대, 고령 노조원의 정년 연장이 목적?

그러나 현대차 노조가 “미국 전기차 공장 신설은 노조와의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빌미로 ‘반대 투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하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 임금 인상 등을 관철시키기 위한 협상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 노사 대표가 지난 10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2년 임금협상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 노사 대표가 지난 10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2년 임금협상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7일 소식지를 통해 “언론 보도를 보면 사측이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에 전기차 공장 건설을 발표할 예정인데, 노조에 단 한마디도 없었다”면서 “단협은 해외 공장 신·증설시 조합에 설명회를 열고,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고용안정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했기 때문에 미국 공장 설립은 단협 위반이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노조는 특히 ‘정년 연장’을 타협 불가능한 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 목표는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만 61세로 연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년 퇴직자 중 희망자에 한해 신입사원 수준의 임금을 주면서 1년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시니어 촉탁제(단기 계약직)를 폐지한다는 입장이다. 정년을 연장하면 촉탁제가 불필요해진다는 논리이다.

이는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에서 근무해온 고령자들의 이익을 위한 조치이다. 글로벌 자동차시장이 내연기관차 중심에서 전기차 등 미래차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는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내연기관차 생산인력을 인위적으로 감축하지 않았다. 강성 노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대신에 ‘정년 퇴직’을 통한 생산인력 물갈이를 추진해왔다. 현대차 노조원 4만7000명 중 올해부터 2026년까지 정년 퇴직 예정자는 1만26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퇴직하는 내연기관차 생산인력을 보충하지 않고, 전기차 인력을 충원한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전략은 노조의 발목잡기로 인해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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