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MBC본부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에 지원한 김도인 이사에 대해 'MBC를 망친 주범'이라고 비난하자 김 이사가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MBC본부는 지난 22일 노보를 통해 “MBC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받아 온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미화, 윤도현 등 라디오 DJ들 강제 하차 관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촛불 혁명을 다룬 ‘탄핵’ 다큐와 ‘6월 항쟁’ 30주년 기념 다큐 제작  중단 관여 및 반발 PD 인사조치 ▲퇴직금, 특별 퇴직 위로금 요구 및 MBC 이사 사퇴 거부 등을 주장했다.

이에 김도인 이사는 "방문진에서 언론노조의 문제점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 왔기에, 저의 연임을 극도로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면서 "언론사 노조의 성명서답게 팩트(fact)에 입각해서 품격있게 논리를 펼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에서 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 근거로 제시하는 부정확한 사실관계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바로잡고자 한다"면서 입장문을 냈다.

아래는 김도인 이사 입장문 전문(全文)이다.

언론노조 MBC본부의 중상모략에 대한 김도인 방문진이사 후보자 입장문

① 언론노조MBC본부는 21년 7월 23일 발간된 문화방송노보 『함량미달 부적격 5인방』이라는 기사에서, 이번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한 22명 가운데 5명을 부적격이라 규정하였습니다. 그중 저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도인 현 방문진 이사는 MBC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받아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재철 사장 시절, 편성기획부장으로 킬러 콘텐츠의 DJ들(김미화, 윤도현씨 등)의 강제 하차에 관여하면서 MBC 라디오의 경쟁력과 위상을 추락시켰다.

이후 편성국장, 편성제작본부장으로 승승장구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촛불혁명에 대해 다룬 ‘탄핵’다큐와 ‘6월 항쟁’ 30주년 기념 다큐의 제작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반발하는 PD들을 인사조치 시켜 내부 구성원의 극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김 이사는 김장겸 전 사장이 방문진에서 해임된 이후에도 자리와 돈에 연연하는 구차함을 보였다. 퇴직금은 물론 특별 퇴직위로금까지 요구하며 사퇴를 거부해 회사의 정상화를 지체시켰다.

MBC 파괴의 책임을 추궁 당해야 할 김도인 이사는 그러나 지난 2018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추천으로 MBC의 경영을 관리 감독해야 할 방문진 이사로 돌아왔다. 김 이사는 제11기 방문진 이사 임기 동안 끊임없이 MBC의 방송과 편성에 관여를 시도하며 월권을 일삼았다. 그런 김 이사가 제12기 방문진 이사에 연임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몰염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② 그동안 저는 언론노조의 ‘함량 미달’ 주장에 대해 여러 차례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입장문을 밝힌 바 있습니다. 언론노조 구성원들이 오래동안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었기에, 잘 몰라서 그리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그런 주장을 한다고 생각해서 오해를 풀어주고자 하였습니다.

③ 적어도 언론사의 노조라면 상대방이 해명을 하면 사실관계를 바로잡든지, 재반박을 하든지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고장난 축음기’처럼 예전에 하던 억지 주장을 되풀이하는 언론노조MBC본부의 성명서를 보고,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어느 책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그 책 중에 이런 대목이 있더군요.

"레닌은 언젠가 자신의 선동적 언어가 “증오와 혐오와 경멸을 불러일으키려고 의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어법은 “상대 계급을 납득시키는 게 아니라 깨부수려고, 적의 잘못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적을 파괴하려고, 적의 조직을 지구상에서 전멸시키려고 의도한 것이었다."

④ 제가 방문진에서 언론노조의 문제점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 왔기에, 저의 연임을 극도로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한편으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언론사 노조의 성명서답게 팩트(fact)에 입각해서 품격있게 논리를 펼쳐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의 막말을 그토록 비난하는 언론사의 노조 성명서가 이렇게 ‘혐오와 배제’의 主張으로 뒤덮힌 것은 MBC의 수준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⑤ 언론노조에서 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닙니다만, 그 근거로 제시하는 부정확한 사실관계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바로잡고자 합니다.

