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가 지난 18일 마무리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김정은 당 총비서는 이날 회의에서 당 간부들의 책무를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가 지난 18일 마무리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김정은 당 총비서는 이날 회의에서 당 간부들의 책무를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6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강도 높은 아부성 발언을 해 빈축을 사고 있다. 김정은이 ‘실용주의자’라는 게 이 전 장관의 주장이다.

집권 10년차 ‘핵놀음’에 빠져 북한경제 거덜낸 김정은이 실용주의자?

김정은은 집권 10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핵놀음에 매달려 개혁 개방에 실패했다. 북한경제는 거덜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까지 겹쳐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역대급 빈곤에 빠졌다. 김정은은 대내외적으로 절박한 리더십 위기에 빠져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실용주의 노선을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김정은 정권은 부친인 김정일 시대보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이다. 이 전 장관의 김정은 평가는 그야말로 궤변에 불과한 셈이다.

이종석, “김정은은 목표했던 개혁개방정책 추진 중”...현실은 지구상 유일한 ‘고립국가’

더욱이 전날은 6.25전쟁 발발 71주년이었다는 점에서, 전 통일부 장관의 인식에 대해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 전 장관은 26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앤리조트에서 열린 제주포럼 중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함께 개최한 '북한에 대한 이해' 세션에 참석해 "김정은은 실용주의자이며, 北 변화는 불가역적 수준"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전 장관은 또 국가 운영방식도 과거 ‘군사 국가’에서 당과 내각이 주도하는 ‘정상 국가’로 이미 이행됐으며, 주민 지지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스탈린주의 중앙집권적 경제로 돌아간 게 아니라 자기가 목표했던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서방이 북한의 개혁정책을 나름대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협상에서 일정한 출로가 뚫리는 게 좋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핵포기를 거부한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금수조치로 인해 지구상 유일한 ‘고립국가’로 전락한 현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재명의 외교안보팀 이끄는 이종석의 발언, 이재명의 대북관 반영?

이종석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최근에는 조정식 의원과 함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전국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인사이다. 이 지사 대선캠프의 외교안보팀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 평화누리홀에서 열린 2021 경기평화안보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 평화누리홀에서 열린 2021 경기평화안보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라서 그의 발언의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으며, 그의 발언이 이 지사의 대북관을 보여주는지 주목되고 있다.

미국 및 남한과 물리적 충돌을 안 해서 실용주의?

이 전 장관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격상한 김정은의 호칭마저도 ‘국무위원장’이라고 부르고 있어, 전문성을 의심받았다. 게다가 이 전 장관이 김 총비서에 대해 실용적이라고 평가한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미국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하지 않고 남한과의 물리적 충돌을 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을 볼 때 꽤 실용주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분석했다.

이 전 장관은 "국제화된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부족하지만 이미 북한의 변화는 불가역적 수준으로 도달해 있다"면서 "최근 북한을 바라보고 있자면 '변화'가 상당히 눈에 띈다"고 강조했다. "특히 2018년도 새 국가전략노선이 제기된 이후에 변화가 더 눈에 띈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일부 변화에 대해 적응력이 상대적으로 높고 개방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탄력적"이라며 "김정은 리더십은 절대왕조 군주라는 특성과 기업들이 가진 CEO의 자질을 겸비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 예로 2018년 1차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오성기가 그려진 중국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일화를 들었다. 김정은을 목표 성취가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특히 이 전 장관은 김 국무위원장의 권력이 임기 초기보다 상당히 안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국무위원장의) 권력이 초기에 비해 상당히 안정돼 있다"면서 "일부에선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해 등으로 사회 경제여건이 어려워져 김정은 정권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하지만, 김정일 정권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 당시에서도 살아남았다"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관주의적 사상을 강조했지만, 김 국무위원장은 실용주의와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며 "국가 자원의 우선순위도 인민경제쪽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의 외교 멘토 문정인, “김정은이 실용주의라면 남쪽과 대화도 해야” 꼬집어

이 전 장관의 이런 발언에 대해 같은 진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좌장을 맡은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김 총비서가) 실용주의적인 지도자라면 남쪽과 대화도 하고 관계 개선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도 '고집스러운 지도자'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션에 참석한 일부 전문가들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김 총비서에 대한 대중적 지기 기반이 딜레마에 직면했다는 지적을 했다.

뤼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경제 개혁을 추구하지 않으며, 8차 당 대회 계기로 오히려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크 비엔나대 교수, “김정은 정권은 개혁 대신에 정부 통제 강화” 평가

프랑크 교수는 "소련과 중국, 베트남의 개혁·개방 사례를 봤을 때 최고지도자가 명시적으로 개혁에 대해 공표했는데, 이것이 개혁에 필요하다"며 "최고지도자가 '경제체제를 개혁하겠다,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얘기해야 하위 관료들이 이를 지지하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권력체제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 정권 들어 농장의 책임, 기업의 책임 등 여러 개념들이 도입됐다. 이는 기존 체제를 완벽하게 하려는 것인데 지금까지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개혁을 시도했지만 선포한 바는 없다"며 "북한이 경제 제재와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지만 개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 총비서의 지난 1월 8차 당 대회 연설은 ‘수입을 제한하고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라며, 연설에 개혁이나 정책 변경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사상 검증이나 정치적 압박 가능성만 시사했다고 짚었다.

프랑크 교수는 "북한의 리더십은 현재 반사회주의적 문화와 이념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그래서 정권이 개혁보다는 정권 안정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프랑크 교수의 이런 발언은 이 전 장관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이 8차 당 대회에서 '경제 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언급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은 자신이 계획했던 개혁·개방정책을 안되는 부분도 있지만 계속 가져갈 것"이라며 "결국 키는 (제제를 가하는) 서방, 미국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국민의 비판여론도 뜨겁다. 이 전 장관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서는 “전 통일부 장관의 수준이 이러니,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싸잡아 비난을 받는다”, “그렇게 김정은의 리더십과 개혁이 좋으면, 북한으로 가야지” “인민을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리더가 무슨 CEO의 역량을 가졌다고?”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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