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다는 소식에 경유차 운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08년 이후 14년만의 일로 전해진다. 경유를 주로 사용하는 화물차 운송업자와 건설장비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만간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고공행진 중인 경유 가격이 2008년 이후 14년 만에 휘발유 가격을 추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고공행진 중인 경유 가격이 2008년 이후 14년 만에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지난 12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추 부총리는 “휘발유보다 경유 가격이 급등해 화물 차량으로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굉장히 어렵다”며 “화물 자동차를 가지고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해서 부담을 덜어드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고, 조만간 경유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14년 만에 휘발유 넘어선 경유 가격...글로벌 현상이지만 국내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하지만 정부가 현실적으로 어떤 지원책을 내놓을지에 대해 의문 부호가 찍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재정에 한계가 있는 데다, 다른 운송수단들과의 형평성 문제, 탈(脫)탄소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 등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유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기름값에 대한 지원을 한시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방안이 제시된다. 장기적으로는 화물시장의 운송비 합리화를 유도하는 등 인플레이션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업계가 직접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1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 전국 주유소의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날보다 4.97원 오른 L(리터)당 1958.26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8년 7월 16일 경유 최고가 기록인 1947.75원보다 10.51원 비싼 가격이다.

같은 시각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날보다 2.33원 오른 1951.02원을 기록했다. 경유와의 가격 차이는 7.25원이다. 앞서` 지난 11일 전국 경유 평균 가격은 2008년 6월 이후 14년 만에 휘발유 가격을 넘어섰다.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역전 현상이 13일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렇듯 비싼 경유 가격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경유 재고 부족 사태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로 촉발된 석유제품 수급난 여파 탓에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유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내 경유 가격의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구조에서 기인한 측면이 많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추 부총리가 구상하는 방안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며 급등 중인 국내 경유 가격이 역대 최고가 기록도 경신했다. 사진은 13일 서울 시내 주유소에 휘발유, 경유 가격 안내판 모습. [연합뉴스]
최근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며 급등 중인 국내 경유 가격이 역대 최고가 기록도 경신했다. 사진은 13일 서울 시내 주유소의 휘발유, 경유 가격 안내판. [사진=연합뉴스]

① 유류세 일괄 인하로 경유 인하폭이 적어서 가격 역전 초래...유류세 차등 인하가 해법

통상 국내 주유소 경유 판매 가격은 휘발유보다 L당 200원가량 저렴했다. 그 이유 때문에 경유 자동차를 선호한 소비자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 석유 시장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조금 더 비싸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팬데믹 사태 전부터 경유의 배럴당 가격은 휘발유보다 4~5달러 더 높게 책정 됐었다"며 "팬데믹 기간 중에는 경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낮아졌지만, 올 초부터 국제 경유가가 다시 휘발유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결국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200원 정도 더 쌌던 이유는 애초부터 화물차 등 운송사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치였다는 의미이다.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더 쌀 수 있었던 근본 원인으로 ‘유류세’가 꼽힌다.

유류세는 휘발유와 경유 등 일부 석유파생연료에 붙는 7개의 세금 및 준조세를 통칭하는 용어로, 휘발유 1L를 기준으로 교통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관세 등이 붙는다. 현재 유류세는 휘발유 기준 L당 820원으로, 휘발유 소비자 판매가격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경유의 유류세는 L당 약 581원으로, 경유의 유류세가 휘발유 유류세보다 훨씬 저렴하다.

현재 기준 L당 820원인 휘발유의 유류세는 20% 인하 조치에 따라 작년 11월부터 164원 떨어진 656원이 부과되었다. 30% 인하되면서 82원이 더 떨어져 574원으로 내려갔다.

반면 기준 L당 경유의 유류세는 약 581원이다. 20% 인하 조치에 따라 경유는 116원 떨어진 465원이 부과됐다. 여기에서 추가로 10% 인하되면서 58원이 더 떨어져 407원이 부과됐다.