1. 김미화 강제 하차에 관여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① 저는 MBC 편성제작본부장으로 있던 2017년 4월 13일, MBC 사내 게시판에 다음과 같이 제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는 제 입장문에 대해 전혀 반박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김미화씨에게 사퇴를 종용했다구요?

노조는 2017년 9월 11일 발행된 총파업 특보에서 2011년 4월 15일 김도인 당시 라디오편성기획부장이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에게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차를 종용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선, 날짜부터 정정하겠습니다. 제가 김미화씨를 만난 것은 4월 15일이 아니라 4월 5일, 여의도 MBC 7층 라디오 휴게실이었습니다.

2011년 2월 부임한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은 라디오 부장단회의에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MC였던 김미화씨를 교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라디오본부 평PD협의회가 3월 29일 성명서에서 "부장단 회의에서는 이미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교체가 거론되고 있다고도 한다"라고 언급했듯이, 평PD들 역시 MC 교체 가능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명서가 발표된 다음날로 기억합니다. 평PD협의회의 안재주 PD와 이우용 본부장, 그리고 저를 포함한 3인이 점심 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 안재주 PD는 이우용 본부장에게 "김미화씨 이번 개편에는 그냥 가면 안돼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우용 본부장은 이번 개편 때 반드시 교체하겠다며 그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김미화씨가 KBS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유감표명을 한 것.

둘째, 연예가중계 작가와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뒤 이를 편집해 경찰에 제출함으로써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것,

셋째, 민노총 주도의 촛불집회에서 연설해 공정성을 상실한 것.

부장단 회의에서 김미화씨 교체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지만, 본부장이 평PD협의회 대표격인 안재주PD에게 교체 사유까지 명시하는 것을 들으며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사실 MC 교체는 라디오편성기획부장이 아닌 제작1부장의 소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두번째 PD로서, 그리고 담당부장인 제작1부장으로서 몇 년간 같이 일한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김미화씨를 만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우용 본부장이 김미화씨가 KBS 연예가중계 작가와의 대화내용을 녹취, 편집하고 경찰에 제출한 것에 대해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결격사유가 된다고 하며 반드시 MC 교체를 하겠다고 한다. 혹시 다른 프로그램으로의 이동은 어떻겠느냐. 만일 김미화씨가 생각이 있다면 내가 적극 나서 보겠다. 현재 표준FM의 오후 시간대에 젊은 청취층이 유입되지 않고 있어 젊은 PD들이 불만이 많다. '두시만세' 같은 프로그램이면 너무 튀겠지만, 시사 꽁트로의 변신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CBS 노정렬의 사례도 있으니...)"라며 다른 프로그램으로의 이동을 차선책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날이 2011년 4월 5일입니다.

대화를 나눈 다음날인 4월 6일에 저는 단기연수를 떠나게 되어 있었는데, 오전 10시 13분 김미화씨에게서 이렇게 문자가 왔습니다.

"선생님 말씀 깊이 고민해봤는데요. 선생님 마음은 감사하지만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는 건 어렵겠습니다."

그리고는 4월 9일 (토) 새벽 1시 13분에 온 김미화씨에게 온 문자입니다.

"선생님 주말에 오신다하여 지금 문자드립니다. 죄송하게도 선생님께서 절 위해 말해주신 고마운 마음이 제 불찰로 젊은 피디들에게 이야기한 순간 언론에 이슈가 되고 안 계신데 일이 커져 버렸습니다. 선생님께서 편성부장이신 줄도 이야기하다 알게 되었습니다.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이미 3월에 이우용 본부장이 김미화씨 MC교체건을 보직 부장들에게 몇 차례 얘기했고, 평PD협의회에도 선언했는데, 무슨 이유로 4월 5일에 제가 하차를 다시 종용했겠습니까?

김도인 본부장/ 편성제작본부

② 김미화씨와 한 모 PD는 2017년 9월 28일 방송된 JTBC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해, 맥락을 왜곡하는 교묘한 거짓 증언으로 저의 명예를 훼손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편성제작본부장으로 파업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언론중재위에 제소해 ‘반론 보도’를 구하는 선에서 만족했습니다.

③ 언론노조의 이런 엉터리 주장 때문에 저는 2017년 10월 15일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에서 10시간 가까이 참고인 조사를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2019년 12월에 낸 <적폐몰이, 공영방송을 무너뜨리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윤도현 강제 하차에 관여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① 이 주장에 대해서도 저는 2017년 9월경 MBC 사내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발표하였습니다.

