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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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면서, 미중 간 ‘신냉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은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다른 강대국이 패권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보여주었던 패턴의 하나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에 대해 개입하여 3국가 간의 ‘세력균형’을 만들어 나갔다. 이와 관련, 우리는 미중 간 벌어지는 거대한 전략적 경쟁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향후 우리의 선택지가 명확해진다. 미국이 그간 동아시아에서 실행한 정책을 살펴보자.

미국은 1890년대에 영국을 추월하여 세계 제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1898년 하와이를 병합하고 필리핀을 취득함으로써 태평양국가가 되었다. 이후 미국은 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1890년대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상황은 역동적이었다. 중국은 1842년 아편전쟁 이래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고, 러시아는 만주와 한반도에 세력 팽창을 기도하고 있었으며,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 이래 부국강병을 꾀하면서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야심을 보이고 있었다.

미국은 1899년 ‘문호개방’정책을 선언하여 중국에서의 기회평등을 요구했다. 1900년 의화단사건을 계기로 러시아군대가 만주를 점령한 후 철수하지 않았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이용하여 러시아의 팽창을 막으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영국과 1902년 영일동맹을 체결했고,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대륙세력인 러시아가 만주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양세력인 일본과 영국의 편에 섰고, 일본이 승리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 간의 강화회담을 미국의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주선하고 강화조약이 1905년 9월 일본에 유리하게 맺어지도록 유도했다. 그 직전인 1905년 7월 미국은 일본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다.

하지만 1905년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위협이 되었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 데 대해, 미국은 1932년 ‘스팀슨주의’를 발표하여, “일본이 힘을 통해 현상유지를 파괴하려는 것을 인정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이 1937년 중국 전역을 침략하자 결국 1941년 미국은 일본군대가 중국에서 철수할 것을 최후통첩으로 요구했고, 1941년 미일 간에 태평양전쟁이 발생했다.

2차 대전 이후 미소 간의 냉전이 발생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주적은 소련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1949년 10월 공산당정권이 수립되었고, 소련에 의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한편, 미국은 소련의 세력팽창을 막기 위해 1950년 한국전쟁에 참여했고, 미국과 중국 간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여 양국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1951년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 후 격화되는 미소간의 냉전으로 인해 미국은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중국은 소련과의 관계악화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했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관계개선을 실현했고, 그 이후 미국과 일본은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을 맞아 중국과 협력하게 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일본의 경제력을 경계하여 1985년 플라자협정을 통해 엔화 절상을 결정함으로써, 일본의 경제를 주저앉혔다.

1991년 냉전이 종식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에게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졌다. 2010년대 초 중국이 미국의 지위에 도전함에 따라, 미국은 2018년 중국을 ‘패권국가이며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국과 일본이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 미국·일본 대 중국의 대결구도가 명확히 되었다.

현재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1930년대에 미국이 일본을 압박하는 것과 유사하다.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대외침략을 강화했으나, 지금은 중국이 공세적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이전에 미국은 일본군대가 중국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은 중국과 군사협력을 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불법이며, 대만과 센카쿠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요약하면, 그간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주요한 국가들과 ‘적과 친구의 역할’을 반복하면서, 철저한 ‘세력균형정책’을 실행하여 왔다. 이는 미국이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패권국가 출현을 방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일본과 협력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선택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세력균형정책을 실행할 때, 한반도는 어떠한 상황에 처했었는가? 1890년대 이래 일본, 중국, 러시아가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보일 때,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를 병합하는 것을 용인했다. 당시 조선은 미국이 다른 유럽 열강들과는 달리 공평무사한 국가라고 간주하여 열강의 침탈을 막아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이 기대는 허망한 것이었다. 조선이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 ‘중요하지 않은 나라에서 일어난 중요한 전쟁’이 한반도에서 발생했다. 소련이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승인했고, 미국은 한반도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막상 남침이 시작되자 미국은 소련이 냉전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미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했고, 전쟁 직후인 1954년 한국과 동맹을 체결했다. 미국의 편에 서게 된 한국은 한 세대 만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2개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이는 미국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 각국과 협력하여 이루어 낸 쾌거이다.

그러면 현재 미국이 중국을 적극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위치는 어떠한가? 미국이 냉전 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중 간 신냉전에서 우리의 바람직한 선택은 무엇인가? 한국은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는 ‘우리의 독립과 자주, 안보, 번영’이라는 국가이익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4차 산업혁명의 원천 기술 보유국인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둘째,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아직 미국에 열세다. 우리가 미국과 협력해야 북한의 무력도발을 제어할 수 있으며, 이 역할은 중국이 절대로 대체할 수 없다.

셋째, 패권국가의 길로 들어선 중국은 한국을 미국 중심의 동맹 체제에서 떼어내 중국의 종주권을 수용하는 ‘신형 속국’으로 만들려 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존중하는 자주적 주권국가로 남기 위해서는 이념을 같이하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여, 미국의 힘을 빌려 중국의 신형속국 시도를 막는 수밖에 없다. 중국과 경제적 관계가 밀접한 호주가 바다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중국의 영향권에서 독립해 행동과 선택의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넷째,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만이 유일 강대국이었다. 이에 조선은 조공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초강대국인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부상한 중국을 계속 견제할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세계가 좁아졌다. 그만큼 많은 선택지가 열려 있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양국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는 중국이 한국을 두고 강압적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실현하려는 데서 기인한다.

여기서 미국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미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해 한국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한국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국가가 돼야한다. 그래야 미국도 한국을 돕는다. 그러려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앞세우는 나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또 미국이 일본과 힘을 합쳐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 지금 동아시아의 패권국은 중국이고 21세기 중에 일본이 패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없다. 한국의 안보 이해관계는 구조적으로 중국과는 대립하고 일본과는 일치한다. 한국 내에는 우리가 미국과 중국과 모두 협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어설픈 중립’은 한국을 구할 수 없다.

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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