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국회의원 73명이 8일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 이름을 올렸다. 2021.06.08(사진=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실)
범여권 국회의원 73명이 8일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 이름을 올렸다. 2021.06.08(사진=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실)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명분을 상실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국내 인사가 수년 전부터 北 공작원을 만나 지령문을 나누는 등의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건은, 지난 24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양동훈)가 '4·27시대연구원'이라는 단체의 연구위원 자격을 가진 이모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한 일련의 사태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017년 4월,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국내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이 씨는 그로부터 암호지령보고문 등의 교육을 받았다.

이로써 '국가변란사태'를 불지피던 이석기 前 의원이 속했던 통합진보당의 후신격 정당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던 국가보안법 철폐법안들의 추진 동력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지난달 20일 국회 입법 국민 청원 10만명 조건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2021.06.26(사진출처=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지난달 20일 국회 입법 국민 청원 10만명 조건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2021.06.26(사진출처=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지난달 19일 이를 추진했던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된 이정훈 4.27 시대연구원과 이석기 전 의원은 석방되어야 한다"라며 "통일을 역행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세운 바 있다. 관건은 '국가보안법 철폐'다.

그런데, 이들의 이같은 주장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6월30일, 즉 오는 30일부로 정확히 32년 전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불어과 학생이었던 임수경 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그가 주장한 국가보안법 철폐론이 32년 만에 돌고 돌아 터진 것이다.

앞서 터진 4.27시대연구원의 北 공작원 접선 혐의와 같이 당시 그의 방북 사건은 모두 '국가보안법 폐지론'으로 관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월31일 외교부가 공개한 무려 25만 장에 달하는 외교문서에서 '임수경 무단 방북(訪北) 사건'은 제외됐다. 외교부는 '개인 문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이는 정부가 국가보안법상 '반(反)국가단체 점령 지역으로의 잠입·탈출(제6조)' 행위를 '개인 사건'으로 본다는 점이다. 현재 사건 공개를 두고 법정 투쟁 중이다.

이에 기자는 30년 전 작성돼 세상을 놀라게 했던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를 입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당시 그가 썼던 수기록으로써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뿌리를 파헤쳐봤다.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1.  정부가 숨긴 임수경 방북 사건···'옥중 방북 백서'로 들여다봤다?

북한으로의 무단 방북 행위가 문제가 되는 까닭은, 국가보안법 제6조(잠입·탈출)에 기인한다. 그 내용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에 잠입·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 법원은 북한이 '반국가단체성'을 가졌다고 봤다(2003도758, 전원합의체, 대법원 2008.4.17). 여기서 외교부의 명분인 '개인 문서'와 '법원 판결' 중 어떤 판단이 더욱 엄중한 것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그렇다면 외교부가 밝히지 않은 '임수경 방북 사건'의 내막의 실체는 무엇일까.

올해 초, 기자가 입수한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에 따르면 임 씨는 1989년 6월30일부터 그해 8월15일까지 47일간 일본 동경(도쿄)-베를린-모스크바를 거쳐 北 평양에서 머물렀다.

임 씨는 동베를린에서 북한 인사를 만났는데, 당시 모습에 대해 "가슴에 달려 있는 김일성 뱃지와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이상야릇했다"라고 회고했다.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2. 임수경의 수기 속 충격 발언 "北 김일성, 알고보니 미소가···"

임 양의 수기록에 따르면, 그는 1989년 6월30일 오후 1시30분 '북녘땅'을 밟았다. 그는 "감격에 복받쳐, 설움에 복받쳐 너무나 아파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우리 민족의 한과 설움이여, 이산의 아픔으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고향이 그리워도 가지 못했던 형제들이여, 어찌 우리들을 갈라놓을 수 있겠는가.누가 우리 민족을 둘로 만들 수 있겠는가"라며 당시의 감정을 기록했다.

그의 숙소는 고려호텔 1동33층 5호였다.북한이 추진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마침내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깃발이 평양 하늘에 찬란하게 휘날렸다"라며 "이날 밤 10시경 TV를 통해 임종석 전대협 의장의, 머리띠를 동여맨 굳센 모습이 화면에 등장해 내 이름을 호명하며 발표했다. 감격적인 순간"이라고 밝혔다.

그해 7월2일, 임 씨는 만경대를 둘러보게 됐다. 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잘 꾸며진 동산에 초가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곳이 김일성 주석의 생가라고 했다···나는 사전에 묻지 않고 온 탓도 있고 기자들까지 따라온 데, 이왕 도착했으니 둘러보자는 생각을 했다."

▶ "그날 저녁에는 김일성 주석이 주최한 연회가 금수산 의사당에서 열렸다. 그 연회장에서 김일성 주석과 직접 대면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전원이 축배를 들었는데, 그 때 직접 인사를 하게 됐다. 김 주석은 나에게 술잔을 건네주면서 잘왔다는 인사와 함께 '통일을 위하여'라는 말로 건배를 했다. 인상은 보통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이었다. 풍채가 상당히 좋았고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였고 얼굴에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 미소가 인상을 좋게 했다. 적어도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붉은 악마'와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2018.4.28(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2018.4.28(사진=연합뉴스)

#3. 文이 먹던 '평양냉면', 임수경은 이미 벌써 32년 전에 먹었다?

여기서 '北 평양의 옥류관'이 등장한다. '옥류관'이 급속도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지난 2018년 9월 남북공동선언 및 9·19 남북군사합의를 코앞에 둔 그해 4월28일 문재인 대통령과 北 김정은과의 만남에서 작용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먹었다.