MB 블랙리스트와 윤도현씨의 <두시의 데이트> 하차 논란

최근 국정원 블랙리스트가 공개되면서 2011년 10월에 있었던 윤도현씨의 <두시의 데이트> 하차 경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어 하차 배경을 자세히 밝히고자 합니다.

2011년 2월말 이우용 본부장이 부임하기 직전에 실시된 2011년도 상반기 청취율조사에서 FM4U는 8.8%의 점유율로, 2010년 하반기에 비해 무려 3.1%P가 빠졌고, CBS 음악FM에도 뒤지는 청취율을 기록했습니다. SBS-파워FM <컬투쇼>의 무서운 상승세와 CBS-음악FM에 40대 이상을 빼앗긴 것이 원인으로 분석되었습니다.

2011년 6월 경 라디오 부장단회의에서 주병진씨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무릎팍 도사> 녹화를 했는데, 입담이 여전했다고 했습니다. 이우용 본부장이 주병진씨를 DJ로 데려와 40대 이상 청취층을 강화하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과거 <주병진 노사연의 100분 쇼>, <주병진의 두시의 데이트> 등에서 워낙 뛰어난 청취율을 기록했던 사람이라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주병진씨는 82사번 조형재 PD하고만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에게 섭외를 맡겨보기로 정리되었습니다. 만약 섭외가 된다면 윤도현씨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가 나왔지만, 라디오2부 조순미 부장이 “윤도현씨는 처음에 밤 12시 시간대를 원했기 때문에 밤 12시대를 더 선호할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조순미 부장은 윤도현씨를 안재주 PD와 함께 섭외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의견에 무리가 없어보였습니다. 또한 당시 표준FM 밤 12시대를 진행하던 신동이 곧 군대 갈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날 부장단회의에서 윤도현씨의 시간대 이동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2011년 9월 15일에 제가 FM4U를 담당하던 3부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리고 2011년도 하반기 청취율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두시의 데이트>는 상반기에 비해 1.4%P가 빠진 4.5%였고, <컬투쇼>는 1.8%P 오른 25.4%였습니다. 