유류세가 일괄 인하됨에 따라, 휘발유의 하락 효과가 더 커진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휘발유 유류세가 820원에서 574원으로 246원 떨어지는 동안, 경유의 유류세는 581원에서 407원으로 174원 떨어지는 데 그쳤다.

따라서 경유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유류세를 일괄 인하할 것이 아니라, 경유의 유류세 인하가 차등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당초 유류세 인하가 검토될 때부터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정부는 일괄 인하를 통해 정책의 신속한 효과를 우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 유류세 인하가 시행된 지난해 11월 12일, 유류세 인하분이 적용된 알뜰주유소와 미적용된 일반 주유소 이용자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왼쪽 사진은 이날 유류세 인하분이 적용된 서울 시내의 한 알뜰주유소. 오른쪽 사진은 이날 유류세 인하분이 미적용된 서울 시내의 한 자영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20% 유류세 인하가 시행된 지난해 11월 12일, 유류세 인하분이 적용된 알뜰주유소와 미적용된 일반 주유소 이용자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왼쪽 사진은 이날 유류세 인하분이 적용된 서울 시내의 한 알뜰주유소. 오른쪽 사진은 이날 유류세 인하분이 미적용된 서울 시내의 한 자영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② 유류세 인하하면 경유차 유가보조금은 감소돼...유가연동보조금 늘려야

유류세 인하는 휘발유 소비자에게는 희소식이지만, 경유차 운전자에게는 반드시 희소식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류세가 인하되면서 경유차 운전자에게 지급되던 유가보조금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유가보조금은 현재의 유류세율에서 2001년 6월 당시 유류세율(L당 약 183원)을 뺀 만큼을 지원하는 제도다. 따라서 유류세를 20% 인하하면 보조금이 L당 106원 줄고, 인하 폭을 30%로 확대하면 보조금은 L당 159원 더 감소한다. 내는 세금이 줄면서 보조금도 함께 깎이는 구조이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하기 전인 20% 또는 이전 수준에서 유가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공식 전달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이날 “유류세가 인하되면서 유가보조금도 함께 줄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줄어든 유가보조금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5월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유가연동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연동보조금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유가연동보조금은 경유 가격이 기준가격인 L당 1850원보다 오르면 초과 상승분의 절반만 지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지난 10일 기준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경유 평균 가격이 L당 1931.32원(오후 5시 기준)이므로, 실제 유가연동보조금은 L당 40.66원 수준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지난 3월 결의대회에서 "유류비가 30% 넘게 올랐지만 운송료는 3%밖에 오르지 않았다"며 "유류세와 연동된 유가보조금이 삭감되면서 사실상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규탄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③ 정유업계, 국제유가 오르면 휘발유보다 경유 ‘마진’을 더 키워...정부가 알뜰주유소 마진부터 내려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세계적인 경유 생산국인 러시아의 수출이 막히면서, 경유 공급 불안으로 인해 정유사들의 ‘마진’은 역대 최고로 올랐다고 분석된다.

특히 국제 유가가 1원 오를 때 국내 정유사들은 경유 판매 가격을 3.75원, 휘발유 판매 가격은 3.18원 올린 것으로 알려진다. 정유사들이 휘발유보다 경유에 더 많이 부과한 마진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지난 12일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정유사에서 마진을 좀 줄이고, 주유소에서도 가격을 좀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제 유가 급등 등 인상 요인이 있을 땐 빨리 오르고, 인하 요인이 있을 땐 느리게 내리는 ‘주유소 판매 가격의 비탄력성’도 경유 가격 고공행진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관리하는 알뜰주유소의 마진을 줄이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운영하는 주유소라고 하면 지금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알뜰주유소의 마진을 조금 줄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알뜰주유소가 전국 주유소의 11%에 달하는 만큼, 알뜰주유소의 마진 조정을 통해 주유소 간 경유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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