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모르는 오마이뉴스 대참사…어업조합 관할권 문제를 독도 영유권 문제로
일본어 모르는 오마이뉴스 대참사…어업조합 관할권 문제를 독도 영유권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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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20년간 수학하고 대학에서 가르치기까지 했다는 김문길 씨의 황당한 주장

아래 기사 내용과 관련해 당사자인 김문길 씨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펜앤드마이크에 전해 왔습니다.

1. 나는 과거 ‘1939년 편입’ 주장을 한 사실이 있는데, 이번에 자료가 새로 발견된 것이다.

2. 나는 내가 발견한 문서 내용이 영토·주권에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20년간 수학하고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일관계사를 강의했다는 ‘제보자’ 노교수는 일본어를 못 하는 걸까? 아니면 잘 하면서도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엉터리 제보를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제보자’ 노교수에게서 올바른 제보를 받고도 기자가 선동·과장 기사를 쓴 것일까?

지난 22일 인터넷 뉴스 ‘오마이신문’에는 한일관계라든지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기사가 올라왔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문서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본이 이제껏 주장해 온 ‘1905년 편입’ 주장을 뒤엎고 1929년에 와서야 비로소 독도를 자국 영토로 삼은 증거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2022년 2월22일자 오마이뉴스의 기사.(캡처=오마이뉴스)
2022년 2월22일자 오마이뉴스의 기사.(캡처=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오문수 씨가 적은 기사 내용에 따르면 제보자는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 김 소장은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한일관계사를 가르친 인물로 소개돼 있으며, 구체적인 프로필은 알 수 없지만 인터넷에 나타난 정보를 종합해 보면 젊은 시절 일본에서 공부했고 올해 77세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수 년 전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을 방문해 과거 독도에 어업회사를 찾아갔다는 김 소장은 찾고자 한 어업회사 사장의 손자인 아하타 소산 씨로부터 그의 할아버지 아하타 사이타로(八幡才太郞)가 〈죽도일기〉(竹島日記)라는 제목을 붙여 남긴 문서 등을 건네받았다.

그 문서들은 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령으로 확정하지 못한 데 대해 일본 정부에 보낸 탄원서와 그 부속 자료 등이었는데, 수신인이 ‘다케시타 관방장관’으로 돼 있는 것으로 보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내각과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내각에서 두 차례(1971년 7월5일부터 1972년 7월7일까지, 1974년 11월11일부터 1974년 12월9일까지) 내각관방장관을 지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제보자와 오마이뉴스가 공개한 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拝啓 竹下官房長官殿

私は八幡才太郎と申しまして当年八十三歳、島根県隠岐郡五箇村大字久見(現隠岐の島町大字久見)の生まれであります。

竹島が五箇村地内として農林省より許可書を交付せられた明けに五箇村に帰属して居ります事実を、玆に六十余年毎日欠くことなく書き続けて居る日誌を参考にして当時よりの事情を申し上げます。

この竹島問題を現政府御当局の御力により、一日も早くわが国の領土である事を韓国に認識せしめ、早期に帰属の措置を講ぜられる事を国民の一員として願望して止みません。

다케시타 관방장관께

저는 야하타 사이타로라고 하며 올해로 83세, 시마네현 오키군(郡) 고카무라(村) 大字久見(현재의 오키노시마정 大字久見) 출신입니다.

다케시마가 고카무라 지역 내로서 농림성으로부터 허가서를 교부받은 직후 고카무라로 귀속돼 있는 사실을, 여기 60여년 매일 빠뜨리지 않고 계속해 써 온 일지를 참고로 해 당시부터의 사정을 말씀 드립니다.

이 다케시마 문제를 현 정부 당국에서 힘써 주셔서 하루라도 빨리 우리나라의 영토라는 사실을 한국으로 하여금 인식케 하여 조기에 귀속 조치가 강구됨을 국민의 일원으로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러면서 이 탄원서의 작성자는 과거 독도에서 이뤄진 일본 어민들의 강치 잡이 실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次に、竹島に関して私の承知している事柄を御参考までに書き添えて見たいと存じます。私の記憶でありますので、事実関係年次等に多少の誤差があるかも知れません。どうぞ御含み願いたく存じます。

明治三十年頃、久見地区の故石橋松太郎村議がアシカの捕獲のため、竹島に出漁しました。生捕りしたアシカは京阪神方面のサーカスや動物園に高値で売られました。また、肉は現地で製造され脂にして持ち帰り内地へ出荷しておりました。其の皮は塩漬けして持ち帰り、軍隊の背嚢という鞄や革製品等に加工され非常に重宝されておりました。当時約十年間事業を続けていましたが、何国からも抗議や干渉を受けた事実はありません。

