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그리고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한미동맹은 미증유의 위기를 맞았다. 한미동맹 위기란 미국의 입장에서는 세계전략과 동북아 전략에서 한국이 동반자가 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되겠지만, 한국에게는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줄 나라가 없음을 의미한다. 동맹의 위기를 불러온 4대 요인으로는 미·중 신냉전, 북한의 동맹 이간, 트럼프 대통령의 신고립주의, 문재인 정부의 친북(親北)·친중(親中)·반일(反日)·탈미(脫美) 정책 기조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한국 정부의 좌파적 수정주의 정책기조는 동맹에 치명타를 안겨준 한국발 위기 요인이었다. 2021년 1월 20일 출범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식 신고립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국제역할 복귀와 동맹협력을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귀환(return of America)’을 공언하고 있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동맹이 건강성을 회복할지는 아직 의문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꼼수 외교

문재인 정부는 안보는 미국과 연합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안미경중’을 내세우고 미·중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를 해왔다. ‘돌이킬 수 없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외치면서 친북·친중 정책기조를 고수해온 문 정부로서는 그것이 동맹 약화를 우려하는 한·미 국민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변명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정치·군사적으로 급성장한 중국이 중화(中華)패권 시대를 열기 위해 서태평양,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곳곳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하는 시대다. 그래서 미중 간 무역 전쟁, 무기 경쟁, 정보 전쟁, 산업 전쟁, 반도체 전쟁, 코로나바이러스 전쟁 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신냉전 시대에 한국이 ‘양다리 외교’를 지속한다면 양쪽 모두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는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핀랜드화 현상(Finlandization)’이라고 부른다. 소련과 나치 독일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시도하다가 위기를 맞이했던 과거 핀랜드의 사례를 빗댄 말이다. ‘안미경중’이란 미·중이 전 분야에서 격렬하게 경쟁·대결하는 신냉전 시대에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이중 플레이를 정당화하는 허언(虛言)일 뿐이다.

평양발 한미동맹 위기요인

북한은 2018년 평화공세를 통해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한국을 중재자로 이용했고, 핵협상에서는 한국을 배제하는 ‘코리아 패싱’을 시도했다. 그 직전인 2017년에는 핵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기세로 미국에 핵위협을 가했고, 실제로도 화성14호, 화성 15호 등 대륙간탄도탄(ICBM)급 핵미사일을 선보였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핵게임은 늘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멈추는 벼랑끝 핵게임(Nuclear Brinkmanship Game)이다. 즉, 실제로 미국과의 핵전쟁을 불사한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여론을 압박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손을 떼게 하거나 자신들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계산된 광기(狂氣)(Calculated Madness)’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핵전략 이론으로 보면, 핵무기를 많이 가진 나라와 적게 가진 나라 사이에도 의지의 균형(balance of resolution)과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성립할 수 있다. 즉,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살상 위력으로 인하여 소국이 가진 핵무기기로도 강국에게 ‘인내할 수 없는 수준의 피해’를 입히거나 보복을 가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피침시 반드시 핵보복을 가하겠다는 의지를 상대방이 믿도록 만드는 경우, 핵무기를 많이 가진 강대국도 약소국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이것이 북한이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탄(SLBM) 개발에 광분하는 이유다. 이런 상태의 미·북 간 핵대치는 한미동맹을 이완·해체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미국 국민은 “왜 우리가 북한과 같은 소국으로부터 핵위협을 받아야 하는가”를 반문하게 되고, “이런 핵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지켜주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당연히, 한국 정부의 친북·친중 기조는 미국 내 이런 여론을 조장하는 촉매다. 요컨대, 북한의 핵게임은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는 효과(decoupling effect)를 발휘하며, 북한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위협하는 북한 중단거리 전술핵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미사일, SLBM, 북한이 개발을 천명한 극초음속 투발수단 등도 비슷한 효과를 유발한다. 변칙기동을 하는 KN-23이나 극초음속 투발수단에 실려 날아오는 핵탄두는 한국군의 미사일방어체계(KAMD)나 주한미군이 구축한 사드(THAAD) 체계로 막아내기 어려우며, 예측할 수 없는 발사 지점과 발사 각도로 날아오는 SLBM도 방어가 어렵다. 주한미군이 북한의 핵공격 위협에 노출되고 한국군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미국 국민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트럼피즘(Trumpism)과 미국발 동맹위기 요인

트럼프는 대통령은 ‘세계의 안정과 질서를 위협하는 위협 세력’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강력한 견제정책을 펼쳐 한국의 우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현란한 외교술로 김정은을 효과적으로 다룬 트럼프가 재집권해야 북핵을 해결하고 평양정권의 붕괴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한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이 부정 의혹에 휩싸이면서 한국의 우파들은 미국 대선의 부정이 밝혀지면 2020년 한국 총선의 부정 의혹을 밝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트럼프를 성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미동맹의 건강성에 관한 한 트럼프 정책이 미친 영향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는 지지자와 반대자를 뚜렷하게 구분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그것과 닮았다. 사업가에서 대통령으로 변신하면서 트럼프가 동원한 지지세력의 주류는 국제질서의 안정과 세계평화를 위한 미국의 희생에 불만을 느껴온 중하층 백인들이었고, 트럼프가 외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트럼프 행정부 동안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하는 세계경찰이 아니었다. 세계질서의 관리자인 미국이 “나부터 살고 보겠다”는 식의 신고립주의로 빠져들면서 미국 중심적 글로벌 거버넌스가 무너지고 각자도생(Self-help) 체제가 부상하는 조짐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미국이 호구가 되는 세계경찰은 그만하겠다”고 했고, 취임 후에는 한국, 독일, 일본, 나토(NATO) 등에게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했으며, 한국에게는 분담금을 다섯 배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expensive) 도발적인(provocative)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고, “주한미군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다”고도했다.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통북봉남(通北封南) 언행과 동맹폄하 발언은 반복되었다. 이렇듯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하게 거래적 관점에서 동맹을 다루었고, 이것이 한미동맹에 끼친 악영향은 적지 않다.

