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가격을 역전한 경우도 있다. 이번 주 경유의 전국 평균 가격은 1918원으로, 2008년 7월 이후 14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23일 서울의 한 주유소의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섰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휘발유 전국 평균 판매가는 2001.78원, 경유는 1918.05원이다. [사진=연합뉴스]
23일 서울의 한 주유소의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섰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휘발유 전국 평균 판매가는 2001.78원, 경유는 1918.05원이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경유 가격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경유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서는 배급제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서울 지역 3월 경유 가격은 지난해 동월 대비 32% 인상돼

26일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넷째주(3.20~24) 전국 주유소의 경유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15.6원 오른 L(리터)당 1918.1원이었다. 서울 지역의 경유 가격은 주중 L당 2000원을 넘기도 했다. 작년 3월에 비해 평균 32% 인상된 가격이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전날 오후 기준으로 보면 일일 평균 전국 주유소의 경유 판매 가격은 L당 1919.7원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가격이 높은 제주도는 L당 2023원으로 이미 2천원선을 돌파했고, 서울은 1998원이었다.

국내 휘발유 가격 역시 10주 연속 상승해 2012년 10월 넷째주(2003.8원) 이후 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이달 넷째주 휘발유 가격은 전주보다 7.5원 오른 L당 2001.9원을 기록했다.

최고가 지역인 제주의 휘발유 가격은 전주보다 9.1원 오른 L당 2108.2원, 최저가 지역인 전북의 휘발유 가격은 전주 대비 6.3원 오른 1974.9원을 기록했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넷째주 전국 주유소의 경유 판매가격은 L당 1918.1원이고, 휘발유 가격은 L당 2001.9원이다. 경유와 휘발유 가격의 차이가 83.8원으로 좁혀졌다. 통상 국내 경유 가격은 유류세 차등 적용의 영향으로 휘발유보다 200원가량 저렴한데, 최근 경유 가격이 더 빠르게 오르면서 휘발유와의 가격 차이가 좁혀진 것이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역전한 경우도 있다.

대한석유협회는 "국제 경유 가격 상승 추이를 고려할 때 국내 경유 가격도 당분간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렇게 급등하고 있는 경유 가격을 둘러싼 4가지 쟁점을 짚어본다.

① 코로나19의 나비 효과인 ‘재고 부족’

경유 가격 급등은 유럽 상황과 맞물려 있다. 경유차 비중이 높은 유럽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차량 운행이 감소하자, 글로벌 메이저 정유사들이 생산을 줄여 재고가 줄어든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 같은 재고 부족 상태는 ‘수요 증가’ 혹은 ‘공급 감소’ 중 어느 한 요인만 발생해도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즉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의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유럽 경유 수입의 60% 가량을 차지하던 러시아산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가격이 뛴 것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유사들이 가동률을 낮추고 생산을 줄이면서 유럽지역에서는 경유 재고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 와중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자 국제시장에서 경유 주문이 폭증해 공급 부족현상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②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가 두 번째 원인

대(對)러 제재 차원에서 미국이 최근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내리면서 국제 유가가 한 차례 뛰었고, 이어 유럽연합(EU)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면서 국제 경유 가격이 치솟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대(對)러 제재 차원에서 미국이 최근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내리면서 국제 유가가 한 차례 뛰었고, 이어 유럽연합(EU)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면서 국제 경유 가격이 치솟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전 세계 각국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시행하거나 검토한다는 소식이 경유 가격 상승세를 부추기는 두 번째 요인이다.

대(對)러 제재 차원에서 미국이 최근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내리면서 국제 유가가 한 차례 뛰었고, 이어 유럽연합(EU)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면서 국제 경유 가격까지 치솟았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경유 수입량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석유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러시아 석유와 석유 제품의 공급이 하루 최대 300만 배럴 줄면서, 전 세계 석유 파동을 낳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3대 석유 중개업체 중 하나인 '비톨'의 러셀 하디 CEO는 “최악의 경우, 유럽이 연료 배급제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러시아에서 경유의 절반을 수입하고 있는 탓에, 경유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③ 일괄적 유류세 인하 조치가 역차별 발생시켜

국내적으로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오히려 경유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경유보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이 더 많은데, 유류세를 20% 일괄 인하하면서 휘발유 가격 인하 폭이 더 커진 것이다. 유류세 20% 인하 조치로 L당 휘발유는 164원, 경유는 116원의 가격 하락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휘발유에 비해 세금이 적다는 이유로 경유를 선택했던 경유차 소비자들이 ‘일괄 유류세 인하’로 인해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당초 내달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유류세 20% 인하 조치를 3개월 연장할 방침이다. 정부는 국제 유가가 더 가파르게 오를 경우, 유류세 인하 폭을 30%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유류세 인하폭이 커질수록, 경유 가격이 오히려 휘발유 가격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유는 화물차량이나 택배 트럭 등 상업용 차량, 굴착기, 레미콘 등 건설장비의 연료로 사용된다. 산업이나 운수용 수요가 큰 만큼 정책적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화물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류세 인하 폭이 차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④ 국내 화물·물류업계의 부담이 너무 커져

2~3주가량의 시차를 두고 국제 경유 가격을 따라가는 국내 주유소의 경유 가격은 2008년 이후 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이에 경유 차를 주로 이용하는 화물·물류업계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경유 가격 급등으로 부담이 커진 화물업계 단체들이 거리로 나와 정부에 지원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서는 실정이다.

두바이유 기준 국제 자동차용 경유 가격은 3월 둘째 주에 배럴당 158.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 휘발유 가격은 120.4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3월 셋째 주 국제유가는 경유 124.1달러, 휘발유 103.3달러로 오름세가 다소 꺾였지만,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경유 가격이 급등하자 화물업계 현장에서는 기름값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생계를 위해서는 차를 계속 운행해야 하지만, 달릴수록 적자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기름값 폭등에 따른 화물노동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기름값 폭등에 따른 화물노동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노동자들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기름값 폭등에 따른 화물노동자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최근 경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화물 노동자의 유류비 지출은 적게는 수십 만원부터 많게는 200만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화물연대본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평균 1313원이었던 경유 가격은 지난 16일 기준 1918원으로 32% 상승했다. 이로 인해 5톤 이하 화물차는 64만원, 12톤 이상은 175만원, 25톤은 250만원 가까이 한 달 유류비가 증가한 것으로 화물연대본부는 보고 있다.

화물연대본부 박귀란 정책국장은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해 3월과 비교했을 때 평균 리터당 600원 정도 올라간 상태"라며 "한 달에 4천 리터를 사용하는 차를 기준으로 하면, 250만원 정도의 원가가 상승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화물연대본부는 컨테이너나 시멘트 품목과 같이 3개월에 한 번씩 유가 인상에 따라 변동된 운임이 재고시 되는 '안전운임제'를 확대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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