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후보 확정 이후 3주 넘게 선대위 인선 과정에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집요하게 윤 후보를 따라붙고 있는 양상이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윤 후보는 ‘대선 후보 선출의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이 후보를 평균 10% 정도의 지지율 차이로 따돌리고 있었다.

다급해진 이 후보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표되는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인선에서나 정책에서 이전의 고집스럽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다소 유연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머리 염색을 바꾸는 외모에서 뿐만 아니라, 넙죽넙죽 사과를 하며 태세 전환에 돌입한 상황이다. 더욱이 정책적인 면에서도 기존의 것을 고집하지 않는 자세에서 한발 나아가 아예 ‘윤 후보의 정책까지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당대표와의 갈등으로 국민들에게 피로감만 선사하고 있는 윤 후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재명은 넙죽넙죽 사과하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국토보유세’ 등 사실상 철회

이 후보는 이미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한발 물러섰다. 지난달 말 이 후보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1인당 최소 30만~50만원은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해야 한다는 방침을 밝혔을 정도로, 강경한 기조를 시사했다. 하지만 초과세수를 내년으로 이월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기재부의 반대에 봉착한 데다, 여론마저 부정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지자 금세 뜻을 굽히고 말았다.

당초 박빙의 승부가 연출될 것이란 정치권 안팎의 예측을 벗어나 윤 후보로 지지율이 쏠리는 양상으로 흘러가자,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 신설 공약,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한다”면서 완전히 뒷걸음을 치고 있다.

‘국토보유세’는 이 후보의 대표 공약 중 하나로 꼽힌다.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 새롭게 국토보유세를 걷어, 투기를 막고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공약이다. 90% 이상의 국민은 ‘내는 것보다 (기본소득으로) 받는 게 많기 때문에 사실 (국토보유세는) 세금 정책이라기보다 분배 정책에 가깝다’는 것이 이 후보의 주장이었다.

그러던 이 후보가 지난 29일 채널A와 인터뷰에서 “증세는 사실 국민들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국토보유세 신설에 대해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고 밝혔다. 당초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를 새로 걷더라도 일부 초고가 토지 소유자를 제외한 나머지 토지 소유자 90%는 신설될 기본소득으로 돌려받는 돈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조세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자신의 대표 공약 철회한 뒤, 그럴싸한 윤석열 공약은 당장 하자고 한 술 더 떠

자신의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국토보유세’마저 가볍게 철회하는 이 후보의 태도에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표가 되면 영혼이라도 팔 듯한 이 후보의 기세에 이 후보 지지율도 점차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후보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들어간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윤 후보의 ‘취임 후 소상공인·자영업자 코로나19 피해 50조 원 지원’ 공약을 수용한다며 “당선돼서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 후보는 2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두 번째 전 국민 선거대책위원회에서 “20대 대통령 선거를 100일 앞둔 오늘 경제 대통령,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라고 선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9일 광주시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민 선대위회의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셀카봉으로 직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9일 광주시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민 선대위회의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셀카봉으로 직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후보의 주장은 “오직 국민, 오직 민생을 위해 잘못된 정책은 과감하게 개선하고 필요한 정책은 과감하게 도입하겠다. 리더십을 바꾸고, 사람을 바꿔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 필요하면 과감하게 양보하고 타협하겠다”라는 내용에 초점이 모아졌다. 말하자면 상대 후보의 공약이라도 민생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재명이 윤석열에게 무릎 꿇었다” VS. “국민의힘 뼈아픈 자성 필요해”

국민의힘 내에서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왔다. “드디어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재명 후보가 표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태세라는 걸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거의 3주 이상 자리싸움에만 매몰된 윤 후보와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뼈아픈 자성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윤 후보가 이제 대세를 이뤘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다는 점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30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청주국제공항을 방문해 관계자와 함께 공항 시설을 둘러보며 한 항공사 직원들과 셀카를 촬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30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청주국제공항을 방문해 관계자와 함께 공항 시설을 둘러보며 한 항공사 직원들과 셀카를 촬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이 후보는 자신의 신념이었던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양보’한 내용을 거론하며, “열을 얻고자 허송세월하고 논쟁에 빠지기보다는 두 개, 세 개, 네 개를 양보해서라도 당장의 국민 삶을 개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정치인의 득실을 떠나서 “국민에게 필요한 일을 해내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본예산에 편성해 윤석열 표 50조 지원 예산을 내년에 미리 지원하면, 윤 후보도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여졌다. 윤 후보도 손해 볼 것 없으니, 당장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면 결국 자신의 표로 돌아오리라는 계산이었다.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딱 100일을 남겨둔 29일에 이 후보가 꺼내든 카드는 “누가 경제를 살릴 적임자인지, 누가 민생에서 실력을 입증해왔는지, 그래서 과연 누가 국민의 삶을 바꿔낼 수 있는지”로 드러나고 있다. 자신의 대표 공약과 주장까지 버리면서,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지지를 호소하는 이 후보에 비해, 윤 후보의 카드가 좀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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