10대~30대에서는 <컬투쇼>가 절대 강세였고, 40대~60대에서는 <두시 만세>가 강세였습니다. 그런데 <컬투쇼>의 경우 10~20대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다음, 30대로까지 인기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고, 그 무렵 공개방송 등을 통해 의식적으로 40대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라디오를 많이 듣는 40대 이상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지만, <두시만세>의 경우 수도권 방송이라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당시 <두시의 데이트>를 담당하던 안재주PD가 <두시의 데이트> DJ가 주병진씨로 교체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주병진씨가 음악작가를 KBS와 CBS 등에서 찾고 있어서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조형재 PD가 본부장에게 직보하고 있어서 구체적인 진척사항까지는 모르지만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전에 윤종신씨가 교체될 때는, 방송사가 너무 늦게 통보하는 바람에 자신의 교체 사실을 후임 DJ로부터 알게 되어서 너무 서운해했다면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9월 22일에 주병진씨가 계약서에 싸인을 하자마자, 바로 다음날인 9월 23일 금요일 오후에 윤도현씨를 FM 스튜디오에서 단 둘이 만났습니다. 90년대 말 제가 표준FM <김창완의 내일로 가는 밤>과 <이휘재의 별이 빛나는 밤에> PD를 할 때 윤도현씨를 자주 섭외했던 터라, 소속사 매니저가 아니라 윤도현씨에게 먼저 인간적으로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하반기 청취율조사 결과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내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DJ 사기가 떨어질까 걱정되어 자세한 얘기는 안 해준 것 같았습니다. 청취율 조사 결과를 보여주며, “FM4U가 <컬투쇼> 때문에 힘든 상황에 놓여 있고, 개선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컬투쇼>와는 청취층이 겹쳐서 성적이 안 나오고 있지만, 다른 시간대로 간다면 윤도현씨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오전 9시대, 낮 12시대, 오후 8시대, 밤 12시대 중에서 고르면 최우선적으로 배정하겠다. 예전 <김창완의 내일로 가는 밤에>처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젊은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얘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윤도현씨는 “밤 12시대는 할 수 있지만 <푸른 밤> 정엽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FM4U에 워낙 빈자리가 많으니 조정하기가 쉽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FM4U의 아침 9시대 <오늘 아침>을 하던 장윤주씨와 저녁 8시대 <친한 친구>를 하던 노홍철씨가 DJ를 그만두겠다고 했고,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던 현영씨는 제가 교체하려고 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DJ 자리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윤도현씨가 밤 12시대로의 이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길래, 저는 그날 저녁 <푸른밤> 정엽씨 소속사의 본부장과 만나, 저녁 8시대 <친한 친구>로의 이동을 고려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9월26일 월요일 오후 1시경에 윤도현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저에게 밤 12시대로 이동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무렵 뉴스엔에서 “윤도현 '두데' 1년 만에 돌연 하차설..후임 주병진 유력 물망”이라는 단독기사가 떴고, 다음날인 9월 27일 윤도현씨의 소속사인 다음기획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성명서를 내면서, FM4U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방송사로 맹비난했습니다. 급기야는 주병진씨마저 “이 상태로는 행복한 방송을 하기 어렵다”며 계약서까지 쓰고선 방송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너무 많은 매체에서 비난기사를 쏟아내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복기해보면 당시 대응에 후회가 되는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당시에 청취율 자료를 공개했더라면 혼란이 덜 했을텐데 하는 후회입니다. 괜히 <컬투쇼>를 홍보해주는 셈이 될까봐, 또 가는 DJ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공개를 안했더니, 노보에서는 <두시의 데이트>가 최고 청취율 프로그램이라고까지 주장을 해서 혼선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최고 청취율 프로그램 DJ인줄 알았을텐데 그런 DJ에게 다른 시간대를 권했다는 것이 뭔가 음모론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윤도현씨의 DJ 하차가 MB 블랙리스트 때문이 아니냐고 노조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만약 그랬다면 밤 12시대 방송을 제안하지는 않았겠지요? 

둘째,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방송사라는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프로그램 개편 때 서운하지 않게 DJ 교체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택림씨, 윤종신씨도 그랬고, <두시만세>를 진행하던 김경식씨도 청취율이 하락하자 2013년 봄에 교체됩니다. 2010년 가을에 밤 10시대 <꿈꾸는 라디오>를 맡았던 옹달샘(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은 6개월만에 물러났습니다. 연예인들에게 높은 출연료를 지급할 때는 그런 리스크까지 감안해서입니다. 자신이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계속 DJ를 할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신에 DJ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때는 방송사에서 아무리 붙잡아도 방송을 그만뒀습니다. 2003년에는 윤도현씨도 그랬습니다.   

② 위 입장문에 소개된 당시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의 청취율은 ‘킬러 콘텐츠’라고 부르기는 민망한 수치였습니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 청취율의 20%에도 못미치는 숫자를 어떻게 ‘킬러 콘텐츠’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단. 2003년에는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는 동시간대 1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킬러 콘텐츠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③ 매일 매일 발표되는 TV 시청률과는 달리, 라디오 청취율은 당시 MBC가 봄, 가을 정기 개편에 참고하기 위해 갤럽 조사연구소에 의뢰하여 6개월에 1번씩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청취율뿐만 아니라 청취 행태 전반에 관한 심층조사였기에 그 결과를 외부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광고영업을 위해서나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보도자료를 뿌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가 쌓였던 것 같습니다.

④ 1년이라는 기간을 줬음에도 청취율이 타사에 비해 저조하고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 좋은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프로그램 관리자의 당연한 본분입니다. 청취율이나 시청률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PD처럼 행복한 직업은 없을 것입니다.

⑤ 윤도현씨의 소속사는 초기에 정치적 외압설을 제기하다가, 제가 제3자를 통해서 청취율 조사 자료를 전달하자 2011년 9월 27일 입장문을 통해 “저희는 이번 일이 흔히 말하는 정치적인 고려가 결부된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방송국 고위관계자들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저간의 상황들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3. MBC 라디오의 경쟁력과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주장에 대하여

① 제가 편성제작본부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8월 25일 MBC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을 첨부합니다.

