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시민평가 방식은 공영방송 최고경영자 임명제청 과정의 내적 타당성 훼손
단시간 동안의 토론 참여로 종합평가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
공영방송 최고경영자를 인기투표형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시민평가 방식은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한 최고의 KBS 사장을 임명제청할 수 있어야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국가기간 공영방송인 KBS가 사장 임명제청시 시청자인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시청자를 대표하는 참여시민의 의사가 KBS의 최고경영자를 뽑는데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여 정치적 독립에 기여할 수 있어야 정당성이 확보된다. KBS 사장은 방송법에 따라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그간 KBS 사장 임명제청 과정에서 대통령이나 정부ㆍ여당이 비공개적으로 특정인을 추천했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 이른바 ‘낙하산’ 논란이다. 이러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필자가 멤버였던 2018년 KBS이사회는 시민참여단(당시 명칭은 시민자문단)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9월 29일 KBS이사회는 제25대 KBS 사장 임명제청의 최종 결정은 ‘시민평가 40%와 이사회 평가 60%를 합산’하는 기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안을 의결했다. 그런데 지난 KBS이사회가 사장 임명제청시 시민평가 40%를 반영한 결과 ‘시청자 결정주의 의미 결여’와 ‘이중권력의 문제 발생 가능성’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 개선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방식을 그대로 추진하고 있어 안타깝다. KBS이사회는 사장 임명제청시 시민평가 방식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과 그것이 현실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를 정교하게 살펴본 다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민평가 방식은 공영방송 최고경영자 임명제청 과정의 내적 타당성 훼손

2018년 KBS 사장 임명제청 과정에서 실시했던 시민평가 방식은 내적 타당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당시 시민참여단은 시청자를 대표하여 KBS 사장 후보자 정책발표회에 참석하여, 후보별 정책 등을 듣고 사장의 요건과 후보 자질에 대해 논의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했다. 사장 임명제청 후 전문자문단은 <제24대 KBS사장 선임 백서>에서 이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2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첫째, 이 제도는 시민참여단의 합의를 이루어 한 사장 후보에 대한 선호가 형성되었을지라도, 이사회의 결정으로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시청자 결정주의’라고 할 수 없다. 심지어 이사회가 사실상 결정력을 행사하면서, 시민참여단을 일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적 수단으로 운영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다. 둘째, 시민참여단과 이사회 평가를 단순 합산함으로써 시민참여단의 합의가 이사회의 결정과 다를 경우에 이 둘 간의 모순을 해결할 사후적인 해결책이나 별도의 방법이 없다. 지난 2018년 KBS 사장 임명제청시 이런 모순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논리적으로 ‘이중권력’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공영방송 최고경영자 임명제청 과정의 내적 타당성을 훼손함을 의미한다."

지난번 KBS 사장 임명제청 과정에서 제기된 시청자 결정주의와 이중권력 등의 문제점에 대해 이번 이사회가 심도 있게 논의하여 시민참여단이 더 효과적이고 타당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민평가 방식을 도입했어야 했다.

단시간 동안의 토론 참여로 종합평가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

KBS 사장 임명제청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이 짧은 시간에 복수 지원자들의 여러 심사항목을 종합하여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018년 KBS 사장 임명제청시 시민참여단 운영은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 방식을 원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시민참여단의 역할은 공론조사에서 갈등적 사안에 대한 찬반 논변을 듣고 최종적으로 사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위 백서에서 전문자문단은 이 둘이 유사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전자(공론조사)는 2개의 대안이 갖는 특성, 문제점, 효과 등을 검토한 후 해당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결의적으로 수용하는 일이다. 대조적으로 후자(시민평가)는 다수의 후보자가 제시한 정책이 장단점을 따진 후에 정책을 제시한 후보자를 별도로 평가해서 최적의 인물로 선택하는 일이다. 전자에서 참여자는 해당 사안에 대한 학습을 통해서 대안의 장단점을 고려해서 결정적으로 하나를 선택하면 되지만, 후자는 참여자가 제기된 정책들의 장단점은 물론 정책을 제시한 후보자의 성격과 리더십, 그리고 수행능력 등을 추론해서 한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종합적이고 추론적인 판단을 몇 시간 동안의 토론참여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KBS 사장 임명제청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은 심사기준인 ①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비전과 철학, ②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 신뢰성 강화방안, ③ KBS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경영능력과 리더십, ④ 국가기간방송 사장에 걸맞은 도덕성 등 4가지 차원에서 항목별 평가를 내리고 이를 합산해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번에도 무작위 추출로 선정된 시민참여단이 단시간 동안의 토론 참여로 최적의 사장을 결정하는 종합평가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공영방송 최고경영자를 인기투표형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KBS 사장 임명제청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의 조사방식은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문제가 있지만, 공영방송의 최고경영자를 시민평가라는 인기투표 형식으로 결정하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 방송법에서는 KBS를 국가기간방송으로 지정하고, KBS가 수행해야 할 공적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의 실현, 양질의 방송 서비스 제공,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과 방송기술 연구개발, 민족문화 창달 등이다. 하나하나가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더구나 디지털 멀티플랫폼시대를 맞이하여 수많은 종편과 PP들, 1인 미디어, 거대자본을 앞세운 넷플릭스 유튜브 등 상업매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공영방송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다. 현재 복합적인 위기에 처한 KBS를 혁신하고 공적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최고의 경영능력을 갖춘 사장을 뽑는 업무를 시민참여단의 소위 ‘인기투표’ 형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시민평가 방식은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한 최고의 KBS 사장을 임명제청할 수 있어야

KBS의 가장 큰 과제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정치적 독립성을 갖추는 일이다. KBS의 정치적 독립은 정치병행성(political parallelism)과 관련이 있다. KBS 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의 후견적 통제는 KBS 구성원들의 조직적 분열과 갈등을 구조화했다. 양승동 사장은 KBS 대다수의 보직을 KBS민노총노조 출신으로 기용했고, 여기에 KBS진실과미래위원회 기구를 통해 과거정권 시절의 보직간부들을 징계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켰다. KBS의 정치적 독립은 권력을 잡은 정부ㆍ여당이 공영방송 거버넌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일이다. 더 구체적으로 정부ㆍ여당이 KBS이사회 구성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재 KBS이사회가 사장 임명제청 과정에서 추진하는 시민평가 방식은 KBS 정치적 독립성 문제의 본질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가 사실상 결정력을 행사하면서 국민참여를 명분으로 사장 임명제청의 정당성이 확보된 것처럼 선전하려는 술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8년 ‘국민참여’를 통해 선출되었다는 양승동 KBS 사장의 참담한 경영실패가 시민평가의 타당성 결여를 방증하고 있다. KBS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가 시민평가 방식을 타당하게 개선하여 KBS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한 최고의 KBS 사장을 임명제청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전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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