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북한이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 노력에 호응할지는 미지수”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 두 번째)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왼쪽 두 번째)가 23일 서울 중구 호텔 더 플라자에서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 두 번째)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왼쪽 두 번째)가 23일 서울 중구 호텔 더 플라자에서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성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23일 북한을 향해 조건없는 대화를 거듭 촉구하며 인도주의 지원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김 대표는 지난 6월 방한해 한미,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하면서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노규덕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 대표는 “우리는 가능한 대북 인도지원에 대해 논의했다”며 “남북대화와 관여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환인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 본부장은 한미협의 직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협의했다며 “한미 양국은 보건 및 감염병 방역, 식수 및 위생 등 가능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인도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국제기구와 비정부 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한미 양국은 남북통신선 복원, 한미연합훈련 진행 등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가운데 대화가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 등을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한미는 이달 들어 외교장관 전화통화, 국장급 협의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인도주의적 계획을 계속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언급하면서 “남북대화와 관여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으며 계속해서 남북인도적 협력 사업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며 “진행 중인 한미연합훈련은 오래됐고 정례적이며 순수하게 방어적 성격으로 한미양국의 안보를 지탱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계속해서 북한의 협상 상대를 언제 어디서는 만날 준비가 됐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북한이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거듭 일축한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대화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했다.

미국이 이전에도 북한과의 긍정적인 대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대북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다. 지난 2018년 12월 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한국 방문 중에 엄격한 제재 이행으로 북한에서 활동하는 지원단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민간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고 북한여행 금지 조치도 일부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의 당시 이례적인 ‘공항 성명’은 2차 미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고도 협상에 소극적인 북한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지난해 3월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내 코로나19 대응 관련 지원 의사를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당시 국제기구와 직접 지원 등 북한에 구체적인 지원 의사를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인영 통일부장관도 그해 8월 6일 “접경지역 재난·재해에서부터 작은 협력이 이뤄진다면 이것은 남북 간 큰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국내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용 코로나19 방역 물자의 반출신청을 다수 승인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해 8월 “외부로부터의 어떤 지원도 허용하지 말 것”이라며 한국 및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했다. 김정은은 당시 제7기 제16차 정치국회의에서 장마로 인한 수해지역 복구와 코로나19 방역 사업 강화 등을 논의하면서 “방역전을 힘있게 벌리는 것과 함께 예상치 않게 들이닥친 자연재해라는 두 개의 도전과 싸워야 할 난관에 직면해 있다”면서도 외부의 지원은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은 “세계적인 악성비루스 전파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은 큰물피해와 관련한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허용하지 말며 국경을 더욱 철통같이 닫아걸고 방역사업을 엄격히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수해를 극복하고 당창건 75주년을 성대히 맞자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해석했다. 결국 인도주의적 지원 카드는 미북관계 개선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북한이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 노력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대화 복귀 조건으로 대북제재 등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인도적 협력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간주해왔다. 다만 과거보다 악화되고 있는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북한은 김정은이 지난 6월 당 전원회의에서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만큼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북중 국경봉쇄, 자연재해는 북한이 오랫동안 겪고 있는 ‘삼중고’다.

한편 김 대표는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자 노 본부장을 가까운 미래에 워싱턴에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한미 협의 이후에는 김 대표와 러시아 북핵 수석대표인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무차관 간 미러 북핵협의가 진행됐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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