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속담이 이번 검수완박법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핵심으로 하는 개정안에 ‘소급 적용 단서’가 조문화됐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부칙 2조와 검찰청법 개정안 부칙 4조에 그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ㆍ박찬대ㆍ김용민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15일 오전 검찰청법ㆍ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ㆍ박찬대ㆍ김용민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15일 오전 검찰청법ㆍ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 법은 ‘법률 불소급의 원칙’을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법 시행 이전의 사항들은 현행법에 근거해 유지하도록 두는 것이다.

‘법률 불소급 원칙’ 파괴,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도 경찰로 이관...형사소송법 개정안 부칙 2조로 테두리 치고 검찰청법 개정안 부칙 4조로 쐐기 박아

그런데 개정안의 내용은 이미 검찰이 수사하는 사항이라도 지방경찰청으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에선 이 조항을 주목해 “검수완박 진짜 이유가 부칙에 숨어 있다”고 강력 비판하고 있다.

부칙은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면서 법의 시행일이 언제부터인지, 공포일로부터 곧바로 시행할지 혹은 유예기간을 둘 것인지, 또 개정 전 법조항과 충돌하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등을 규정하는 부분이다.

민주당이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부칙 제2조(검찰에 수사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한 경과조치)는 '이 법 시행 당시 검찰에 수사 계속 중인 사건은 해당 사건을 접수한 지방검찰청 또는 지청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경찰청이 승계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지방검찰청이 승계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72명 전원이 지난 15일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중 부칙 부문.
더불어민주당 의원 172명 전원이 지난 15일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중 부칙 부문.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해 차단하고 있다. 검찰청법 개정안 부칙 제4조(소관 사무에 관한 경과조치)는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의 제4조 1항 1호에 따른 범죄수사 사무는 경찰청이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수사권 승계 주체를 애매하게 만들어놓고, 검찰청법 개정안에서 경찰청만이 승계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관련 검찰 수사 저지 의도?...김웅 의원, “대장동 사건 등 중단시키겠다는 뜻”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됐을 때 검찰이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인 사건을 경찰에 넘기도록 명시한 것이다. 검찰이 아닌 경찰이 수사를 넘겨 받아, 문재인 정권 관련 수사를 지연시키거나 저지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6대 범죄 사건 등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건들을 모두 관할 경찰청이 승계해 수사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검사 출신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서 “법 개정의 숨은 의도는 대부분 부칙에 숨어 있다”며 "'국민을 위해서' 법을 개정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구라이고, 법 개정의 흉계는 부칙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법 개정의 숨은 의도는 대부분 부칙에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김웅 의원 페이스북 캡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법 개정의 숨은 의도는 대부분 부칙에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김웅 의원 페이스북 캡처]

김 의원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부칙 제2조를 언급하면서 "이 말은 지금 검찰에서 수사 중인 대장동 사건, 산자부 블랙리스트 사건, 삼성웰스토리 지원 사건 등을 중단시키겠다는 뜻"이라며 "대부분 부칙에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그대로 유지하는 규정을 두는데, 검수완박법에는 반대로 각 지방경찰청으로 뺏어가는 규정을 두고 있다. 즉, 검수완박의 진짜 의도는 자신들에 대한 수사를 막겠다는 것임을 대내외에 당당히 공표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검수완박’ 8월부터 시행 예정, 3개월간 처리되지 못한 사건들은 몽땅 경찰로 이관돼

민주당의 계획대로라면 개정안은 4월 국회에서 처리돼, 5월 3일 국무회의 공포를 거쳐 8월부터 시행된다. 3개월 유예기간(부칙 1조) 안에 처리되지 못한 사건들은 몽땅 경찰로 이관되는 셈이다. 발의 직후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검찰이 진행한 6대 범죄 수사가 4000~5000건에 불과하다. 이를 경찰에 이관하는 데 3개월이면 충분하다”며 소급 적용의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부칙 2조대로라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문재인 정부 수사 방지법’이라고 비판했던 국민의힘의 주장이 실제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월성 원전 수사,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조국ㆍ추미애 전 법무장관 수사 등 현 정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올스톱’되기 때문이다.

이상직 의원 연루 의혹 제기된 ‘타이이스타젯’ 사건, 8월이면 전북지방경찰청으로 넘어가

국민의힘이 대표적으로 꼽는 사건이 ‘타이이스타젯’ 사건이다. 현재 전주지검이 수사 중인 타이이스타젯 사건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오는 8월이면 전북지방경찰청으로 수사가 넘어간다. 타이이스타젯은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차명으로 운영해온 것으로 의심받는 태국 회사로, 문 대통령의 전 사위 서모씨를 특혜 취업시켰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취업 특혜 의혹은 서씨가 문 대통령의 딸 다혜씨와 부부 관계였던 2018년 있었던 일로, 최근 두 사람은 이혼했다.

지난 1월 19일 전주지검은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창업주인 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 사이 자금 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를 잠정 중단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19일 전주지방검찰청은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창업주인 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 사이 자금 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를 잠정 중단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사건은 지난 1월 “증거가 태국에 있다”는 이유로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이 내려졌지만, 정부가 바뀌면 즉각 기소중지가 풀릴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 수사가 재개되는 것이 아니라, 경찰로 이관될 가능성이 크다.

전주지검이 전북경찰청의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이를 강제로 가져올 방법은 사실상 없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이 개정안에서는 삭제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부실수사해도 검찰은 보완 요구 못해...범죄자에겐 ‘도피처 제공 효과’?

부칙이 포함된 법안이 발의되자,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 압박에 나섰다. 국회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전원은 지난 17일 “대통령이 검수완박 입법 강행 방침에 침묵한다면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태”라며 “검수완박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국민에게 밝히기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여론전을 위한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특정 사건의 수사를 막고 특정 사건의 수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검찰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부칙 2조가 법률 불소급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대해 “법안 자체가 이미 검찰 수사의 이관을 전제로 하는데, 검찰이 계속 수사를 하게 두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경찰이 부실수사를 해도 검찰이 보완 요구를 할 수 없게 한 검수완박법’은 범죄자들에게 일종의 ‘도피처’를 제공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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