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혔지만 한국 사람들은 가까운 일본을 자주 찾는다. 대도시의 최신식 복합건물에서 쇼핑만 즐기다 오는 이가 아니라면 지역 명소로 꼽히는 전근대의 오랜 목조 건축들을 찾고 여기에 깃든 역사 속 인물과 주요 사건들을 찾게 된다.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와 도판 위주로 역사를 읽자는 국내 출판사 '이다미디어'가 이번에는 『일본 전국시대 130년 지정학』(지은이 코스믹출판, 옮긴이 전경아, 감수 야베 켄타로)이란 책을 냈다. 일본 무로마치 막부 말기인 15세기 후반부터 도쿠가와 막부가 출범한 17세기 초까지 약 130년간 이어진 전국시대를 70여 개의 테마와 지도로 풀어낸 책이다.

통일왕조가 부재했던 분열의 시대, '전국시대'는 다양한 인물과 복잡한 사건의 흐름에 더해 낯선 인명과 옛 지명 등으로 일반인들이 역사책을 중도에 덮게끔 만든다. 하지만 역동적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주요 다이묘들이 저마다의 지리적 환경에 따라 어떠한 지정학적 전략을 택했는지를 다양한 입체지도와 도해를 통해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따분한 통사식 서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위 '백문백답' 형식의 챕터 구성으로 전국시대의 주요 사건과 흐름들을 보다 쉽고 기억하기 편하도록 정리해준다. 

결국 전쟁은 경제력의 싸움이다. 각국의 다이묘들은 천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농업 생산력과 산업 기술 개선 등에 열린 자세를 갖고 있었다. 16세기의 대항해 시대가 일본의 전국시대에 미친 영향은 화승총 도입 뿐 아니라 기독교를 위시로 한 서양의 선진문물 유입이었고 각국의 다이묘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했다. 이 책은 수확량을 통해 평가한 주요 다이묘들의 세력도와 당시 주요 도로에 있는 다이묘의 영지와 거성 등 권력의 움직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조선의 역사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는 것을 되뇌이며 책을 읽으면 보다 흥미로울지 모른다. 바다로부터 서구 근대문물을 앞다퉈 수용한 점, 이를 통해 다이묘들이 각국의 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경제와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한편 막대한 토건사업 등으로 '총력전'에 나선 점을 보면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일본과 조선의 운명이 갈렸다는 넋두리에 가까운 통념에 실소하게 될 것이다.  

지난 연말 출판사 '이다미디어'는 『세계사 속 중국사 도감』(지은이 오카모토 다카시, 옮긴이 유성운)이란 책도 출간했다. 세계사 속에서 중국사를 조망하겠다고 밝힌 대로 이 책은 시작부터 중국을 중심에 놓지 않고 4등분한 '문명지도' 가운데 하나로 본다. 일본의 연부역강한 학자로 이 책을 쓴 저자는 "각 문명은 완전히 단독으로 번창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발명된 것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각지로 전파되면서 서로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다.

이 책은 중국사 5000년을 "건조 지역과 습윤 지역이 인류의 삶을 양분했다"는 대전제에서 풀어낸다. 유목세계와 농경세계라는 구분은 중국사 연구에서 오래 됐지만 이 책은 보다 최신 경향을 반영해 자연 환경과 기후의 변화가 농업을 비롯한 산업 생산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고 또 민족 대이동을 유발했는가를 설명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채택한 사관에 따르면 '3세기 유목민과 농경민을 덮친 한랭화의 충격파', '9세기 온난화의 시작과 중국 북방 유목민들의 대이동, 그리고 당송변혁기', '14세기 중반 한랭화와 페스트 유행에 따른 몽골제국의 경제권 붕괴' 등이 통일왕조의 몰락과 출현의 주된 기점이 된다. 14세기 이후부터 20세기 현대 중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선 종전까지와 달리 기후 변화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 편의주의적 해석으로 읽힐 수 있지만 저자는 결론부에 이르러 "중국 역사의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령은 14세기였다"며 "그 분수령은 세계적인 한랭화에 의한 '14세기의 위기'와 뒤이어 유럽에서 시작된 대항해 시대"라고 강조한다. 바로 이 두 요인이 명청시대와 그 이후의 현대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근거는 무엇일까? 궁금하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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