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구태의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작금의 정세는 구한말과 전혀 다를 게 없다. 한국은 과거 조선·대한제국처럼 중국 공산당 대륙세력에 붙어 소중화를 자처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을 위시한 서방 자유세계 편에 설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미국과 영국, 호주 정상들이 지난 15일 온라인 화상 회의를 열국 3국간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의 출범을 선포했다. 영국 퀸엘리자베스호 항모전단의 극동 항해로 상징되는 아시아 회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이어 미·영·호가 본격적인 앵글로색슨 동맹을 결정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오커스’의 첫 구상은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는 것. 미국이 지난 1958년 영국에 핵추진 잠수함기술을 공여한 이후 처음으로 호주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브렉시트(Brexit)로 프랑스·독일이 지배 중인 유럽에서 벗어난 영국이 다시 아시아로 회귀한 것은 지난 세기의 데자뷰다. 영일동맹을 맺고 러시아를 견제한던 것처럼, 영국은 이번에는 그 대상을 중국으로 삼았다. 미국도 아프가니스탄이란 제국의 무덤에서 패주하듯 철수하긴 했지만 이제 그 칼끝을 중국을 겨누고 있다. 여기에다 영연방 국가로 오랫동안 중국 공산당에 잠식당해 한 때 친중(親中) 국가였던 호주가 중국의 사악함을 깨닫고 골수 반중(反中) 국가로 변모했다. 영토는 넓지만 인구 는 2700만에 불과한 호주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반중 포위망의 한 축을 맡게 됐다. 이 세나라의 국가이익이 바로 ‘오커스’ 출범으로 나타난 것이다.

‘오커스’는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로 구성된 정보 공유 동맹 ‘파이브아이스’(Five Eyes)의 핵심 축소판이다. 또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안보 협의체 ‘쿼드’(Quad)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오커스’, ‘파이브아이스’,  ‘쿼드’는 회원국 간 대중 강경도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을 겹겹이 포위하는 서방 동맹의 협의체라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모두 특징이 앵글로색슨 위주의 동맹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일본과 인도는 앵글로 색슨은 아니지만 그들과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본은 일찍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우며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올라선 국가로 같은 섬나라인 영국과 깊은 유대를 맺은 바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비록 영연방국가는 아니지만 21세기 아태전략에서는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오커스’, ‘파이브아이스’,  ‘쿼드’가 공유하고 있는 핵심전략 목표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하며 패권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남중국해, 대만 해협, 오키나와 및 일본 본토를 잇는 제1도련선에서의 항해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다. 항해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생명선을 지키는 것이다. 대만에 대한 중공의 군사 위협을 자국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레드라인을 그은 일본의 선언이 대표적이다. 대만이 점령당하는 것은 제1도련선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출입과 원유 수입의 길목을 결코 내주지 않겠다는 간단한 명제를 일본은 절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남중국해는 생명선이다. 그러나 한국은 태평하기 그지없다. 대선 후보로 나선 정치인들 가운데 이를 언급하는 이가 있는지나 모르겠다. 한국은 국가 목표 자체가 없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오커스’ 화상 회의를 통해 호주가 핵잠수함 기술을 보유하게 되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된다는 뉴스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한국도 핵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국가전략을 진지하게 논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핵잠수함은 세력투사가 가능한 공격 무기이기 때문에 그 칼끝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될 경우 어떤 목적으로 이를 운용하겠다는 논의 자체가 없다. 게다가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가진 원전을 폐기하는 나라에서 핵잠수함에 열광하는 모습은 더욱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 핵과 관련된 한국인의 이미지는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묘사된 ‘반일 판타지’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다. 무조건 핵을 보유해 강대국이 돼야 한다는 한풀이식 정서만 있을 뿐으로 국제정세에는 눈과 귀를 막고 있으며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이 이례적으로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호주가 가치동맹의 일원으로 확고한 국가 목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호주는 과거 20여년동안 국내 정가와 학계에 침투한 중공의 삼투(滲透·infiltration) 흔적을 제거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이 이를 신뢰하고 핵잠수함 기술을 공여하는 것이다. 태평양의 절반을 지배하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야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입장, 유럽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회귀해 해가 지지않는 대영제국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영국의 목표에 호주가 적극 동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좀 구태의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작금의 정세는 구한말과 전혀 다를 게 없다. 한국은 조선·대한제국처럼 중국 공산당 대륙세력에 붙어 소중화를 자처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을 위시한 서방 자유세계 편에 설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국가도 유기체다. 지금 세계 각국이 움직이는 것은 철저히 생존 본능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생존의 본능조차 있는 것인지 크게 우려된다. 장삼이사(張三李四)는 물론이고 대선판에 나온 정치인들조차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존을 추구해야 되는지를 말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며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사치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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