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감기만 해도 염색이 되는 샴푸’로 큰 인기를 모은 ‘모다모다 블랙샴푸’가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블랙샴푸의 원료 물질 중 하나인 ‘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1,2,4-trihydroxybenzene, 이하 1,2,4-THB)을 화장품 사용금지 원료로 지정해, 목록에 추가하는 개정절차를 추진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주)모다모다의 블랙샴푸의 원료물질을 화장품 사용금지 원료로 지정해, 목록에 추가하는 개정절차를 추진한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캡처]
식약처는 (주)모다모다의 블랙샴푸의 원료물질을 화장품 사용금지 원료로 지정해, 목록에 추가하는 개정절차를 추진한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캡처]

이해신 KAIST 교수, 세계 최초의 염색효과 샴푸 개발 ...식약처는 기어코 퇴출시키겠다고?

식약처는 지난해 11월 블랙샴푸가 의약품 등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는 과장 광고를 했다며, 이를 하지 못하도록 행정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모다모다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처분 중단을 신청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집행정지를 결정해 광고가 가능토록 했고, 현재 행정법원이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광고를 금지시킬 수 없게 되자, 식약처는 지난해 12월 ‘1,2,4-THB’(THB)라는 낯선 물질을 제품의 원료로 쓸 수 없도록 금지시키겠다는 ‘행정예고’를 내놓았다. 행정예고 시행 후 6개월까지만 제조가 가능하고, 제조된 제품에 한해 2년간 판매가 가능하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모다모다의 블랙샴푸를 시장에서 기어이 퇴출시키겠다는 것이 식약처의 의도로 풀이된다.

세계 최초의 염색효과 샴푸로 알려진 블랙샴푸는 이해신 KAIST 화학과 교수가 ‘폴리페놀’ 연구 개발을 통해 지난해 8월 첫선을 보인 제품이다. 사과의 갈변 현상을 활용한 것으로, 기존 샴푸에 폴리페놀 성분을 넣었다. 머리에 샴푸를 묻히면 폴리페놀 성분이 머리카락 표면에 붙어 갈변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때 THB가 폴리페놀을 결합시켜 갈변 현상을 돕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모다모다의 설명이다.

즉 THB는 모발 염색 기능을 하는 물질인 셈이다. 유럽에서는 ‘THB'를 알레르기 유발 성분으로 분류, 2020년 12월 화장품 사용금지 목록에 추가했다.

선진국에서 잘 팔리는 한국의 혁신제품을 한국 식약처가 규제?

식약처는 유럽 소비자안전성과학위원회(SCCS)에서 THB에 대한 ‘위해평가’를 수행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THB의 위해평가 연구사업을 2019년 4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수행했다. SCCS의 평가보고서와 관련 문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를 토대로 ‘THB'의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예고를 한 것이다.

이후 식약처는 독성·위해평가·화학 분야 전문가, 피부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자문 회의에서 THB에 대한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식약처는 잠재적인 유전독성 및 피부감작성 우려에 따라 사용금지 목록에 추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최종 결론을 도출해 지난 26일 발표한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사진=연합뉴스]
식품의약품안전처. [사진=연합뉴스]

식약처의 THB 금지성분 지정과 관련된 각계 반응은 비판적이다. 한국 과학자의 혁신제품을 한국 정부가 사장시키려고 한다는 게 그 핵심 내용이다.

학계 반발, “식약처 행보 이해하기 어려워”

경상대학교 약학과 이규리 교수는 “THB 성분을 사용금지 조치한 EU의 SCCS 보고서에서는 THB 성분이 기존 염모제의 주요 성분인 P-페닐렌디아민 성분과 결합 시 유해가능성을 다루고 있고, 이 실험이 염모제처럼 20~30분 정도 장시간 사용했을 때의 결과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 이혁진 교수도 “SCCS의 보고서에서 THB가 염모제 성분과 같이 쓰일 때조차도 포유류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명시됐음에도 식약처의 이번 행보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지적했다.