明治四十年頃、故石橋松太郎氏は隠岐島西郷町の故中井養三郎西郷町長兼西郷漁業組合長に事業を譲渡致しましたので、中井氏が事業を継続致しました。

鳥取県境港の漁船商等がアシカ捕獲の準備を進めて居る事を知り、外務省に出頭し事情を開陳して実情を訴えましたので、日本領土として事業開発をして……

다음으로, 다케시마에 관해 제가 알고 있는 사정을 참고로 해 주십사 덧붙여 쓰고자 합니다. 제 기억이기 때문에 사실 관계 및 연도 등에 다소의 오차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디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메이지 30(1897)년경, 구미 지구의 고(故) 이시바시 마쓰타로 촌의(촌의회 의원)가 강치 포획을 위해 다케시마로 출어했습니다. 생포한 강치는 교토, 오사카, 고베 방면의 서커스나 동물원으로 고가에 팔렸습니다. 또 고기는 현지에서 제조돼 기름으로 만들어져 갖고 돌아와 내지(일본 본토를 말함)로 출하했습니다. 그 가죽은 소금에 절여 갖고 돌아와 군대에서 사용하는 배낭 등 가방이나 가죽 제품 등으로 가공돼 매우 요긴하게 사용됐습니다. 당시 약 10년간 사업을 계속했습니다만, 어떤 나라로부터도 항의나 간섭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메이지 40년(1907)경, 고(故) 이시바시 마쓰타로 씨는 사이고정(町)의 고(故) 나카이 요사부로 사이고정 정장(町長·우리나라의 면장에 상당) 겸 사이고 어업조합장에게 사업을 양도했으므로, 나카이 씨가 사업을 계속했습니다.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의 어업상 등이 강치 포획의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외무성에 출두해 사정을 개진하고 실정을 호소했으므로, 일본 영토로서 사업 개발을 하여……

오마이뉴스 기사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그 다음에 나온다.

そこで、昭和二年九月三十日に久見漁業組合に竹島の五箇村久見漁業組合地先権編入の手続きを進める事を提案しました。この時、役員会全員の賛成を得ました。会の委託に寄り、竹島を久見漁業協同組合の地先として編入せられたい旨の申請書を作成し、農林大臣宛提出いたしました。

昭和三年九月十一日、島根県水産課長並びに昌子、今村県議が調査に出張されました。私は上記の内容に就いて詳しく説明いたしましたところ、区民の事情を了承出来ましたし、手続きなどに関しても充分尽力するとの御約束を賜りました。

その際に課長、両県議の御説明には、竹島は島根県が最短距離に位置し、若し他県に先鞭を付けられては悔いを千歳に残すこととなりかねない、適切有効な措置を速やかに執るとのご意見でした。

昭和四年の官報に、島根県の管轄区地域で久見漁業組合地先権編入と掲載され、完全に行政区域は五箇村に編入された次第です。

오마이뉴스는 밑줄 친 부분과 관련해 “(죽도는) 소화 4년(1929년) 관보에 시마네현 관할 구역으로 편입하고 행정상으로도 오키도 고카촌으로 소속되었다”고 번역해 소개하면서 그간 1905년 2월15일 외무성 훈령을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해 온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부분의 정확한 번역은 “쇼와 4년(1929년) 관보에 시마네현 관할구 지역 가운데 구미(久見)어업조합 지선권(地先權·조업권) 편입이라고 기재되어, 완전히 행정구역은 고카무라에 편입되게 된 것입니다”로 전후 맥락상 독도를 포함한 해역의 조업권이 구미어업협동조합에 속하게 됐음을 알리는 내용이 관보에 실리게 됐다는 뜻이다. 협동조합의 조업 관할권 조정 문제를 영토 주권의 문제로 바꿔친 것은 엄청난 비약이요, 선동이 아닐 수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제보자인 김 소장은 이전부터 오키섬을 방문해 어민들로부터 문서를 수집해 그를 바탕으로 일본의 독도 편입이 1905년에 이뤄졌다는 일본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해 왔다는 점이다. 2016년 8월16일자 경남신문 〈”독도, 한일합병 후인 1939년 일본에 편입”〉 제하 기사를 보면 김 소장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해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된 것이 1939년이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김 소장은 일본이 독도를 편입한 게 1929년인지 1939년인지부터 분명히 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경남신문의 2016년 8월16일자 기사의 내용.(캡처=경남신문)
경남신문의 2016년 8월16일자 기사의 내용.(캡처=경남신문)

오마이뉴스의 이번 독도 관련 기사는 일본에서 20년간 수학하고 학생들에게 한일관계사까지 가르쳤다는 ‘제보자’ 노교수가 일본어를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기자에게 엉터리 제보를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기자가 제대로 된 내용의 제보를 받고도 선동·과장 기사를 쓴 것인지, 많은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해당 기사를 작성한 오 기자는 문서 내용 가운데 일부를 “당시 독도에서 잡은 물개 박제 세트는 여러 곳에서 전시하고 있다”고 번역해 소개했는데, 제시된 문서상에는 그런 내용은 없고 일본 어민들이 독도에서 잡은 강치를 갖고 현지에서 제조해 기름으로 만들어 내지(内地·일본 본토)로 출하했다는 내용만 있다.

선동은 쉽지만,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작업은 참으로 고단하다. 그리고 문제가 된 부분의 우리말 번역은 아래와 같다.

거기에서 쇼와 2(1927)년 9월 30일에 구미어업조합에 다케시마의 고카무라 구미어업조합 지선권 편입 절차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때 임원회 전원의 찬성을 얻었습니다. 임원회의 위탁에 따라 다케시마를 구미어업협동조합의 지선(地先·조업 구역을 말함)으로 편입시키고자 한다는 취지의 신청서를 작성해 농림대신 앞으로 제출했습니다. 

쇼와 3(1928)년 9월 11일, 시마네현 수산과장 및 쇼지·이마무라 현의회 의원이 조사차 출장 오셨습니다. 저는 상기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 구민의 사정을 이해해 주셨고, 절차 등에 관해서도 충분히 노력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때 과장과 두 현의원(쇼지와 이마무라를 말함)께서 설명하시기로, 다케시마는 시마네현이 최단거리에 위치하고, 만일 다른 현이 선수를 쳐 가져간다면 후회를 천세에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며 적절하고 유효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쇼와 4(1929)년의 관보에 시마네현 관할구 지역 가운데 구미어업조합 지선권 편입이라고 기재돼, 완전히 행정구역은 고카무라로 편입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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