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리에 주일마다 드리는 “신음소리같지만 생명을 건 예배”
남한교회의 헌금으로 꽃제비와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북한 지하교인들
“딸들에게 우리가 통일이 돼 다시 만날 때 서로 부끄럽지 않도록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자고 말하죠”

북한 보위부 영상 속 '차덕순과 지하교인들이 매주 주일마다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는 사진(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북한 보위부 영상 속 '차덕순과 지하교인들이 매주 주일마다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는 사진(순교자의 소리 방송 캡처)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 국가 북한. 김일성은 북한에서 기독교를 ‘박멸’하고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러나 북한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 있는 이른바 ‘지하기독교인’은 4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5만~12만, 최대 20만 명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반인륜적 처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정권의 가혹한 박해와 살해 위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정권의 삼엄한 감시체제 아래 이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켜가고 있을까. 이 보고서는 독재 권력과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영혼의 존재와 자유를 향한 갈망에 대한 기록이다.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의 삶

북한의 지하교인들은 북한정권의 가혹한 박해와 살해 위협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다.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지만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구제사역을 한다. 그들의 자금은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이 보내는 후원금이다.

북한에 살고 있는 이명희 씨(가명, 73세)의 딸들은 남몰래 이웃을 돕는다. 주로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이다. 성실하지만 장사밑천이 없어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할 수 없는 사람들, 거리의 고아 꽃제비들, ‘굶어죽지 않기 위해’ 북중국경을 넘었다가 보위부에 걸려 구류를 살게 돼 보석금이 필요한 사람들 등이다. 대가없이 거저주면 의심하기 때문에 이 씨의 딸들은 장사를 해서 번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한다. 그러나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빚 독촉은 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년 전만 해도 이 씨는 일 년에 한두 번 북한의 딸들과 전화통화를 했다. 두 달에 한번 2~3백만 원을 송금했다. 당시에는 수수료가 30%였다. 최근에는 딸들과 전화통화를 하기 힘들다. 돈도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송금하지 못한다. 대신 한번에 500~600만원을 보낸다. 수수료는 50%로 치솟았다. 때문에 실제로 딸들이 손에 쥐는 돈은 그 절반에 불과하다. 그래도 현재로서는 북한에 돈을 보낼 수 있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

박민우 씨(가명, 41세)는 북한의 11명의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들도 이웃들을 돕는 ‘구제사역’을 한다. 한국에서 보내준 돈으로 굶어 죽어가는 어려운 북한 가정들에게 돈을 빌려준다. “공짜로 돈을 주면 의심을 하기 때문에 살림이 펴면 그 때 갚으라고 이자 없이 빌려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정말 살림이 펴서 돈을 갚아주면 감사한 거고... 그런데 대부분 그런 역량이 안 되거든요. 대부분 회복이 어렵습니다. (돈 갚을) 기한이 지나면 ‘됐다. 괜찮다. 앞으로 살다보면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는데 그 때 갚아라’라고 합니다. 은혜를 베푸는 거예요.”

박 씨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들어가는 들어가는 곳에는 역사가 있다”며 “(북한의 비밀 선교사들은)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주고,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나눠준다. 북한주민들은 저 사람들은 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그들을 존경하고 의지하게 되면서 관계가 쌓이게 된다”고 했다. 그는 “통일이 되면 그 사람들에게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이 네게 베푸신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희 씨는 올해 5월 북한의 딸들을 구출할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가 딸들의 탈북비용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많은 고민과 기도 끝에 이 씨는 소중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기회를 거절했다. ‘하나님께서 북한 땅에 지하교인들을 심어놓았는데 마음대로 데려와서는 안 된다’는 기도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그의 딸들은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선행으로 인해 “만민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딸들과 어렵게 전화가 연결될 때마다 “돈은 우리가 얼마든지 지원할 테니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라. 우리가 통일이 돼 다시 만날 때 서로 부끄럽지 않도록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자”고 말한다고 했다.

생명을 건, 신음같은 예배

김미진 씨(가명, 38세)의 가족은 2008년 이래로 매주 주일마다 비밀리에 예배를 드린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찬양과 기도는 숨죽여 한다. “신음소리같지만 예배 자체는 생명을 건 예배”라고 김 씨는 말했다.

박민우 씨는 15여 년 전 북한에서 선교사들과 비밀리에 드리던 예배를 떠올렸다. 주일이 되면 그 지역에 파송된 선교사 여섯 명이 모여 돌아가며 설교를 했다. “대개 한 사람이 말씀을 전하면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들어요. 찬송을 부르거나 소리 내서 기도를 하지는 못합니다. 뜨겁게 할 수 없습니다. 항상 주변의 망을 봐야합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집에 찾아오면 (예배는) 중간에 중단됐습니다... 각 처소 담당 선교사님들이 짧게 성경을 읽고 말씀 나누고 기도하는 그런 형식이었죠. 나지막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소리 내서 외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4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드렸던 예배를 드렸던 그날의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박 씨가 설립한 000지하교회는 한 선교사가 보위부에 잡혀가면서 해체 위기에 처했다. 선교사들은 북한의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도 청진으로 피신해 3년 동안 뱃사람으로 일했다. 2011년 보위부에 잡혀갔던 선교사가 다행히 삼년 만에 무죄 석방됐다. 그때 중국의 한 교회의 목사님 가족이 북한을 친척방문 형식으로 방문했다. 그들은 북한의 비밀 선교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예배를 드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두가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죠. 정말 은혜로웠어요...” 그때를 회상하는 박 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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