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자금 대출까지 조일 수 밖에 없도록 가계대출 총량 관리 압박
전세 포기하고 반전세나 월세 택할 수 밖에
자금 흐름 막아 거주 이전의 자유와 거주 형태에 대한 선택권 박탈

시중은행 관계자들이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조이기 압박에 고충을 토로하며 결국 모든 피해는 껑충 오른 집값과 전세금 등을 충당해야 할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 우려했다.

은행들은 "올해에도 집값과 전세금 모두 올라 주택·전세 거래량이 작년과 같기만 해도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은 당연히 크게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율을 무조건 5∼6%에 맞추라고 압박하니 대출 중단, 금리 인상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고, 기준금리 상향조정과 우대금리 축소 등을 통한 대출금리 인상 행렬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8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698조8천149억원이었다. 지난해 12월 말(670조1천539억 원) 대비 4.28%(28조6천610억원) 늘어난 수치다. 이는 올해 초 당국이 시중은행에 가이드라인으로 압박한 가계대출 관리 목표(5∼6%)에 거의 다다른 수치다. 연말까지 4개월이나 남았지만 앞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란 한층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보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서도 전세자금대출이 특히 높았다.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주택담보대출은 4.14%(473조7천849억원→493조4천148억원) 늘었고 이 중에서 전세자금대출은 14.02%(105조2천127억원→119조9천670억원) 뛰었다.

올해 가계대출 전체 증가액은 28조6천610억원이었는데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19조6천299억원으로 전체의 68.5%를 차지했다. 전세자금대출 증가분(14조7천543억원)만 떼놓고 봐도 전체의 51.5%로 절반을 넘었다. 

신용대출은 올해 들어 5.42%(7조2천460억원) 늘어 증가 규모로 보면 전세자금대출의 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같은 증가율은 연단위에서 이제 월단위로 폭등하고 있는 수도권 집값과 전세금에 비하면 특이하게 높은 수준도 아니다.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은행권 역시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주택 매매 및 전세 가격 상승을 꼽고 있다. 국민들이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으로 투자나 투기를 한다기보다 주택공급 부족과 임대차3법에 따른 전월세시장 붕괴 등 오랫동안 지속된 정부 정책 실패로 부동산 관련 대출액도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지키라는 5∼6% 가계대출 증가율은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만 반영돼도 쉽게 넘어설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며 "더구나 집값과 전셋값이 올해 10% 안팎 뛰어 특별히 부동산 거래가 늘지 않아도 가계대출이 10% 안팎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5∼6%에서 관리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정부는 대출로 집을 많이 사서 집값이 오르니 대출을 묶어 집값을 잡겠다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고 부동산 시장 불안의 책임을 금융에 떠넘기는 셈"이라며 "대출이 늘어 집값이 오른 게 아니라 공급 부족 등으로 집값이 올라서 대출도 늘어나는 부분은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대로라면 유주택자든 무주택자든 부동산으로 크나큰 고통을 받게 되지만 특히나 수억원의 현금이 없거나 이를 융통할 수 없는 서민들은 수도권에서 전세도 구하기 어려워진다. 은행 관계자들은 "현재 전세자금대출은 거의 무주택자만 받을 수 있는데, 이 전세자금 대출까지 조일 수 밖에 없도록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압박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며 "결국 소비자들은 전세를 포기하고 반전세나 월세를 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실수요자의 자금 흐름을 막아 거주 이전의 자유와 거주 형태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은 지난 2001년 신한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182.95㎡)를 7억6천500만원에 취득했다. 34억600만원(공시가격)이라고 고지한 고 위원장의 이 아파트 가격은 지난 1월 실거래가 기준으로 57억원을 돌파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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