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칼럼] 우파 지도자들의 비극과 미완성 상태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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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12.09 07:44:54
  • 최종수정 2021.12.0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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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과 탄핵이 일상화되고 내전 양상까지 띄는 한국 정치
정치의 붕괴가 역설적으로 정치 만능 현상 초래
건국(nation building)의 도정을 걷고 있는 한국
19세기말 이래 민족사적 과제였던 근대화 노선 투쟁은 '현재진행형'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우파의 정확한 관점 정립해야
대한민국에는 세계사적 과제가 주어져 있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 정치는 드라마틱하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정치인과 정당, 정치 현상에 높은 관심을 기울이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선거 때만 되면 전국민이 정치 평론가가 되고, 각종 모임에서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 뺨치는, 국가의 백년지계를 좌우하는 경륜이 펼쳐진다.

정치권 물 좀 먹었다는 분들에게서는 “아, 내가 누구누구 대통령 만든 사람이잖아?”라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친목 모임에서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얘기가 일종의 금기사항인 것도 역설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고 그런 화제가 예민한 반응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치는 모든 가치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한다. 한국의 정치 과잉 현상은 정치에 의해 배분되는 가치가 지나치게 많고, 다양하다는 증거이다.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차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확산, 강화,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정치는 점점 내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좌우 진영의 차이를 떠나 공통된 현상이지만 특히 우파 대통령의 경우에서 심각하게 드러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4.19 이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가 생전에는 돌아오지 못하고 서거 이후에야 귀국이 허락됐다. 산업화를 통해 세계적인 성공 스토리를 써낸 박정희 대통령은 측근에 의해 시해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퇴임 이후 끊임없는 정치적 소송과 시비에 휘말렸고 작고 이후에도 온갖 모욕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동안 ‘물태우’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온건한 통치 방식을 선택했고 좌파와의 협력을 중시했으며 임기를 마친 후 다양한 방식으로 5.18에 사과하기도 했지만 역시 보복을 피할 수 없었다. 사후 유해가 묻힐 묘역을 찾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유골은 화장 후 연희동 자택에 안치돼 있으며 언제 장지를 찾을지 기약조차 없다.

이런 비극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와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이후 사실상 종신형이랄 수 있는 2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17년형도 실질적으로는 무기징역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일종의 내란에 의한 체제 전복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순전히 정치적인 공방이나 법적인 논쟁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국회의 탄핵 표결과 헌법재판소의 인용에 압박을 가하는 거대한 움직임이 펼쳐졌던 것이다.

당시 전국의 좌파들이 총동원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여기에는 중도세력도 동참했지만, 좌파가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일사불란한 대중동원, 시위의 조직 및 행사의 준비 등을 보면 거대한 조직력과 사상적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 탄핵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좌파 지식인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며,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모델인 것처럼 선전하지만 이는 왜곡된 인식이다.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선진국에서 이렇게 정변이 잦고 사실상의 내전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는 없다.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는 단일한 헌정질서를 중심으로 고정된 국경선과 영토 안에서 주권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국민들로 구성된다. 이런 국민국가에서는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참여하는 거버넌스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위기 상황이 아니면 헌정질서가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기존의 법질서로 수용하지 못하는 헌정의 예외적인 상황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상황을 다루고 해결책을 제시하여 기존 헌정질서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강화하는 것이 국민국가의 의회와 정당, 정치인의 역할이다. 의회에서 늘 새로운 법안을 심사하고, 기존 법률을 개폐하는 것도 바로 헌정의 예외적 상황을 일상적으로 다루는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정변 등 정치 불안이 일상화되고, 정치가 내전의 양상을 띤다는 것은 정치의 이런 기능이 망가졌다는 의미이다. 정치의 붕괴가 역설적으로 정치 만능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한국의 헌정질서는 매우 취약한 상태이며 국민국가 건설은 아직 완성되지 못하고 건국(nation building)의 도정을 걷고 있다. 그 결과가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한 운명이다. 역대 정치 지도자들은 사생결단의 한국 정치투쟁 전선에서 희생당한 존재들인 것이다.

이런 현상을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라고 표현했다. 같은 이름의 책에서 저자는 한국이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에다 언어와 문화, 인종적 동질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평등한 권력 접근을 의미하게 되었고 그것이 정치가 소용돌이 같은 치열한 경쟁의 영역이 된 원인이라고 말한다. 문제의 원인을 조선시대 등 한국의 사회문화적 DNA와 습속에서 찾으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정치 과잉의 원인을 조선시대의 영향 또는 한국인들 고유의 습속에서 찾는 것은 일종의 순환논법 또는 동어반복이다. 전통이나 습속은 현재 한국인들의 행동이나 생활 방식에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차적인 요소이다. 근본적인 요인이 발현할 때 그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본질적인 동력이 될 수는 없다.