40명의 라디오PD들에게

또 김도인 때문입니까?

“그간 라디오는 추락을 거듭했다. 청취율의 추락, 신뢰도의 추락. 추락의 이면에는 추악한 간섭이 존재했다. 아이템 검열과 제작 개입은 지난 몇 년간 <신동호의 시선집중>등 시사프로그램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이 제작진에게 연락해 아이템과 인터뷰이를 강요하는 일이 벌어졌다.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PD에겐 인사 불이익이 뒤따랐다.

제가 추악한 간섭을 많이 해서 청취율이 추락하고 신뢰도가 추락한 것처럼 보이게 글을 써놓았더군요. 그럼 사실관계를 따져보겠습니다.

첫째, 저는 2013년 5월 22일 라디오국장으로 발령받아 2015년 2월말까지 1년 9개월 동안 라디오국장으로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한국리서치에서 주관하는 라디오 청취율조사가 12번 있었는데, 그중 4번을 제외하고는 표준FM이 청취율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13년 5월 10일에 <시선집중>의 손석희 진행자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거둔 성적입니다. FM4U의 경우에는 제가 국장으로 있는 동안 청취율이 2배 올랐습니다. 제가 국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2013년 2R 조사에서 CBS-FM이 14.5%, KBS-2FM이 14.6%, FM4U가 6.1%였던 것이, 2015년 1R 청취율조사에서 CBS-FM이 13%, KBS-2FM이 11.5%, FM4U가 12.8%였습니다. 적어도 저 때문에 라디오 청취율이 추락했다는 얘기는 할 수 없겠죠?

둘째,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PD에겐 인사 불이익이 뒤따랐다고 하는데, 제가 어떤 부당한 지시를 했으며 어떤 인사 불이익을 줬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시사프로그램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세월호’와 ‘위안부’는 금기였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구출에 참가했던 어민을 다룬 프로그램은 수많은 시사와 수정을 거쳐야 했다. ‘정부’를 삭제하라, ‘해경’과 ‘헬기’를 삭제하라. 프로그램은 결국 기름 유출로 생활고를 겪는 어민의 이야기로 대폭 수정된 채 방송됐다. 한일관계 아이템조차 위안부 합의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며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PD에게는 진행자 선정의 자율성도, 아이템 선택의 자유도, 때론 선곡의 자유도 없었다.”

셋째, 저는 2015년 2월 27일 편성국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세월호 1주기는 2015년 4월 6일이었고요. 그때는 편성국장이라서 라디오에 관여하려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도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구요. 이왕 세월호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저는 리포터들을 사건 현장에 내려보내 매시간 리포트를 하게 했습니다. 안산에 있는 분향소에까지 리포터를 고정 배치했던 기억이 있으니 꽤 오래 동안 세월호 문제를 다뤘던 것 같은데요? 

넷째, 제가 PD들에게 진행자 선정의 자율권을 주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셨는데, 진행자는 라디오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일선 PD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PD들의 의견을 들어 국장이 결정을 내리고 나중에 책임지면 되는 것입니다. 사족입니다만 제가 <굿모닝FM>의 진행자로 전현무씨를 발탁하자고 제안했을 때 일선 PD들 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섯째, 제가 선곡의 자유를 주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는데, 마치 특정 노래를 틀어라, 틀지 말라고 국장이 지시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PD가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하지 말고 청취자가 듣고 싶은 노래를 선곡하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계속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이번에 서명한 PD 중 한 명이 프로그램 성격에 맞지 않는 무명 트롯가수들의 노래를 지나치게 많이 틀어서 인사고과에 반영한 적은 있습니다만, 설마 그것을 가지고 선곡의 자유 운운하지는 않았겠죠?

제가 다시 라디오에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은 편성제작본부장이 된 2017년 2월 28일 이후입니다. 제가 떠난 이후로는 표준FM이 한 번도 청취율 1등을 못했더군요. 유경민 라디오국장이 <시선집중>, <손에 잡히는 경제>, <그건 이렇습니다>의 시간대를 바꾸는 과감한 개편안을 제안하기에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6월 26일 개편한지 일주일 만에 이뤄진 청취율 조사에서 <시선집중>은 3.5%에서 5.1%로, <손에 잡히는 경제>는 2.3%에서 3.7%로, <그건 이렇습니다>가 방송되는 오전 6시대는 0.7%에서 1.1%로 의미 있는 상승을 했습니다. 

