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종전선언·평화협정 당사국’ 아니라는 지적도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전협정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는 북한 비핵화 마지막 단계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성급한 시도는 자칫 한미 동맹에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제법상 한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주체로서 자격이 있는지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노정호 미 컬럼비아 대학교 법대대학원 교수는 20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한국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만든다고 해서 이것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53년 정전협정에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군, 펑더화이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김일성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서명했다.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평화협정에 참여할 수 있는 당사자는 미국과 중국, 북한이라는 것이 국제법상의 논리다. 따라서 한국은 국제법상 전쟁을 종료하는 당사국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국민대학교 법대 박정원 교수는 “전쟁에 참여한 남북한이 기본 당사자 된다는 게 맞다”고 했다. 한국 역시 전쟁에 참여한 ‘기본 당사국’으로서 전쟁을 종료하는 당사국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의 절차상의 문제도 존재한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VOA에 “남북한이 종전선언 등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정전협정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적인 문제들이 뒤따른다”며 “종전협정이 체결되면 UN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사라지고 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할 국제적 안보기구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이 요구되는 바 이것은 남북한 간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힐 전 차관보는 “평화협정은 북한 비핵화가 실제로 이뤄진 뒤 마지막 단계에서나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정호 교수도 “북한 비핵화 전에는 공식적인 남북간 정전, 평화협정, 평화체제를 가져올 수 없다”며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선후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VOA에 “평화협정은 전통적으로 ‘그랜드 바겐’을 의미한다”며 “여기에는 핵무기 외에도 생화학무기 제거와 재래식무기 감축, 군사적 적대 행위 중지 등 광범위한 조건이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여러 가지 포괄적 단계를 거쳐야 하는 평화협정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지나치게 부각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한편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이 문제가 한미공조의 걸림돌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노정호 교수는 VOA에 “조심해야 될 것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전체적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간 정상회담과 배치되는 부분이 생기면 안 된다”며 “따라서 (미국과 한국이) 사전에 조율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힐 전 차관보 역시 “솔직히 말해 북한의 외교방식과 정전협정 대체 논의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종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기대”라고 했다. 이어 조급한 평화협정 논의를 통해 북한이 한미동맹에 흠집을 내려할 수 있다며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미동맹 유지가 중요하다”며 “평화협정은 북한 비핵화와 연결돼야 하며 이는 회담이 열리는 다음 주까지 충족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평화협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리, 평화협정 이행을 감시할 위원회 신설 작업 등의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고 VOA는 전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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