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9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한국형 FBI)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한 후보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고려해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며, “검찰 수사권 박탈을 전제로 한 수사청 설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설치를 전제로 할 경우 법무부에 소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주장하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중수청’ 설립이 필수적이다. 검찰에게 남겨진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까지 완전히 뺏어서 중수청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FBI를 법무부 소속으로 두고 있는 만큼, 당초 중수청을 법무부 소속으로 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었다.

중수청을 법무부 소속으로 하겠다던 민주당, 한동훈 발언에 당황?

민주당은 중수청 설립을 위한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원내 지도부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윤석열정부에 ‘잘 드는 칼을 쥐어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의 칼끝이 오히려 민주당을 향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사개특위는 '한국형 FBI'인 중수청 설립 논의를 위해 구성됐다. 구성 후 6개월 내 중수청 설치를 위한 입법 조치를 완성하고, 이로부터 1년 내 중수청 발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수사기관 권한 조정까지 논의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모두 폐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위는 민주당 7명, 국민의힘 5명, 비교섭단체 1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민주당에서 맡는다.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민주당은 사개특위 구성의 건을 의결하고 특위 위원 명단 제출 데드라인을 오는 9일로 설정했다.

그에 따라 민주당은 지난 6일 정성호 의원을 위원장으로, 송기헌·김종민·김승원·김용민·임호선·천준호 의원 등을 위원으로 임명하는 사개특위 위원 명단을 확정했다.

중수청 설치 사개특위 구성안 표결. [사진=연합뉴스]
중수청 설치 사개특위 구성안 표결.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중수청 설립을 민주당 수사 저지 방편으로 인식

물론 국민의힘은 중수청 설립 논의 자체가 민주당 측 인사의 수사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보고 특위 구성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사개특위에 참여할 생각이 없고, 명단 제출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사개특위 구성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국회법상 국민의힘이 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도, 국회의장은 직권으로 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 앞서 2020년 박병석 국회의장이 법제사법위원회 등 6개 상임위원회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위원을 강제 선임한 선례가 있는 만큼 특위 강행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중수청은 민주당에게도 독?...조응천, “윤석열 정부에 잘 드는 칼을 선사하는 것”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과연 중수청을 설치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더욱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중수청) 설치를 전제로 할 경우 법무부에 소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는 만큼, 오히려 민주당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조응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5일 MBC 라디오에서 “황운하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중수청법은 곧 야당이 될 우리 당에 비토권이 없다”며 “윤석열정부에 아주 잘 드는 칼을 하나 선사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지난해 2월 황운하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중수청법에 따르면 후보추천위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야당의 거부권을 규정하지 않아 여당이 될 국민의힘의 입김이 더 작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 입장에서는 향후 전개될 중수청장 임명에 10일 공식 취임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입김을 배제하기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우리가 한동훈에게 중수청을 갖다 바칠려고 검수완박에 목을 맸나?”라는 푸념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동훈 피하려고 중수청을 독립기관으로 설치?

결국 윤 대통령의 복심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의식해 중수청을 법무부 소속이 아닌 독립 기관으로 둘 가능성이 크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검찰은 법무부, 경찰은 행정안전부 소속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독립 기관이다.

독립 기관이 될 경우,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제기된다. 공수처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만들어지면서, 검찰 출신의 참여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사 노하우가 있는 검사가 적다 보니, 공수처의 수사력에 대해 ‘아마추어’라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서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왼쪽 두 번째부터),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서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왼쪽 두 번째부터),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의 의도대로 독립 기관이 된다고 하더라도, 1년 6개월 후 중수청이 설립될 때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최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중수청을 설립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만, 그럴 경우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법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15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회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재의할 경우엔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법률로 확정된다. 현재 168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범야권 의원을 다 모아도 현 국회의원 293명 중 3분의 2인 193명을 확보하기 어려워, 중수청 관련 법안 강행 처리는 어려운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하면 검찰의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수사권 유지돼

윤 대통령이 중수청 법안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검찰은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으로 존속하게 된다.

설혹 중수청이 가까스로 만들어지더라도, 수사인력은 지금의 검찰 조직에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중수청장의 입장에서는 공수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베테랑 검사와 수사관을 뽑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게 되면 중수청은 과거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수완박을 목표로 하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셈이다. 그럴 경우, 민주당 내부에서도 ‘차라리 중수청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졸속으로 통과된 검수완박법의 이러한 허점을 민주당 내부에서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진다. 결국 중수청은 설립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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