저를 ‘라디오 추락의 주범’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라디오 추락의 진짜 주범’은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전후맥락을 교묘하게 왜곡시킨 이런 글로 PD들을 현혹시키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생각이 다른 PD들까지 자기편에 줄 세우기 위해, 우리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저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 

2017년 8월 25일 편성제작본부장 김도인

② MBC 라디오 표준FM은 제가 라디오국장 자리를 떠난 이후 한 번도 채널별 청취율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없으며, 더군다나 최승호 사장이 들어선 이후에는, 2위 자리도 교통방송에 빼앗겨 만년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4. ‘탄핵 다큐’ 불방 관련 주장에 대하여

① <탄핵 다큐> 불방 사태의 본질은, 당시 담당 국장이 PD와 부장으로부터 받은 기획안을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무려 44일간 몰래 방송 제작을 추진하다가, 2017년 2월 22일 당시 김현종 본부장으로부터 제작중단을 통보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담당국장이 제작중단 지시를 부장과 PD에게 전달하지 않았던지, 담당 PD가 제작을 중단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편성국장이던 저는 이런 사태를 매우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② 2017년 2월 27일에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되자마자, 저는 담당 국장에게 문자를 보내, 전임 본부장의 제작중단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어렵게 확립한 ‘방송 아이템의 사전 보고’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③ 예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12년 8월경 MBC 저녁 교양 프로그램인 <금요와이드>의 담당PD가 부장에게 사전 보고를 하지 않고, ‘발레오만도’라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벌어진 노동탄압 현장을 방송하려고 하다가, 사전 미보고와 지시불이행을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불복한 담당 PD가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결국 회사측의 승소로 결론 났습니다.

④ 저는 <MBC 스페셜>의 ‘탄핵 다규’ 제작 추진 과정이 2012년 <금요와이드>의 사례와 똑같다고 판단해, 유사한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정상적인 보고 절차를 거친 <PD수첩>의 ‘탄핵, 불붙은 여론 전쟁’편과 <리얼스토리 눈>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특집’은 아무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방송되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5. ‘6월 항쟁 다큐’ 불방 관련 주장에 대하여

① 먼저 ‘6월 항쟁’ 다큐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사람은 제가 아니라 담당 국장이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탄핵 다큐’ 기획안을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아서 물의를 일으켰던 바로 그 국장이었습니다.

② 이후 ‘6월 항쟁’ 다큐 담당 PD는 제작비를 부장이나 국장 결재 없이 임의로 집행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는데, 당시 언론노조는 <끝없는 징계, 자멸을 재촉하는 경영진>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회사를 비난하였고, 이에 대해 회사는 다음과 같은 반박 입장문을 밝힌 바 있습니다.

<6월 항쟁 다큐 제작 관련 징계사유는 이렇습니다>

노조는 5월 16일자 노보에서, 국•부장의 제작 승인을 받아 정상적인 절차로 제작이 진행 중이던 <6월 항쟁 30주년>이 김장겸 사장의 취임 이후 부당한 검열과 압력을 받아서 갑자기 제작이 중단된 것처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단순히 사전 제작비를 과다 지출했다는 이유만으로 김만진PD를 징계하려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쓴 것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사실관계를 왜곡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이렇습니다.

