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1년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둔 여야의 정치 일정의 진행은 대선을 통한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대를 모으면서 각종 정치적 논의가 촉발되고 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나 세대 교체 논의가 각광을 받는 것은 그동안의 보수 진보 또는 중도라는 정치 진영을 전제로 한 세력 구도가 퇴락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진영으로서의 보수 진보의 대립 구도라는 설명이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 더러 현실에 대한 타개책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설득이 어려운 것 같다. 정치적 지향이 보수와 진보 그리고 중도로 간단히 구분되지 않고 다른 가치와 이익의 혼합으로 인해서 세분화되어 나누어져 있음이 현실이지만, 양극단으로 갈려서 대립하는 경우에는 대립되는 분파의 가치를 상대방에게 부여함으로써 대립 진영으로 구분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진영을 구분하고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반대 편이다. 양자로 갈려서 대립하는 진영이 서로 반대되는 사회적 가치를 정확하게 지향하고 있기 보다는 대립되는 진영을 위한 대립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도가 퇴락한 현실에서 국민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지만 그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하는 상황은 가치의 투쟁에서 권리의 투쟁, 이익을 중심으로 한 투쟁으로 접어든다. 이익 갈등의 논의에 있어서도 과거의 계급적 대립의 구도가 현실적이 아니한 이상은 자기 또는 소속 집단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익의 대립구도로 나아간다. 이러한 이익의 대립의 장에서 어떠한 가치가 이를 대변하지 못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은 새 인물의 등장이나 세대 교체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기치를 내세운 진영의 정치적 자원이 소진된 상황에서 나오는 현상일 것이다. 각기 다른 경험을 지닌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있지만 모두를 아우를 수는 있는 가치가 없어진 상황에서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연 현상에 따른 세대 교체를 요구하게 되는 것 같다.

가치의 투쟁이 아닌 이익의 투쟁을 초래한 변화에의 요구가 있는 상황을 현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것은 지금 벌어진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타개책을 구하는 것 보다도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문제 상황을 거부하고 항상 과거의 구도에 기반한 주장을 현실에 투영하여 마치 새로운 것 처럼 포장하고 제시하기 마련이고 사실상 과거의 투쟁이 반복되기 십상인데 이를 통해서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의 세력 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마련이다. 모든 현재의 투쟁을 과거의 투쟁으로 포장하는 것은 언제나 사용되어 온 간편한 대응책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현실의 투쟁의 상황 자체를 거부하면서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표현으로 모든 상황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의 출발점은 바로 “오늘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고, 나 때는이 아니라 “지금은”이라는 관점이어야 하겠다.

현실은 여러 세대의 다층적인 경험의 구조로 되어있다. 대한민국 건국 세대가 겪은 혼란과 이어진 전쟁, 산업화 세대가 겪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황, 민주화 세대가 겪은 권위주의 통치와 이에 대한 극복이라는 건국 70년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은 각 세대의 체험으로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오늘의 사회주도계층인 50대인 소위 586세대의 청년기의 80년대의 상황이 그 세대의 중심적인 사유를 구성하고 있어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사회 전반적인 미디어화 현상, 2번에 걸친 금융위기와 펜더믹 시대라는 변화도 이를 겪은 세대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현실에 대한 생각을 구성한다. 국내적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겪어온 여러 세대를 하나의 가치로 모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정치 세력이 붕괴되었을 때에 그 가치의 혼란 속에서 각 세대의 경험은 각자 다른 세분화된 진영을 만드는 것 같다. 대한민국사는 하나이지만 역사도 분열되어서, 건국을 부정하는 흐름과 산업화를 부정하는 흐름 그리고 민주화를 부정하는 흐름까지 그동안 하나로 진행되어 오던 대한민국사가 시간별로 사건별로 분할되어 각자 선택한 분파와 진영의 역사로 되고 하나로서의 대한국민이라는 정체성은 무너지고 있다. 여기 더하여 세계적 흐름을 따라서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체성 정치 그룹의 대두로 인한 정치적 진영까지 분화되어 있다.

사회적 가치가 분열된 정체성으로 갈려진 분파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분할이 되면 정치에서 남은 것은 수단으로서의 정치기술밖에는 없다. 하나의 국가 지향으로서의 국민정체성이 무너지고 정치 진영도 이러한 현실을 따라서 정파적으로 분열되면서 표를 얻기위해서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현상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민주공화정의 전세계적인 위기 상황의 현상이기도 하다. 권력을 얻기 위한 각 분파의 투쟁은 각자가 내세우는 가치가 분파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선전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자신이 추구하지도 아니한 가치를 단지 대외적인 선전으로서 이용하는 프로파간다의 기술이며 자기 분파를 유지하기 위해서 구성원을 조직하고 조종하는 기술이다. 미래의 기술을 인간을 조종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보면서 모든 것이 정치 문제가 되지만 사실은 정치가 사라진 미래 사회의 정치적 환상을 논한 자끄 엘륄의 지적을 상기하게 된다. 오늘의 정치는 정파간의 정치적 기술로 승부를 겨루는 장이다.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략이 없는 것은 기존 세력 구도에 의해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 그리고 새로 성장한 정체성 그룹의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들이 균형 상태에 있는 현실일 것이다. 어떻게 현실을 타개하여 앞으로 나아갈 지에 관한 정치적 자원이 소진된 상황에서 남는 것은 인물 교체와 세대교체주장 밖에는 없는 지도 모르겠다. 자원 고갈의 상황에서는 달리 아무 것도 제시하지 못한다. 세대 교체에 의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가지않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청년 세대들이 공정이라는 가치를 주장해 왔지만 그 것은 어떤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변화에 대한 요구일 것인데, 청년들이 내건 공정이라는 요청을 주류가 된 정치 세력이 반대파를 숙청하는 것으로 답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대 교체나 새 인물의 등장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다시 과거의 구도에 따라서 답을 하거나 나 때는 말이야라고 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던져진 문제에 대해서 현실을 인정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겠다. 무엇보다도 투쟁의 장이 현실화된 것 자체를 수긍하여야 겠다. 비혼세대의 등장으로 현실화된 인구 소멸의 문제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지금은 선택을 해야하는 마지막 시기가 아닌가 싶다. 현실에 마주치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과거로부터 강을 건넜고 다시 너머의 강가로 돌아갈 수 없다. 강가에 머물러 건너온 강 너머를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돌아가는 배를 불태우고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는 없다. 어쩌면 불태워 버릴 배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경우일 수 있다. 돌아갈 배가 없는데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배를 상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불태워버릴 배 조차도 없는 그런 현실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된다. 앞으로 나가면 무엇이 올 지 누구도 모르지만 앞으로 가야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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