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 8일간의 해외 순방 일정을 마치고 22일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칩거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오미크론 변이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상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오미크론의 우세종화는 진작 전망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갑작스런 칩거의 이유로는 궁색해 보인다.

해외 순방 강행했던 문 대통령, 오미크론 핑계로 신년 기자회견까지 취소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3개국 순방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2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공군 1호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3개국 순방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2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공군 1호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느닷없는 칩거에 따라, 당초 27일께로 예정됐던 신년 기자회견도 취소됐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할 인원과 명단을 파악하는 절차도 이미 진행됐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끝난 뒤 구체적인 기자회견 방식이 공지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통보돼, 그 배경을 두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는 기자회견 일정을 공식으로 발표한 적이 없으므로 ‘취소’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통령 기자회견은 관행적으로 잠정적인 날짜를 정한 뒤, 임박한 시점에 대변인 브리핑을 기점으로 기사화가 이뤄져왔다. 따라서 ‘공표하지 않았으므로 취소가 아니다’라는 설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오미크론 변이에 집중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는 설명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오미크론이 우세종화된 상황에서 방역정책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대통령이 오히려 답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이 기자회견 진행 여부를 너무 쉽게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불만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선관위 집단항명으로 ‘조해주 카드’ 철회한 직후 문 대통령 칩거 방침 발표돼...심기불편?

이에 대해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 지침에 따라서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재택근무를 실시한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민들께서도 백신 접종 참여와 마스크 착용, 설연휴 이동·모임 자제 등 오미크론 대응에 동참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는 문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했다.

하지만 ‘격리 면제자’인 문 대통령이 뜬금없이 재택근무를 결정하면서, 칩거의 배경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의 거취’와 관련해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 대통령은 3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조 위원의 임기 연장을 강행하려 했다가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집단 항명하는 초유에 사태에 봉착했다. 결국 조해주 카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의 칩거 및 신년기자회견 취소는 조해주 사태와 맞물려서 발표됐다.

문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 임기 연장 시도

퇴임을 앞둔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12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2022년 주요업무 및 양대선거 종합선거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퇴임을 앞둔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12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2022년 주요업무 및 양대선거 종합선거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9년 1월 24일 임명된 조해주 상임위원은 3년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이를 반려해, 비상임위원으로 3년 더 선관위원직을 연장하려고 했다. 선관위원의 임기는 6년이지만 그간 상임위원 3년 임기를 마치면 선관위원직에서 물러나던 관례를 깨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조 상임위원은 임명 당시에도 문재인 대선 캠프의 특보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치 편향 시비가 제기된 바 있다.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면서, 문 대통령은 선관위원으로는 처음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 조 상임위원을 임명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 조 상임위원에 대해 전례없이 ‘6년 임기’를 보장하려 함에 따라, 선관위는 정치편향 논란에 휘말렸다. 국민의힘은 “임기말 꼼수 알박기”라고 강력히 비판했고, 김기현 원내대표는 조 상임위원을 향해 “개인의 출세와 영달과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공정성을 엿 바꿔 먹은 아주 악질적인 인사”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다.

중앙선관위 직원 350명 조해주 사퇴 요구해...대통령에 대한 ‘초유의 항명 사태’

특히 선관위 내부에서도 조 상임위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선관위원으로 임기 연장 소식이 알려지자 20일 중앙선관위 직원 350여명이 사퇴 요구 의견을 전달했고,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사무처장과 상임위원 대표단이 사무총장을 면담하는 등 내부 반발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1963년 선관위가 설립된 이래 선관위 직원 2900명이 상임위원의 사퇴를 촉구한 것은 유례가 없는 초유의 사태로 관측되고 있다. 선관위의 전 직원은 “정권이 선관위를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집단 반발한 것이다.

선관위의 집단 항명에 봉착한 문 대통령은 이집트 순방중인 22일 귀국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조 상임위원의 사의를 적극 수용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문 대통령의 사의 반려가 대선을 앞두고 선관위를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한 방안이라고 주장해왔으나, 결국 오히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만 빚은 채 떠밀려 사의를 수용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중앙선관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선의와 달리 논란이 생긴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조 상임위원 후임 지명 계획에 대해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셔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청문회 등 임명 절차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고려할 때 후임을 현 시점에서 임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선대위본부장, “조해주 알박기를 통한 관권선거 획책” 비판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24일 선대본부 회의에서 조해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임기 논란 끝에 사퇴한 것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한 대선 관리를 포기하고 '조해주 알박기'를 통해 또다시 관권 선거를 획책했다"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24일 선대본부 회의에서 조해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임기 논란 끝에 사퇴한 것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한 대선 관리를 포기하고 '조해주 알박기'를 통해 또다시 관권선거를 획책했다"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조 상임위원이 ‘꼼수’ 임기 연장 논란 끝에 사퇴한 것과 관련해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24일 “정권 연장에만 혈안이 된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한 대선 관리를 포기하고 ‘조해주 알박기’를 통해 또 다시 관권선거를 획책했다”고 비판했다.

권 본부장은 이날 선대본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전방위적인 관권선거 획책은 상습적이고 고질적”이라며 “문 대통령은 60년 만에 선관위에서 일어난 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 담보된 새로운 내각을 즉각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선관위의 독립성 문제를 넘어, 현직 여당 의원들로 구성된 선거 관련 부처의 장관 교체까지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권 본부장은 특히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겨냥했다. 그는 “대선과 직접 연관이 있는 주무 장관인 전 장관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공약을 전면 뒷받침하며 금권선거에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박 장관은 편향적 검찰수사로 공안선거를 지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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