먼저 <6월 항쟁 30주년>의 내용을 문제 삼아서 김장겸 사장의 취임 이후에 제작이 중단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6월 항쟁 30주년>의 제작중단 결정은 김장겸 사장이 취임하기 전인 2월 28일에 당시 김학영 콘텐츠제작국장이 지시한 사안입니다. 더군다나 <6월 항쟁 30주년>에 대해 당시 김진만 다큐부장과 김학영 콘텐츠제작국장이 제작 승인을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김만진PD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등의 미속촬영을 하고 싶은데 그 시기를 놓치면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하기에, 담당 부장은 미속촬영 등에 한하여 사전 취재를 허가하면서 기획안 제출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만진PD는 두 달이 넘도록 기획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담당 부장은 기획안 제출을 촉구하면서 아직 아이템이 승인된 것이 아니라고 몇 차례 주의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학영 당시 국장이 <6월항쟁 30주년>은 사전 준비만 시킨 것이므로 아이템 진행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김만진PD가 사전 제작비를 과다 지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김만진PD가 징계를 받게 된 것은 <6월 항쟁 30주년>의 사전 제작비로 3,000만원을 집행하면서, 담당 부장, 국장에게 전혀 보고를 하지 않고 임의로 제작비를 집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김학영 당시 국장이 제작중단을 지시한 2017년 2월 28일 이후에도 1900만원이 넘는 제작비를 지출했으며, 이중에는 미국인 프리젠터를 한국으로 부르는데 든 항공료 및 숙박료 500만 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런 해외 제작비 지출은, 국장의 사전 결재를 받아야 집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번 <6월 항쟁 30주년> 사태에서 드러난 제작관행은 제작 자율성이라는 명분으로는 도저히 미화될 수 없는 일탈행위입니다. 회사는 이런 잘못된 제작관행을 바로 잡아, 엉뚱하게 새는 제작비를 없앰으로써, 경쟁력을 올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017년 5월 23일

콘텐츠제작국

③ 김만진PD는 이 성명서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저에 대해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제기해왔습니다. 서부지검이 ‘혐의없음’ 처분을 내리자 김만진PD는 서울고검에 항고까지 하였지만, 최종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졌고, 민사소송에서도 제가 승소하였습니다.

④ 2018년 6월 2일 <PD저널>에 <제작 중단 1년만에 ‘어머니와 사진사’ 방송, 기적 같아>라는 제목으로, “2017년 당시 경영진의 탄압으로 제작이 중단된 MBC 스페셜 ‘어머니와 사진사’ 다큐멘터리가 우여곡절 끝에 방영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언론중재위에 반론보도를 청구하여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얻어냈지만, <PD저널>이 불복하기에 민사소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반론보도를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MBC스페셜 <어머니와 사진사> 다큐멘터리 제작 기사 관련 반론보도문]

본지는 2018년 6월 12일자 『“제작 중단 1년 만에 ‘어머니와 사진사’ 방송, 기적

같아”』 제하의 기사에서 지난해 당시 경영진의 탄압으로 MBC스페셜 <어머니와 사진사> 다큐멘터리 방송의 제작이 중단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MBC 편성제작본부장이던 김도인씨는 당시 <어머니와 사진사>는

전임 본부장에게 보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되던 도중 제작이 중단되었고, 본인은 2017년 3월 17일 미디어오늘에 관련 기사가 날 때까지 제작이 중단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서울남부지방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

6. 다큐 불방에 항의하는 PD들을 인사조치하여 내부 구성원의 반발을 샀다는 주장에 대하여

① <6월 항쟁> 다큐의 PD였던 김만진 PD를 콘텐츠제작국의 콘텐츠제작1부에서 콘텐츠제작2부로 이동시킨 것은, 콘텐츠제작2부에서 <기분 좋은 날> 책임PD를 맡고 있던 오동운PD가 2017.6.1.~8.31.까지 육아 휴직을 갑자기 가게 되어 후임 PD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은 날>은 주 5일 방송되는 프로그램인데다, 간접 광고나 협찬 관리에 있어서 주의할 점이 많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일찍 후임자를 정해서 인수인계를 충분히 해야 한다는 당시 홍상운 국장의 건의에 따라 발령냈습니다.

② <탄핵 다큐> 방송이 취소된 다음 이정식PD를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발령낸 것은, 전임 경영진 시절 유명무실했던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에 프로그램 제작기능을 부여하여, KBS의 <걸어서 세상 속으로>와 같은 해외 견문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 이정식 PD가 <W>라는 해외 취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고, 직전에 <어메이징 아세안> 2부작을 제작하기도 하여 적임자라고 판단했습니다.

