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특집①] 현장르포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돌아오지 못한 10만명, 아픔은 계속
[6·25특집①] 현장르포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돌아오지 못한 10만명, 아픔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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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입구에서 열린 6ㆍ25 납북 피해자들 북한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회장(왼쪽 세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2020.6.25(사진=연합뉴스)
2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입구에서 열린 6ㆍ25 납북 피해자들 북한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회장(왼쪽 세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2020.6.25(사진=연합뉴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 오는 25일 71주년을 넘기고 있지만, 아직도 그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는 바로 10만명에 달하는 '6·25전쟁납북피해자'들의 남겨진 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기도 하다.

'6.25전쟁 납북피해자'란, 북한의 조직적인 기획 의도에 따라 지난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강제로 납북된 민간인을 뜻한다.

이들 중에는 초대 경기도지사였던 구자옥 선생을 비롯해 우리나라 초대 감찰위원장이었던 정인보 선생,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의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와 우리나라에서 1호로 등록된 법조인 홍재기 변호사도 포함된다.

국가기록원은 '강제 납북되는 양민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고 진상조사보고서는 밝혔다. 2021.06.24(출처=진상조사보고서,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국가기록원은 '강제 납북되는 양민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고 진상조사보고서는 밝혔다. 2021.06.24(출처=진상조사보고서,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 구자옥 선생은 北 강계 근처에서 끝끝내 목숨을 잃었고, 납북자 대다수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의 생사는 71년간 불명으로, 지금껏 남겨진 가족들만이 이들의 흔적을 애타게 찾고 있다.

전시 민간인 납북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는, 전쟁이 발발한지 67년이 지난 2017년 4월27일에서야 의결처리됐다. 당시 국무총리실에서 발간한 총 527쪽 분량의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조사보고서(11-1250468-000001-01, 이하 조사보고서)'가 발간되면서 북한에 의한 기획 납북의 진상이 공개됐다.

다음은 조사 보고서의 내용으로, '북한의 기획 납북 실태'를 보여주는 '납북자 집계 수치'와 '북한의 행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인 지난 15일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부인 리설주와 함께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김일성·김정일 조형물 동상 앞에 김 위원장의 이름이 쓰여진 꽃바구니가 놓여져 있다. 2021.4.16(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인 지난 15일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부인 리설주와 함께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김일성·김정일 조형물 동상 앞에 김 위원장의 이름이 쓰여진 꽃바구니가 놓여져 있다. 2021.4.16(사진=연합뉴스)

#1. 71년 전 北 김일성, '모시기 공작'으로 10만명 납북···관건은 '의도·기획'

진상조사보고서에서 밝힌 기획 납북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北 평양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발간한 '김일성전집4'에 따르면 北 김일성은 1946년 7월31일 '남조선에 파견된 일군들과 한 담화' 중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올데 대하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 "우리가 새 민주 조선 건설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난관의 하나는 대학교원, 학자를 비롯한 인테리가 매우 부족한 것입니다. 인테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산업 운수시설을 복구·정비하고 관리 운영하는 데서 지장을 받고 있으며 교육과 과학,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데서도 애로를 느끼고 있습니다. 종합대학을 창립하기 위한 준비사업 정형을 보아도 인테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교원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동무들은 남조선에 나가 그 곳 인테리들에게 북조선에서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적 시책을 실시하고 있는 데 대하여서와 인테리들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교육사업과 과학 연구 사업에 필요한 조건을 보장하여 주고 있는 데 대하여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어야 합니다."

▶ "그리고 남조선에 있는 인테리들에게 북조선에 들어와 나라와 민족의 부강 발전을 위한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위촉장을 전달하여야 하겠습니다. 남조선에 있는 인테리들이 북조선의 소식과 우리가 보내는 위촉장을 받게 되면 그들은 우리를 지지하고 적극 따라 나설 것입니다."

진상조사보고서가 밝힌 '북한 군사위원회 결정문(러시아어 번역본, 1950.7.17.),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 소장' 사진. 2021.06.24(출처=진상조사보고서,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진상조사보고서가 밝힌 '북한 군사위원회 결정문(러시아어 번역본, 1950.7.17.),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 소장' 사진. 2021.06.24(출처=진상조사보고서,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50년 6월28일, 北 조선노동당 군사위원회는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장악하고서 '남반부 정치, 경제, 사회계 주요 인사들을 포섭하고 재교양하여 그들과 통일 전선을 강화할데 대하야(군사위원회 8호 결정)'를 채택했다.

문제의 '군사위원회 8호 결정문' 문건에는 우리나라의 주요 인사를 연행포섭하겠다는 내용이 담겼고, 이를 위해 7월3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군사위원회 합동 연석회의를 통해 '모시기 공작'이라는 작전명령을 하달했다. 이같은 내용은 1948년 9월15일자  미군방첩대(Counter-intelligence Corps: CIC)의 정보 활동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연천주재지보고서'를 통해서 북한의 대남공작사업인 '주재지 사업'의 실체도 파악됐다. 1949년 8월, 북한의 주재지 사업에 관한 그들의 임무가 공식적으로 까발려진 것이다. 여기에는 '적진에 침투하여 인사들을 포섭·규합, 반동분자들을 분열·와해시키고 납치함으로써 국토완정의 결정적 역할을 높일 임무'가 명시됐다.

1952년 대한민국 정부의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2021.06.24(출처=진상조사 보고서, 편집=조주형 기자)
1952년 대한민국 정부의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2021.06.24(출처=진상조사 보고서, 편집=조주형 기자)

#2. 납북피해자 10만명 중 85%, 전쟁 직후 3개월간 납북···20대·30대 男 대다수

1950년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작성한 공보처 통계자료와 '6·25사변 피랍치 인사 명부(1952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통해 확인된 인사는 8만2천959명~8만4천532명 수준으로 파악됐다.

