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작년 10월25일, 이건희 삼성회장이 7년에 걸친 긴 와병 끝에 별세했을 때, 삼성 안팎, 재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덕을 보겠구나”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게이트에 연루돼 1년에 가까운 수감생활을 하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대법원이 집행유예의 근거가 된 항소심 판결을 뒤집는 바람에 언제 다시 구속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박영수 특검이 처음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2017년 1월16일 이후 4년여에 걸친 지루한 재판이었다. 더불어 좌파 시민단체 및 금융위원회 고발로 시작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에 대한 윤석열 검찰의 ‘무자비한 수사’로 또 다른 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 문재인 정권의 요직을 차지한 경제브레인 중 상당수는 과거 재벌해체론자이었고, 삼성그룹은 재벌개혁의 상징이자 최우선 대상이었다.

지난해초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법조계의 대표적인 친문인사인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은 이런 적대적인 정권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삼성으로서는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의 대리경영을 하고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투옥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준법감시위와 줄다리기 끝에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내놓은 것 중 대표적인 세가지가 편법승계 사과 및 4세승계 포기, 무노조경영 포기선언이었다.

‘부(富)의 축적과 상속’이라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본능 내지 급성장 동력을 무너뜨리고, 노조가 없던 기업에 강제로 노조를 만들어 준 꼴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게 준법삼성감시위원회의 도입까지 주문했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끝내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지난 1월18일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다시 수감했다.

국내는 물론 미국의 정·재계까지 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다.

그래서 3·1절, 석탄절 등 국경일 때 마다 사면 석방이 거론됐지만 정작 그가 사면도 아닌 가석방으로 풀려난 것은 8·15를 며칠 앞두고였다. 삼성과 이 부회장으로서는 (좌파들이 원하는 것은) 빠짐없이 다 내놓았지만 형을 살만큼 다 살다 나온,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이다.

애당초 준법감시위원회의 도입은 재판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후 준법감시위가 삼성에 제시하는 방안을 놓고는 갈등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한 편법 경영승계 논란의 시작이 된 애버랜드 주식취득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난 사건인 만큼 이를 인정할 이유가 없고, 재판과정에서 극구 부인해온 최순실씨에 대한 뇌물제공 원인을 사후에 추인는 셈이 된다는 점에서 삼성 내부의 반대하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자녀들, 즉 삼성 4세에 경영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선언 또한 “툭하면 재판받고 감옥갈 일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수긍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막상 이 문제에 대해 병상의 아버지 이건희 회장 대신 어머니 홍라희 여사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결국 그동안 좌파들이 줄기차게 외쳐온 삼성해체론은 기정사실화 되는 양상이다.

이건희 회장 사후 막대한 상속세를 부담하기 위해 수조원대의 미술품을 매각하지 않고 기증하는 대신 부회장과 홍라희 여사 등 일가족이 보유한 삼성 계열사 주식 상당수를 은행에 맡기거나 매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조원대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으로 홍라희 전 관장 등이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SDS 등 2조1500억원 규모(8일 종가 기준) 삼성 계열사 주식을 처분 신탁 계약을 했다.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는 리스크도 안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집중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앞날에 대해서는 주가가 6만원대로 곤두박질 치는 등 비관론이 적지않다.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각축전은 점차 치열해지는 가운데 아직까지 삼성이 세계 D램 시장의 40%를 차지하며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시스템 반도체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세계 1위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TSMC는 미국에 이어 일본에 반도체 공장 설립을 발표하는 등 지금까지 1000억 달러(약 117조원)대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미국의 제2파운드리 공장 부지 결정조차 매듭을 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상호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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