문재인 정부의 '업적'의 상징으로 추켜세워졌던  '평양냉면'은 곧장 비수(匕首)가 되어 날아왔다. 北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리선권은 당시 회담 수행원으로 참석했던 우리나라 기업 총수들이 '평양냉면'을 먹자 불쑥 나타나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를 받던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답변했다. 임수경 전 의원은 바로 그 문제의 평양냉면을 문재인 대통령보다 29년 먼저 경험했던 것이다.

그해 7월6일, 임 씨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에 입각한 내용을 담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작성했다"라고 밝힌다. 여기에는 ▲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 평화협정 체결 등이 담겼다. 그해 8월12일, 임 씨는 '혁명열사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4. 32년 전 임수경 "주한미군, 한반도에서 나가라"

다음은 임 씨가 평양에 도착한 이후 가졌던 2차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이다. 출처는 그의 옥중 방북백서다.

▶ "지금 한반도 남단에서는 저희 한국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이 주둔해 있고, 그리고 판문점을 지키는 병사 역시 미군입니다. 지난 1950년에 있었던 한국전쟁 이후 휴전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는 바로 북한과 미군입니다."

▶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결코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미국은 반드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라면 떠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한미군은 반드시 철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은 한반도의 평화를 심는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한반도 남단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미국은 반드시 한반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5. 북한은 예나지금이나 적화통일 의지 가득한데 32년 전부터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돌아온 임 씨는 2심 최후진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 "저희 청년학생들의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통일에 대한 의지와 통일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올바르게 평가되는 데에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고 믿기에 징역 10년형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떤 형이라고 기쁘게 받을 수 있다."

▶ "정치적으로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반민주악법의 존속, 제반 악법의 무분별한 적용으로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민족자주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현 정권은 대외종속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분단체제를 정권유지의 도구로 교묘히 이용해왔던 현 정권은 북한의 남침 위협을 운운하면서 민중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통일에 대한 일체 요구를 국가보안법에 적용시켜 원천 제압했다."

▶ "북한이 아직도 무력적화야욕을 꿈꾸며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다는 허튼 소리를 계혹하는 것은, 그를 빌미로 정권이 폭압적 지배를 합리화하고 미국의 침략적 근성을 채우기 위한 팀스피리트훈련을 비롯한 한미군사훈련의 정당화에 다름아닌 시대착오적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분단시대에 많은 탄압도구로 사용된 국가보안법의 즉각적인 철폐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을 마구 휘둘러댐으로써 국가보안법에 의해 나라의 안정이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적인 집행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국가보안법은 완전 철폐되고 평화통일 추진을 위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자주적인 교류를 다각적으로 보장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모든 양심수들을 즉각 석방해야 할 것이다."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사진=연합뉴스)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사진=연합뉴스)

#6. 임수경 뒤에는 임종석···숨겨진 그의 흔적들, '옥중 방북 백서'에 실렸다

임수경 씨의 '옥중 방북백서'로 알려진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는 '임수경 후원사업회'가 엮어 1990년 6월10일 초판을 찍어냄에 따라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이었던 임종석 現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옥중 방북백서' 머릿말에는 그가 '여기 피어나는 통일의 꽃을 이제는 그 누구도 꺾지 못하리라'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는데, 그 시기와 장소는 '하나되기 46년 7월 어느날 영등포 교도소에서'로 적혔다.

임종석 당시 의장은 임수경 양을 향해 "우리의 임수경 대표는 참으로 당당하고 떳떳했다"라며 "아주 가까운 장래에 통일은 오고야 말 것이다. 여기 피어나는 통일의 꽃을 이제는 그 누구도 꺽지 못하리라!"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인사인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던 그는, 지난 2019년 11월1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예나 지금이나 저의 가슴에는 항상 같은 꿈이 자리잡고 있다"라며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 제겐 꿈이자 소명인 그 일을 이제 민간 영역에서 펼쳐보려 한다"라고 밝혔다.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올해 초, '임수경 옥중 방북백서'인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후원사업회, 돌베개)'를 입수했다.2021.06.2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7. 32년을 뛰어넘어 3명을 관통한 하나의 논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론'

앞서 밝힌 이들 세 사람을 관통하는 하나의 혐의는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모두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던 이들로, 지난 32년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주장을 펼쳐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가보안법에 대한 범여권의 인식은 어떠할까. 지난달 20일 정의당의 강은미 의원을 비롯해 배진교·장혜영·류호정·이은주 의원과 심상정(경기 고양갑)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용빈(광주 광산갑) 의원과 기본소득당 비례대표 용혜인 의원, 김홍걸·양정숙 무소속 비례대표 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2110236)을 발의했다.

이미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의 이규민 의원을 비롯한 김용민·김진애·김철민·김홍걸·신정훈·양정숙·윤영덕·김남국·이동주·이성만·이수진(비)·장경태·조오섭·최혜영 의원이 '국가보안법 7조 폐지안(2104605)'을 내놓은 상태다.

만약 이대로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앞서 터진 4·27시대연구원 소속 국내 인사의 北 공작원 접선 문제도 묻힐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북한의 '혁명열사릉'을 비롯한 '주체사상탑 여행'이라는 터무니없는 사건까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다.

사진은 1989년 8월 16일 방북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돌아오는 임수경 씨, 문규현 신부의 모습. 2018.4.27(사진=연합뉴스)
사진은 1989년 8월 16일 방북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돌아오는 임수경 씨, 문규현 신부의 모습. 2018.4.27(사진=연합뉴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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