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시작되기도 전 지난 3월 시놉시스가 유출되면서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린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공방전이 뜨겁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남파간첩 임수호(정해인)와 여대생 은영로(지수)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이다. 간첩인 수호를 안기부에게 쫓기는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해 구해주는 과정과 안기부 직원을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하는 내용 등이 지난 18일(1화)과 19일(2화)에 걸쳐 방송됐다.

간첩 임수호를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한 윤영로가 치료해 주고 있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간첩 임수호(정해인 분)를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한 윤영로(지수 분)가 치료해 주고 있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간첩을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한 설강화 스토리, 민주화 운동 폄훼라고?

방송 직후 일부 시청자들은 이러한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화 운동 당시 운동권에게 간첩 누명을 씌웠던 군사정권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설강화 방영 중지’를 요구한 청원이 이틀 만에 30만명 이상 동의를 받았다.

국민 청원자는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서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것은 분명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JTBC는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대부분 오해가 해소될 것”이라며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억압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차별 방송에 앞서 많은 줄거리를 밝힐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JTBC 입장문, “극중에는 민주화 운동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아”

JTBC는 21일 입장문을 통해 “극 중에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지난 1, 2회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이어 “오히려 80년대 군부 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해명했다.

이런 JTBC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되자 JTBC는 ‘내용이 반전되는 5회를 앞당겨 편성’해 논란 잠재우기에 적극 나섰다. JTBC의 입장은 “초반 전개에서 오해가 비롯된 것으로, 시청자분들의 우려를 덜어드리고자 방송을 예정보다 앞당겨 특별 편성하기로 했다"며 "내용이 반전되는 5회차를 앞당겨 편성해 24일부터 26일까지 3, 4, 5회를 방송한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핵심은 2가지,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과 ‘정의로운 안기부’

드라마 한 편을 두고 ‘극명하게 반대’하는 입장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표현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사망한 고(故) 박종철 열사를 기리는, 사단법인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는 '설강화'에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민주화 운동을 간첩과 연계시키는 건,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또다른 가해"라고 지적했다. 당시에 박종철 열사는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의 대상이자, 고문의 희생자이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군부 독재 시절 많은 피해자들이 간첩 조작 사건으로 폭력과 고문을 당했다. 드라마 속 진짜 간첩을 쫓는 안기부, 간첩을 운동권인 줄 알고 숨겨주는 여대생 자체가 그들의 주장에 합리성과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선후보 역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서 설강화에 대해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그는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며 "전두환 국가전복기의 간첩조작, 고문의 상처는 한 세기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살아 계신다"고 지적했다.

즉 논란의 핵심은 2가지이다.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과, 안기부를 정의롭게 그렸다는 점이다.

‘설강화’ 스태프 A씨, “대본 어디에도 간첩과 민주화 연관 없어”,“운동권은 성역인가”

이에 대해 ‘설강화 제작진 스태프’ 중의 한 명이 설강화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을 전제로 옹호글을 올려서 화제다. 지난 24일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본을 1~16부까지 숙지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다. 1회에서 본 것처럼 당시 시대를 보여주는 배경으로 학생들 시위 장면이 잠깐 나오는 게 전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본 어디에도 간첩과 민주화와 연관된 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A씨는 ‘창작의 자유’를 강조하며 "운동권 대학생들은 언급하지도 못하는 성역인가? 안기부가 드라마 소재로 사용하면 안 되는 성역인가?"라며 "'설강화'에서는 운동권 학생들을 전혀 비하하지 않지만 반대로 비하하면 안 되나?”라고 비판했다.

진중권, “설강화 비난은 ‘열린사회의 적’”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그린 '설강화'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JTBC 설강화 캡처]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그린 '설강화'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JTBC 설강화 캡처]

진중권 작가와 ‘설강화’ OST에 참여한 가수 성시경 또한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이번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진 작가는 “한쪽에서는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고 난리를 치고, 다른 쪽에서는 간첩을 미화했다고 국보법으로 고발을 한다”라고 비판했다.

진 작가는 “둘 다 열린사회의 적이다.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봐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다. 그 초석을 흔드는 자들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라며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시청자들의 권리를 자기들이 침해해도 된다고 믿는 건지. 징그러운 이념 깡패들의 횡포를 혐오한다”고 밝혔다.

성시경, “우리와 다르면 ‘죽여버리자’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

성시경은 유튜브 방송에서 ‘설강화’ 논란과 관련 “몇 번, 몇 번, 몇 번, 몇 번에 몇 번을 확인했지만 문제가 없었다”라며 “방송이 되면 알겠지만, 그런 내용이 아닌 걸로 저도 확인했다. 만약에 역사왜곡 드라마라면 그게 방영이 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수가 옳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뭔가 ‘저런 의견이 있구나’ ‘어떤 사정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르면 ‘죽여버리자’라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청자 B씨, 간첩이 주인공으로 미화된 설강화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

하지만 ‘설강화’ 논란은 단순한 ‘표현의 자유’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1일 시청자 B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JTBC 사장과 설강화 감독 작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국민신문고 사이트를 통해 고발했다고 밝혔다. 고발인은 "JTBC와 '설강화' 제작진은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는데, 우리나라는 엄연히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나라"며 "북한 간첩이 주인공으로 미화되고 사랑놀음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설강화 논란의 본질은 ‘1987년 당시 운동권과 간첩이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는 데 있다.

민경우 대표, “전대협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조직”

민경우 대표는 24일 펜앤드마이크 방송에 출연, "전대협과 북한의 관계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밝혀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진=펜앤드마이크 유튜브 캡처]
민경우 대표는 24일 펜앤드마이크 방송에 출연, "전대협과 북한의 관계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밝혀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진=펜앤드마이크 유튜브 캡처]

이와 관련 24일 펜앤드마이크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민경우 미래대안행동 상임대표는 “30대 초중반 유튜버들이 간첩과 민주화운동은 아무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설강화가 역사왜곡이라고 한다”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민 대표는 당시의 민주화운동은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감추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당시 87년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전대협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학생회 회장들의 조직이었으며, 한국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조직이었다고 밝혔다. 임수경의 방북 등으로 북한과 연루된 증거가 많았다는 점과, 1992년 대법원이 ‘전대협을 북한과 관련있는 이적단체로 판시’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따라서 민 대표는 ‘설강화의 왜곡 논란은 지금의 2030 세대가 당시의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른 채 잘못 주장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1980년대 당시 주사파의 일원이었던 민 대표는 “좌익의 진실이 우리나라의 진실이 돼버렸고, 다른 소리를 내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며, “민주화투사라는 내피를 입고 있지만, 고려연방제를 추구하며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치던 사실을 앞으로도 계속 밝혀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