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잇단 대화 거부에도 미 “조건 없는 대화” 반복...‘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나?
북한의 잇단 대화 거부에도 미 “조건 없는 대화” 반복...‘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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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이어 리선권도 미북 대화 거부...“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미 언론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대북제재 완화 등 미국의 ‘의미있는’ 양보 원해”
미 전문가들 “미북대화 집착 말고 압박 강화해야”
북한 리선권 외무상(연합뉴스)
북한 리선권 외무상(연합뉴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노동당 부부장인 김여정과 외무상 리선권이 잇따라 미북 대화를 거부하는 담화를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 제의에는 변함이 없다”며 응수하고 있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미국에 ‘의미있는 양보’를 고집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하면서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선 듯한 모양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한의 잇따른 대화 거부에도 대북 외교에 열려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 당국자는 23일(현지시간) 미국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북한 외무상 리선권의 담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앞서 리선권은 23일 담화를 통해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리선권은 “우리 외무성은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미국의 섣부른 평가와 억측과 기대를 일축해버리는 명확한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했다. 전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꿈보다 해몽” “미국은 아마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라고 한 것에 대해 거듭 확인한 것이다. 백악관은 김여정의 담화 발표 직후에도 “조건 없는 대화 제의에는 변함이 없다”며 “우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도전을 다루기 위해 북한과 원칙에 입각한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이 잇따른 담화를 통해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일축한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북한이 미국의 선제적 양보를 원하는 것으로 평가하며 북한 내 상황도 대화를 망설이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핵 협상에 대해 미국을 냉대했다”며 “김정은 정권이 바이든 행정부의 손을 거절하면서 외교적 교착상태가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핵무기를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동안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폐기하는 결단을 보여주기를 원하면서 미북 고위급 회답을 거부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제는 반대로 김정은 정권이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후에 핵 협상을 위해 ‘그랜드 바겐’을 포기하는 대신 단계적 조치를 채택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김씨 정권은 여전히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제재와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반드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 부차관보는 WSJ에 “만일 미국이 제재를 계속 완화하지 않으면 평양은 협상 테이블에서 계속 멀리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미북은 지난 2019년 싱가포르 및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공식적인 핵 협상을 개최하지 않았다. WSJ은 북한이 북핵 협상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코비드19와 홍수피해, 경제적 고통 등 내부적 문제들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미국과 한국의 관리들은 ‘대화와 대결을 모두 준비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에 대해 긍정적 기대를 표현했지만 북한은 수개월째 똑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미국이 의미있는 양보 곧 제재완화를 하기 전까지 북한은 협상으로 되돌아갈 의도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북 대화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북한의 행동 변화를 꾸준히 압박하는 것이 현실적 대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연합뉴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VOA에 “미북 대화의 즉각적인 재개 전망은 밝지 않지만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북한의 성명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힐 전 차관보는 “중요한 것은 북한 쪽에서 상황을 진전시킬 의지가 있으냐인데, 나는 여기에 회의적”이라며 “열악한 경제 상황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이 언제든 셈법을 바꿀 수 있지만 현재로선 조기 대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는 단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며 “오직 대화 복귀만을 요구할 경우 북한은 대화 테이블에서도 ‘노(No)’라는 말만 할 것”이라고 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이 진지한 협상을 할 것이라는 조짐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다”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도 VOA에 “북한이 협상도 하기 전에 항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관리가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만큼 공은 여전히 북한에 넘어가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언제 어디서든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반복적으로 밝히는 것 외에 추가 메시지를 내거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며 “그럴 경우 북한과 어떤 대화에서도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이 협상을 원하면 스스로 걸어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미북 대화의 선순환적 발전’을 강조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6일 “한미연합훈련이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고 추가적으로 고조시키는 형태로 작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빠르게 나오도록 유인하는 의미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촉매제를 활용하자”고 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언젠가부터 연합훈련은 불가침의 영역이 됐다”며 “한반도 비핵화라는 전략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방법을 언제든지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24일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한미연합훈련 축소·조정 문제 등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리비어 전 차관보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북한이 한국에 가장 바라는 것이며 따라서 미국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려는 이유는 바로 제재 완화 등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확산·생화학방어 선임국장과 북한 담당 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포재단(FDD) 선임연구원은 VOA에 “현재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핵과 미사일 등 미국과 유엔에 의해 금지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추가 대북제재가 발동되지 않아 압박 동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와 논의해야 할 주제가 핵과 미사일 문제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압박 강도를 늘리는 것이 다음 단계”라고 했다.

미국의 전직 관리들은 미국이 대화 의지를 거듭 분명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미북 대화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한국정부의 기대 등을 고려해 북한에 모종의 유인책을 제공하거나 타협점을 모색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VOA는 “낮은 단계의 관여를 성사시키는데도 보상을 제공할 경우 모든 협상 단계마다 선물의 크기를 늘려야 하고, 정작 회담은 ‘비핵화할 생각 없다’는 북한의 기존 입장만 확인하고 끝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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