그나마도 이 자료는 전쟁 중 작성된데다 행방불명자는 반영되지조차 않은 수치다. 전쟁 중이었다는 점에서 민관에서의 수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과, 해당 수치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더욱 컸음을 알 수 있다.

'6·25사변피랍치자 명부·피랍치 인사 명부'와 '6·25동란으로 인한 피랍치자 명부·우리측안부탐지조회서' 등 9종의 명부에 따르면 납북 민간인 수치는 무려 9만4천121명에 달하기도 한다.

이 수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정리한 자료 중 하나로, 이를 기준으로 전쟁이 터진 직후 3개월 동안 무려 84.4%인 7만 9천401명이 집중적으로 납북됐다.

1957년 9월18일, 서울 종로구 운현동장이 발급한 납치자증명원.2021.06.24(출처=진상조사보고서,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1957년 9월18일, 서울 종로구 운현동장이 발급한 납치자증명원.2021.06.24(출처=진상조사보고서,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이를 지역별로 구분하면, 서울과 경기도, 충북에서 각각 ▲ 2만3천505명(25%) ▲1만7천822명(18.9%) ▲1만3천775명(14.6%) 등으로 집계됐다. 남녀 구분시 전체 9만4천121명 중 남성이 9만983명으로 96.1%를 차지했다.

연령별 납북자 구분 시 20대와 30대가 각각 5만3천992명(57.4%)·1만8천564(19.7%)으로 확인됐다. 전체 연령대 중 약 80%가 20대와 30대로 구성된 셈이다.

북한은 이들을 3개 부류로 구분했다. 제1부류는 '남한 내 저명인사'로, 북한의 체제 우위성을 선전하기 위한 활용 대상으로 이용당했다. 제2부류는 '남한 우익인사'로, 북한의 '적대세력'으로 분류당했다. 바로 '경찰·법조인·종교인'이다. 제3부류는 인텔리(Intelligence) 계층으로 분류돼 북한 체제를 위한 인적 자원으로 분류됐다.

즉, 이를 종합하면 북한은 6.25 전쟁을 일으킨 직후 3개월 동안 20~30대 남성을 집중적으로 기획납북했다는 뜻이다. 전쟁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들은 모두 北 김일성이 기획한 남침 전쟁의 도구로써 이용당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이같은 실태에 대해, 우리나라는 이들 민간인 납북자들의 송환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을까.

기자는 지난2019년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6.25 전쟁 당시 있었던 정동파출소의 '반동분자 색출 문건'을 확인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2019년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6.25 전쟁 당시 있었던 정동파출소의 '반동분자 색출 문건'을 확인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3. 與, 납북 피해자 상대로 '실종자' 개정 추진···눈치보기 '급급'

지금까지 약 10여만 명에 달하는 전쟁 납북 민간인들의 생사는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21년 전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흩어진 가족'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본인 의사에 반해 북측에 남은 사람들은 없다"며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현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다. 지난 2018년 8월13일, 송갑석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박정·신경민·정재호·이훈·안규백·김병관·권칠승·박홍근·박광온·이수혁·심재권 의원 등은 '6·25전쟁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2014846)'을 발의한 바 있다.

문제의 개정안 내용에는 제1조부터 "'납북자'라는 표현은 북한 측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단어"라면서 "실제 장관급 회담 등 실무회담에서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식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납북자'의 표현을 '전시실종자'로 변경"할 것을 담았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정 의원(사진=연합뉴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정 의원(사진=연합뉴스)

그들은 "법률상의 용어로 인한 남북관계에서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납북'이라는 용어를 남북관계의 충돌요소로 봤다는 풀이가 가능한 대목으로, 발의 직후 공분을 불러일으킴에 따라 철회 조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에서 발의한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100898)'을 비롯해 조태용·신원식·김기현·한기호·하태경 의원 등이 내놓은 개정안 등은 1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금까지의 취재를 종합하면, 더불어민주당계의 범여권이 국회 과반 이상 의석 수인 180여 석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정작 헛바퀴를 돌고 있는 셈이다.

기자는 지난 2019년 9월 경기도 파주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다녀왔다. 기념관은 임진각의 평화랜드와 마주하고 있어 평화공원에는 여행객들이 가득했지만, 정작 기념관에는 관람객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2019년 9월 경기도 파주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다녀왔다. 기념관은 임진각의 평화랜드와 마주하고 있어 평화공원에는 여행객들이 가득했지만, 정작 기념관에는 관람객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4. 임진각 평화공원과 달리 외면받는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잊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6.25전쟁 납북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해지고 있을까.

기자는 2년전인 2019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주기적으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53'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직접 다녀왔다.

지난 1월17일까지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 여파로 무기한 휴관을 반복해왔다.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파주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즉결처분자 명단'이라고 쓰여진 문건 사료를 확인했다. 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파주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즉결처분자 명단'이라고 쓰여진 문건 사료를 확인했다. 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 위치한 임진각일대에는 평화랜드와 평화공원이 있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았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거의 없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점에서 '6.25전쟁납북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이 엿보였다.

이에 펜앤드마이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전시된 납북피해자와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이 서린 사료(史料) 사진 일체를 공개한다.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피해가족들이 쓴 편지 사료를 확인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피해가족들이 쓴 편지 사료를 확인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통해 전쟁 당시 모습 일부를 확인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통해 전쟁 당시 모습 일부를 확인했다.2021.06.24(사진=조주형 기자)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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