개화 이전 외국인들의 조선 방문기에는 조선사람들이 게으르고, 느리고, 소극적이고, 지저분하다는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서두르고 부지런하고 극성이고 깔끔해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습속도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 불안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그건 본질적으로 건국과 동시에 진행됐던 남북 분단의 영향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사실상 남북 분단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북 분단은 해방 이전 즉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한반도 내부에 잠재해있던 좌우 대립과 갈등이 전면화한 현상이다. 그 갈등이 폭발한 것이 6.25였고, 남과 북은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대립 갈등의 해소 즉 통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분단은 근대화의 방향을 둘러싼 대립과 직결되어 있다. 어떤 국민국가를 건설할 것인가의 노선 차이에서 연유하는 문제라고 봐야 한다.

구한말 근대화 세력을 대표하던 개화파는 현실 정치에서 처참하게 패배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승리했다. 대한제국의 멸망 이후 복벽(復辟) 즉 이씨조선 회귀를 주장한 정치세력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조선이 망한 뒤 10년도 되지 않아 수립된 상해임시정부 헌법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치체제는 민주공화국으로 명기했다.

당시부터 우리 겨레는 근대화를 민족사적 과제로 인식하고 승인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근대화는 근대화이되, 어떤 방향의 근대화인가를 두고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근대화는 사실상 서구화이다. 하지만, 이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몇천 년에 걸쳐 축적해온 전근대 유산의 위력이 남아있는데다 중화(中華)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 민족주의의 요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근대화 과정의 부작용에 초점을 맞춘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하고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중국과 한국의 근대화론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거의 지적 전통이 단절되고 서구식 지식 기반의 축적이 빈약해서 이런 이념적 공세에 저항력을 갖기 어려웠다.

해방 이후 다수의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정치 체제가 사회주의였다는 조사 결과도 그런 현상의 반영이다. 1946년 8월 미군정청이 전국민 8,453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정치체제를 조사한 결과, 자본주의(14%), 사회주의(70%), 공산주의(7%), 모른다(8%) 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사회주의도 근대화의 한 형태이다. 하지만, 인권과 사적 소유, 기업과 시장의 자유 그리고 다양한 정치 사회적 이견을 법률적 절차에 의해 해소하는 법치주의 측면에서 심각한 맹점을 드러냈다. 사회주의는 왜곡된 근대화 이념이자 실패한 방법론이다.

우리 겨레의 현대사는 근대화의 완성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전개해온 과정이었고, 서구식 근대화와 소련과 중공식 근대화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를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해방과 분단, 체제 경쟁과 대결을 통해 어떤 체제가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가를 검증하는 투쟁이었던 것이다.

소련의 체계적인 설계 아래 전면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과 달리 대한민국은 미국의 무관심과 빈약한 지원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건국에 필요한 자원이 현저히 부족했고, 이를 이념적 자원을 통해 극복해야 했다. 건국의 정치이념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선택한 응답이 77%에 이르렀던 것은 그런 대한민국 건국세력의 정치적 취약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좌우 정치투쟁에서 우파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건국에 필요한 자원의 부족을 비정상적이고 때로는 비헌정적인 방식을 동원해 돌파해야 했다.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이나 박정희의 10월유신이 대표적이며, 전두환의 5.18도 마찬가지다.

민주화투쟁은 건국 과정의 한계와 그늘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즉, 민주화는 건국 및 산업화와 함께 근대화의 내용적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좌파 진영이 대한민국 건국의 최종 승리자로 인식되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펼쳐졌다. 건국과 산업화는 민주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거쳐야 했던, 잊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과거의 유산이 됐다.

문재인 정권의 등장은 대한민국이 북한 김씨왕조와의 정치투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화를 내세운 국내 좌파세력은 그 정치투쟁의 전위대였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신 김구가 사실상 국부(國父)의 위상에 올랐고, 박정희나 전두환 대신 김대중 노무현이 정치적 양심과 친근감이라는 이미지를 독점하게 됐다.

그 결과 민족사적 정통성을 다투는 전선은 우파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우파의 정확한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 좌파 학생운동 시절 ‘최고의 정치투쟁은 근현대사 투쟁’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주사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는 우리 겨레의 근·현대사가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과 투쟁해온 역사라고 보는 관점이며, 그런 점에서 북한에 민족사적 정통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지금도 필자가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기본 프레임은 비슷하다. 다만, 이 역사가 지향하는 방향이 외눈박이 反제국주의, 反식민지 투쟁이 아니라 현재 인류사의 최전선인 근대화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갖게 된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대한민국에는 민족사적 세계사적 과제가 주어져 있다. 민족사적 과제는 근대 국민국가(흔히 민족국가라고 부르는)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을 현실에서 입증하는 것이다. 즉, 김씨조선 체제를 무너뜨리고 북한 동포와 영토를 근대 국민국가의 헌정질서 안으로 포섭해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사의 과제인 근대화의 완성이다.

이런 민족사적 과제는 동시에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 즉 민족 통일의 달성은 현재 인류 문명의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체제에 대해 분명한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에 주어진 세계사적 과제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아직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목적의식적인 관점 자체가 없다. 역사의 해석을 정치 권력이 주무르고 관제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우파는 역사 허무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허무주의와 정치적 무능력에서 벗어날 때 우파는 좌파 패권의 굴레를 깨뜨리고 진정한 국민국가의 형성과 민족국가 완성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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