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6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케네디국제공항(JFK)에 도착,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6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케네디국제공항(JFK)에 도착,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2일(한국시간) 새벽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 이후 나흘 만인 26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한 박지원 국정원장의 행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두고 ‘북한통’인 박 원장이 북한과 접촉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대북정책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박 원장이 북한 관련 후속조치를 조율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기말 문 대통령의 ‘무리수’ 우려돼....정부 고위당국자들 발언도 헷갈려

백신지원을 고리로 삼아 냉각된 남북 및 북미간 대화 채널을 재가동시키려는 게 방미목적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행정부가 이미 백신지원을 제안했으나 북한이 단칼에 거절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박 원장이 좀 더 파격적인 카드를 미측과 조율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임기 말의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전에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가능성도 우려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이미 수차례 대남 메시지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가 실속없는 행위였다는 비난을 거듭해왔다.

김정은은 차기 정권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박 원장의 방미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해석도 많다. 이 같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관련 발언이 불일치하는 현상마저 빚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방미 목적 두고 횡설수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두 수장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미국 방문이 ‘대북접촉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두 장관은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박지원 국정원장의 미국 방문을 묻는 외통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의 질문에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인영 장관은 ‘박지원 국정원장의 미국 방문이 북한과 접촉하기 위한 것이냐’는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아는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연이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를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부분들도 굉장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해석하기조차 힘든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 의원이 재차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북한에 설명하려면 국정원장만이 아니라 정부 외교안보라인 인사 전부 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반문하자, 이 장관은 “우리 정부 안에서 외교안보팀의 팀워크는 굉장히 완벽하다”고 말했다. 박 원장의 미국 방문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답과는 완전 모순되는 ‘팀워크는 완벽하다’는 답을 내놓음으로써, 스스로 혼돈에 빠진 듯한 상황이 연출됐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대북 백신 지원 논의 가능성 부인 안해

정의용 장관도 ‘박 원장 방미가 한미정상회담 후속조치와 관련 있느냐’는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의 질문에 “박 원장 방미 계획은 오래 전부터 계획돼 있던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 장관은 “시기적으로 대통령 방미 뒤 바로 시행됐지만 이는 미 정부 당국과 우리 국정원 간 협력 차원”이라면서도 “이번 국정원장의 방미가 한미정상회담 성과를 바탕으로 진전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 차원의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구체적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어떻게 관여할 것이냐는 논의는 있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논의는 있었다’는 답변은 ‘박 원장의 방미가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제기가 어느 정도 사실임을 반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욕 도착한 박지원 원장은 기자들 질문에 입 닫아

국정원 측은 박 원장의 방미 일정이나 북한 관계자 접촉 여부 등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요 의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박 장관이 워싱턴이 아닌 뉴욕을 먼저 방문한다는 점에 이목이 집중됐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뉴욕에 있는 북한대표부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26일 오전 11시경(현지시간) 뉴욕 케네디국제공항(JFK)에 도착한 박 원장은 몰려든 기자들이 방미 목적, 북한 측과의 접촉 여부 등에 관한 질문을 했으나 일체 답변에 응하지 않았다.

박 원장의 무응답은 출국시에도 마찬가지였다. 26일 오전 9시52분(한국시간)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할 당시에도 박 원장은 방미 관련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국정원도 기관장 일정에 관한 반응을 일절 내놓지 않아, 더욱 무성한 추측을 낳았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 “남북문제 푸는 데 실무적 의견 나눌 듯”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원장의 방미 시기가 한미정상회담 직후라는 점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논의를 진전시킬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2018년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과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존중해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오찬간담회에서 정의당 여영국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오찬간담회에서 정의당 여영국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의 여영국 대표는 지난 2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가셔서 누구나 예상컨대 남북 문제를 푸는 데 뭔가 실무적 의견을 나누고 오지 않을까, 이런 예상들은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그 다음에 정상회담으로 갈지, 남북간의 우선 군사공동위원회가 될지 예측을 할 수 없지만, 조건만 형성되면 급물살을 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 대표는 또 "그 분(박지원 국정원장)이 남북 간의 여러 역할들을 그동안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충분히 그 문제에 대한 어떤 협의가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예측을 한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 백신 지원 제안은 이미 퇴짜 맞아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박 원장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논의를 북한 및 미국과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임명을 발표한 성 김 미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박 원장의 미국에서의 구체적인 동선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비롯한 미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한반도 정세에 대한 판단을 공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산 백신의 북한 지원 문제도 논의 테이블 위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앞서 CNN은 지난 11일 2명의 미국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돕기 위한 코로나 백신 및 다른 인도주의 지원에 열려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박 원장의 방미 이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6월께 방미를 조율 중이라는 점도 ‘북한에 대한 백신 지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 "백신이 좀 부족해도 함께 나누는 게 더 진짜"라며 백신 공유를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이 다음날 외부 지원을 거부해, 그 계획은 무산됐다.

바이든 행정부도 백신 지원 등을 위해 두 차례나 대북접촉을 시도했으나 모두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박 원장의 방미는 백신 지원을 뛰어넘는 깜짝 제안을 성사시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