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립(而立)의 야당 당대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기대, 불안, 시기, 질투에서 맨 끝으로 가면 적대와 혐오까지 각양각색인데 요약하자면 크게 둘이다. 하나는 국회의원 경험도 없는 그의 등장이 우리 정치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는 기대감이다. 둘은 그 기대의 반대편, 그늘이 지는 부분으로 경험 부족에 따른 실수다. 우려하는 목소리는 생물학적 연령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젊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 말을 직역하면 못 믿겠다는 얘기다. 경륜 없이 어떻게 대선이 걸린 정치를 끌고 나갈지 모르겠다는 기성세대의 불만 가득한 속내가 담겨 있다. 그런데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36살 당대표의 등장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필연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세대나 자신이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시기가 있다. 이전의 기득권 세력이 뒤로 물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누구는 2017년의 탄핵 사태가 한국 사회의 한 축이었던 산업화 세력이 밀려난 시기라고 하는데 소생의 생각은 좀 다르다. 산업화 세대 용도 폐기의 시작은 2017년이 아니라 1987년이다. 민주화 세력이라고 부르든 적화통일 운동 세력이라고 부르든 간에 1987년 이전까지 내내 얻어터지기만 세대가 비로소 한국 정치라는 링 위에 당당하게 선수로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미 산업화 세력을 난타했으며 2017년 탄핵사태는 산업화 세력 퇴장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그게 아니라면 탄핵을 막았겠지요?). 마찬가지로 민주화세력이 용도폐기된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가 아니다. 그 역시 새로운 세대가 그 승리를 확인하는 절차였을 뿐 도전은 그보다 한참 전이다. 2012년 총선에서 지금 대통령과 맞붙었던 손수조를 기억하시는지. 그게 바로 지금 당대표를 아이콘으로 하는 세대의 첫 도전장이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은 시기와 운때가 맞아야 한다. 손수조는 너무 빨리 온 이준석이었고 당연히 패배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맷집도 내공도 단단해진 그 세대가 10년 새 확 바뀐 전 지구적인 변화와 함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듣기에 불편하신가. 언제나 패턴은 같았다. 농업 사회 구성원들은 산업화 세력이 불편했고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이 편치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이다.

신드롬이 아니다. 시작이다.

36세 당대표를 깎아내리는 최악의 표현이 신드롬이라고 소생은 생각한다. 신드롬은 일시적이고 예외적이며 일부인 동시에 병리적인 현상이다. 오죽하면 저 ‘어린 것’이 당선됐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준석의 등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드롬이 아니다. 현상도 아니고 다시 말하지만 당연하며 필연적인 시작이다. 10년 전 한국은 이런 사회가 아니었다. 스마트 폰이 지금처럼 사회생활 전반을 장악한 시대도 아니었고 A. I니 로봇이니 4차 산업이니 이런 말도 낯설었다. 당시에 가상 화폐를 예측했다면 그건 초능력이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가. 586세대를 전후로 하는 연령대는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다. 아니 당연하다. 50대인 내가 세상의 변화를 훤히 꿰뚫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20대를 알고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기다. 그것은 2-30대가 내 세대의 고민과 생각을 절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세상이 그들 편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그들과 함께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세상을 나한테 다시 맞추려는 시도를 역사에서는 ‘반동’이라고 부른다. 공산당이 즐겨 쓰는 반동분자의 그 반동이다. 기성세대는 2-30대를 통계로만 이해한다. 2-30대의 고통과 불만을 문자로만 해석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도 아팠다고 말하는 건 최악이다. 우리는 그 세대를 모른다. 어느 세대나 감당해야 할 고통이 있으며 그 고통의 해결 역시 그 세대의 몫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연한 결론을 낸 것이고 행동을 개시한 것뿐이다.

세대교체는 역할 교체다

물론 소생 역시 수감된 대통령에게 던지는 당대표의 언사가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당직자들을 시험 봐서 뽑겠다느니 대변인을 경쟁으로 선발하겠다느니 글쎄올시다 싶은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게 36살 당대표의 발목을 잡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며 그 실수를 감내하는 것은 우리 전체의 몫이다. 실수할 것은 뻔하고(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걸 감싸고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의 몫이다.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세대교체는 물갈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주연 했던 사람이 조연으로 물러나 무대를 같이 떠받치는 역할의 교체가 세대교체다. 너무 거창하게 이야기하다보니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다. 당신이 이제 환갑을 넘겼다 치자. 36살 먹은 아들이 혹은 딸이 이제는 자산 운용을 은행예금에서 해외주식 투자나 선물 거래 등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 하면 네가 뭘 알아 하며 무시할 것인가. 다는 아니더라도 자산 중 일부는 굴려보라고 맡길 것이다. 그거랑 비슷하다.

세대 간 동맹을 받아들일 시간

예전 칼럼에서 우파가 살아남고 싶다면 세대 간 동맹을 맺으라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이 그때다. 시간이 기성세대의 편이 아니기에 마땅히 동맹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문제가 실업과 주택 문제라면 기성세대가 겪을 문제는 노인 빈곤, 질환 등의 문제다. 이걸 같이 풀어야 한다. 동맹도 시기가 있다. 그 시기 놓치면 둘 다 손해다. 이렇게 말해도 36살 나이를 못 믿겠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그 때 뭘 했나 돌이켜보시라. 아마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투성이일 것이다(소생은 그렇다. 생각만으로도 민망해서 죽고 싶다). 36살 당대표는 메시아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다. 그냥 그 또래 청년일 뿐이다. 해서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실수와 오류를 허許하라. 완전무결을 요구하지 말라. 개인적인 바람도 좀 있다. 어쨌든 젊다는 것은 무기다. 눈치 보지 말고 좀 질러줬으면 좋겠다. 여당과 대화 하다가 잘 안 풀리면 “역시 못 알아들으시는군요.” 하면 그만이다. 구조상 잘못은 다 나이 든 여당이 뒤집어쓰게 되어있다. 대선 관리만 할 게 아니다. 국회 개혁 같은 의제도 좀 던졌으면 좋겠다. 가령 국회 회의장 축소 같은 거다. 소생은 우리 국회에서 고성이 오가는 이유가 서로간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듣는 상대를 배려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보니 노래방에서 불태워야 할 열정을 회의장에서 발산하고 결국 성대결절로 고생한다. 영국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옆 사람 시선 때문에 톡이나 문자 같은 거나 멋대로 하지 않는 정도 거리면 좋겠다. 그것만 해도 기성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짜증나는 뉴스의 절반은 줄일 수 있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건투를 빈다. 진심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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