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없이 오직 진영의 관점에서만 생각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대선 후의 통합 논의는 양편으로 갈라진 정치 현실에서 당연한 요청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시마다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어쩌면 누구도 해결을 원치 않는 과제인 듯 하다. 이번 대선은 영끌로 표를 모았다는 표현처럼 세의 규합에 힘을 쏟은 치열한 선거여서 대선 후의 갈등 상황이 과거보다 더 심하다. 항상 반복되는 통합 논의는 상대방의 정치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정신적 내전 상태를 보여준다. 갈등과 분열이 정치적 자원으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통합을 말하면서도 통합을 원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선거도 인구수나 투표권자수에서 다수인 80년대를 지내온 4050세대가 이 사회의 주류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80년대 형성된 586운동권의 사유에 대한 시비 논쟁을 떠나서 그것이 녹아들어 있는 사회 인식은 당대를 살아온 세대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 세대의 생각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화 세대는 현재의 여론을 주도하며 사회를 이끄는 주류세력이다. 이번 선거에서 2030세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 특징이지만, 현실과 가까운 미래는 여전히 사회 주류인 4050세대의 인식과 행동에 달려있다.

시간이 흘러서 세대는 교체되었지만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는 새로운 사회 이념은 출현하지 않았다. 이런 이념적 공백을 이용하여 철저하게 대립하는 진영간 투쟁은 분열의 정치 지형을 열었다. 그런 진영 정치 투쟁의 사유의 기반을 사회주의적 사고 또는 시대착오적인 운동권 주사파의 사유로 보거나 조선조 양반계층의 유교문화적 사유방식에서 찾거나 세계대전 이후의 청년 세대의 신전통주의 경향성에서 그 유래를 찾거나 민족 개념에 경도된 백년전쟁같은 허구에서 찾을 수 있겠는데, 어떤 경우건 이런 정치적 사유는 이념의 공백 상황에서 과거를 소환하여 현실을 과거의 잣대로 해석하여 설명하면서 현재에 적용하려는 행태이다.

진영의 존속과 대립의 유지를 위해서 과거를 소환해서 벌이는 논쟁은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해결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닌데, 해결되지 못하는 주제여서 오히려 소환된 것 같다.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상대방이 없다면, 그리고 진영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 동기가 확실하지 않다면 이러한 주제의 논쟁이 오래가지 못할 터이고 더 이상 확장되기 어렵다. 그래서 진영 싸움을 위한 과거의 논쟁을 지속하게 하고 널리 확장하려오직 진영의 관점에서만 생각면,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필연성을 제공하는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 필요하고, 논쟁을 방해하는 요소로서 하나의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을 경계하면서 하게 한다. 이념보다도 이러한 관점이 정치적 대립을 유지하게 하는 유력한 내적 동기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정치가 종교가 되어버렸다. 정치를 선과 악의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 정치적 승리를 선의 승리로 보고 패배한 상대방을 척결해야 할 악의 무리로 보아서 심판해야 한다고 본다. 친일파를 색출해서 처단해야 한다는 백년전쟁이라는 허구가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 명분의 상대 정파에 대한 숙청작업으로 드러났다. 정치가 악의 문제로 환원되고 정치보복이 종교적 뒷받침으로 정당화된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유사 종교전쟁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 악의 근절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어떤 인간도 상대의 악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내로남불이라는 모순이 여기서 나온다. 정치는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법의 문제와 정치 문제의 혼란은 정치를 종교로 환원할 때에 발생한다. 정치적 대립 상황을 선악의 문제로 삼아서, 정치가 정치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문제다. 오늘날 진영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고 심판의 권한을 가진 유사종교세력이 되었다. 승려나 사제와 목사가 주재하는 종교재판소에서 정치가 논해질 수 없다. 법정은 재판을 하는 곳이지 정치적 토론의 장소가 아니다.

종교가 되어버린 정치는 메시지마저도 종교적이다. 다른 모든 메시지를 배척하는 유일한 구원의 메시지를 믿어야 한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흠없고 유력한 인물이 등장하여 나라를 구한다는 이야기는 공화국의 현실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종교적 메시지다. 1948년 건국된 민주공화국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특정한 정치적 인물이나 집단 내지 진영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본다. 건국 후 70여년이 경과되었음에도 우리 모두의 공화국이라는 관점이 확실히 자리잡히지 않았다. 공화국에 근거를 두지 않는 정치적 논의는 혼란을 야기할 수 밖에는 없다. 지난 정권 시기는 이러한 혼란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의 선거는 진영의 대표를 내세우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왕을 뽑는 선거다. 국가 수반에 대한 제도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하면서도 아무도 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 실천이 없이 위대한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해서 공화국을 이끄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우리의 토론은 진영간의 정치 투쟁에서 모두의 공화국에 대한 토론으로 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태도에 기초하고 과거를 소환해서 전개되는 논쟁은 신앙에 근거한 것이어서 정치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배경이 30여년에 이르는 제6공화국의 적대적 공존관계의 토대가 아닌가 싶다.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을 종교와 지역 및 국가간의 장기간의 전쟁을 걸쳐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종교적 권위에 대신하여 국가의 권위와 질서를 만들어가는 역사라고 볼 때에, 현실은 공화국의 권위와 질서를 찾기 전까지 변화에 극렬히 저항하는 종교 전쟁의 단계가 아닌가 싶다.

현실의 정신적 내전상태의 극복을 위한 통합의 길은 현재의 유사종교전쟁이 종결되어야 열리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서 소환된 주제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들의 문제로 정의된 현실의 주제에 대한 토론이 열리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각자의 신념을 내려놓으면서 과거의 주제 논쟁이 불필요함을 인정하고 오늘의 문제로 토론을 시작하자고 합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세대를 넘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를 방치해서는 안되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이러한 작업은 시작되어야 한다.

대화를 위한 자리로 나간다는 것은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되겠다. 정치를 종교적인 신념의 실천으로 바라보거나 인물이나 집단 및 진영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떠나서 공화국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겠다. 통합의 방향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그러한 방향으로의 변화일 수 있다. 우리가 원하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을 위한 길이 통합의 길이다. 자기를 바꾸는 것이 정치를 정상화하는 길이고 통합을 위한 대화가 열리는 출발점이다. 진영의 사유에 머물러 있으면서 현실을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일을 시작했을 것이고 먼저 이 길을 걷는 사람이 공화국의 미래를 열 것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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