③ 나중에 언론노조는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발령 등을 이유로 전임 경영진들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하였습니다. 정권 초기 ‘적폐청산’이라는 마녀사냥 분위기 속에서 서부지방노동청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지만, 저에 대해 ‘무혐의 의견’으로 서부지검에 송치하였고, 서부지검에서도 13시간이 넘는 조사 끝에 제가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7. 퇴직금은 물론 특별퇴직위로금까지 요구하며 사퇴를 거부해 회사 정상화를 지체시켰다는 주장에 대하여

① ‘특별 퇴직위로금’이라는 말은 일종의 ‘용어혼란’ 전술의 일환이고, 정확한 개념은 ‘잔여 임금’입니다. 저는 2017년 2월 27일 열린 MBC 주주총회에서 임기 3년의 등기이사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래서 2020년 2월까지 임기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김장겸 사장이 해임된 후 들어선 최승호 사장이 제가 관장하던 편성제작본부를 해체시켜 버리면서 무보직 이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방문진 이사회에서 저에 대한 해임 사유를 제시하는 것을 기다려 ‘소명서’를 제출한 다음, 1월 12일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② MBC는 상법상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임원 보수 등에서는 상법의 규정을 따릅니다. 상법 제385조 제1항은 “이사는 언제든지 제434조의 규정(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이상의 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수로 하는 결의)에 의한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임기만료 전에 이를 해임한 때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③ 대법원 판례(2004다25611)에 따르면, “주주와 이사 사이에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당해 이사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로소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④ 그러면서 ‘이사의 업무 집행 시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첫째,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한 경우

둘째, 이사가 정신적·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셋째, 이사가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경우

⑤ 저를 포함한 당시 김장겸 사장 체제 이사진 누구도 위의 세 가지 상황에 해당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해임이 되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까도 생각했지만, 나중에 방문진 구성이 바뀌어 주주총회에서 특별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사표를 제출한 것입니다.

⑥ 언론노조의 입장에서는 제가 사표를 늦게 제출한 것이 ‘정상화를 지체시킨 행위’로 보이겠지만, 언론노조의 파업에 대항하여 방송 파행을 막느라 고생한 사원들에게는 파업주도세력의 무자비하고 反인권적인 보복행위를 하루라도 지연시켜준 행위로 보일 겁니다.

⑦ 당시 임원퇴직연금 지급규정은 제7조 2항은 “회사 사정으로 인하여 임기 만료 전에 퇴직하는 임원에게는 제6조에 의한 퇴직연금 이외에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의 특별퇴직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다.”라면서,

- 본·관계사 3년 이상 재임한 임원에 대해서는 잔여 임금의 50%

- 본·관계사 3년 미만 재임한 임원에 대해서는 잔여 임금의 90%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⑧ 위 규정은 1990년대 중반 MBC 프로덕션 사장과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회사가 패소하자, 향후 중도 하차한 임원에게 지급할 잔여 임금을 절약하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⑨ 이 규정이 마련된 이후 임기 중 사임한 모든 임원들에게 특별퇴직위로금을 지불해온 것이 MBC의 관례였습니다. 심지어 저희에게 특별퇴직위로금을 못 주겠다고 결정한 당시 이완기 방문진 이사장과 유기철 이사도 본인들이 지역사 사장 임기를 못 마쳤을 때 특별 퇴직위로금을 수령한 바 있습니다.

⑩ 엄기영 사장 시절 MBC 임원 전원이 방문진에 집단 사표를 제출했는데, 부사장을 포함한 4명의 사표가 선별 수리된 적이 있습니다. 엄기영 사장 재임시에는 이들 이사진들에게 특별퇴직위로금을 지급하지 않았지만,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다음 4명 전원에게 최대 3억 2천만원의 특별퇴직위로금을 지급한 바 있습니다.

⑪ 2020년 11월 26일 방문진 제19차 이사회에 출석한 강지웅 당시 기획조정본부장은 당시 저를 포함한 김장겸 체제 이사진에게 특별퇴직위로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도 무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비정규직 신분이 되니까...”

8. 제가 방문진 이사로서 끊임없이 MBC의 방송과 편성에 관여를 시도하며 월권을 일삼았다는 주장에 대하여

①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하고 있는 방송법 제4조 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는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이라는 대목은 빼놓고, 누구도 방송편성에 관하여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는데, 제가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 보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합니다.

② 방송법 제49조와 방문진법 제10조는 공영방송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MBC의 가장 중요한 공적 책임이 ‘공정한 방송’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 보도의 공정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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