제재없는 미국에선 ‘품절 대란’ 사태 벌어져...유럽은 ‘염모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만 THB 규제

모다모다의 관계자 역시 “유럽에서 금지된 건 THB가 염모제와 함께 사용했을 때의 결과이다. 샴푸에 들어간 THB와는 용도가 다르고, THB를 (염모제 없이) 단독으로 사용했을 때는 유해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통과 등 안전성 입증에 대한 증거를 식약처에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주)모다모다 홈페이지의 블랙샴푸 설명. [사진=(주)모다모다 홈페이지]
(주)모다모다 홈페이지의 블랙샴푸 설명. [사진=(주)모다모다 홈페이지]

실제로 블랙샴푸는 지난해 7월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 공개된 지 9일 만에 총 7000여 명이 펀딩에 참여해 모금액 100만달러(약 12억원)를 달성했다. 이후 미국 아마존, 쇼피파이, 대형 마트 등 주요 유통 채널에서 팔리며 ‘품절 대란’까지 일으켰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영국·일본·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THB의 사용을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EU의 규제가 국제 사회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 이를 금지성분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우리 식약처도 금지성분으로 지정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욱이 유럽에서는 THB의 인체 부작용을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SCCS의 2019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실험용 흰쥐에 실험을 한 결과 THB의 피부감작성의 가능성이 확인됐다. 또한 쥐티푸스균(살모넬라 티피무리움)을 이용한 에임즈 시험에서 유전독성의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동물실험이 인체 부작용에 대한 직접적이고 확정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사람의 피부는 흰쥐의 피부와 생리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모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EU에서 THB를 사용금지한 것은 소비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전 예방적 차원’의 행정조치라고 할 수 있다. EU의 염색제 시장에서는 THB를 사용하는 염색제나 발색 샴푸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소비자들은 이례적으로 식약처 규제를 맹비난

반면 THB를 원료로 사용하는 모다모다의 블랙샴푸가 이미 출시돼 있는 우리의 경우는 EU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식약처의 행정예고가 사전 예방적 차원의 조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확실한 근거도 없이 ‘특정 기업의 제품을 퇴출시켜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려 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식약처의 THB 금지성분 지정이 실린 기사의 댓글에서 식약처를 비판하는 소비자의 목소리는 매우 높았다. “인체에 해롭기로 따지면 염색제가 더 심한데, 염색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 “K-뷰티를 이끄는 제품으로 정부가 나서서 홍보하지는 못할망정, 스타트업의 싹을 죽인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새치가 많이 나는 나이의 소비자는 ‘유전독성’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롱까지 등장했다. “염색제 업체와 대형 샴푸 업체로부터 식약처가 로비라도 받은 거 아닌가”라는 의혹도 발견되고 있다.

식약처 겨냥해 ‘마녀사냥’, ‘로비의혹’ 등 제기돼

블랙샴푸는 작년 8월에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150만여병이 판매되고, 100만명 이상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제품이다. 이런 제품에 대해 식약처가 갑자기 퇴출 명령을 내리는 배경에 대해, 식품의약품 전문 변호사인 A씨는 “숙취해소 음료에 대해 과대광고로 판단한 식약처가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패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신생업체나 획기적인 제품은 굉장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규정했다. 식약처의 이번 처사에 대해 ‘특정 업체만을 겨냥한 마녀사냥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는 여론과 부합하는 대목이다.

식약처의 결정에 대해 26일 ㈜모다모다는 입장문을 내고 “㈜모다모다와 카이스트(KAIST)는 1,2,4-THB성분을 함유한 자사 제품의 안전성 입증을 위해 다시 한번 의약품에 준하는 수준의 임상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며, 상반기 내에 받은 결과를 토대로 식약처와의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전문기관을 통해 입증한 수많은 안정성 자료를 제출하며 여러 차례 식약처에 재검토를 요청했으나,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명료한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모다모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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