서울발 동맹위기 요인

그럼에도 한미동맹을 반신불구 상태로 빠뜨린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문재인 정부의 ‘통북(通北)·친중(親中)·탈미(脫美)·반일(反日)’ 정책기조였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 요구를 거부한 채 중국에게 THAAD 추가 배치 포기,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 편입 포기, 한일 안보동맹 포기등을 내용으로 하는 ‘3불(不)’을 약속해 주었고, 한일갈등을 촉발하여 한·미·일 안보공조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으로 삼고자 했던 미국을 낭패스럽게 만들었다. 핵문제에 있어서는 ‘평양정권의 대변자’라는 말을 들을 만큼 북한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한국 정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미국 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국민들이 배신감과 함께 한미동맹에 대한 회의감을 키워왔다. 문 정부는 지금도 4자 안보대화(QUAD) 동참과 한미일 안보공조 복원을 원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미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한 이래 대북억제의 요체라 할 수 있는 한미 연합연습‧훈련을 중단 또는 축소해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실시되어왔던 키리졸브(KR), 을지프리덤가디언스(UFG) 등 연례 전시(戰時) 연습은 명칭이 바뀌면서 껍데기만 남았고, 연합 야외기동훈련(FTX)인 독수리(FE) 훈련, 연합 상륙훈련인 쌍용 훈련,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비질런트에이스(Vigilant Ace) 훈련 등도 대부분 사라졌다. 물론, 연합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에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도 한 원인이었지만 평양정권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온 한국 정부에게 연합훈련 축소·폐지를 위한 구실이 된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이와 함께, 문재인 정부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한미군을 취약하게 만든 ‘9·19 군사합의’에도 서명했다. 모두가 북한에게 ‘수지맞는 장사’였다.

2019년 8월 22일 한국 정부가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 판결 이후의 불거진 한·일 갈등을 이유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발표한 것도 한미동맹에 치명상을 주었다.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북핵 위협에 공동 대처하는데 필요한 장치로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정보력을 이용해야 하는 한국에게 더욱 절실한 문제이며,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삼국 간 안보공조의 복원을 원하는 미국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지소미아 문제는 한국 정부가 파기가 효력을 발생하기 직전에 취소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문 정부의 실세들이 벌인 반일 켐페인과 ‘죽창론’은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동맹까지 급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가운데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의 임기내 전환’을 밀어부친 것도 동맹을 이완시킨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현 전작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 체제는 전쟁 발발시 한미 대통령과 합참의장의 협의 아래 한미군이 단일 체제 하에서 미군의 장비와 정보력을 함께 이용하면서 싸우도록 대비해놓은 것이며, 이를 실행하기 위해 1978년에 창설된 것이 한미연합사(CFC)이다. 이후 노무현 정부의 주도 하에 한미 양국이 2012년부터 전작권을 분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전작권 전환 반대 천만명 서명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명박 정부가 2015년으로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조건 충족시 전환’에 합의함으로써 전작권 전환 시점을 사실상 무기 연기했다. ‘연합방위를 주도하는 한국군의 핵심능력 확보,’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 대응능력 확보,’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안보환경 조성’ 등이 그때 한·미가 합의한 조건들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기느느커녕 북핵 문제가 오히려 악화된 상태에서 임기내 전환을 밀어붙이는 것은 현 전작권 체제의 해체가 오랜 숙원인 평양 정부를 도우면서 ‘동맹 사망’ 선고를 재촉하는 꼴이었다.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조건 미충족’을 이유로 문 정부의 전작권 조기 분리 요구에 제동을 건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동맹 재건, 한국 국민의 판단에 달렸다

미국은 동맹국의 가치를 평가할 때 통상 다섯 가지의 기준을 사용하는데 이념적 상응성(ideological competibility), 전략적 가치, 공동주적의 존재 여부,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의 참전, 국방비 규모 등이 그것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기준들에서 심하게 이탈했다. 문 정부가 ‘통북(通北)·친중(親中)·탈미(脫美)·반일(反日)’ 기조를 고수함에 따라 한미 정부 간 이념적 상응성은 상충성으로 바뀌었고, 취임하자마자 헌법 제4조가 명시한 ‘자유민주질서 하의 평화통일’에서 ‘자유’를 삭제하는 개헌을 시도한 것을 시발로 국정권과 군의 대공(對共) 기능 무력화, 축소지향적 국방개혁, 섣부른 종선선언 추진 등 문 정부가 쏟아낸 친북·친중·친사회주의적 정책들이 한국 국민과 우방국들을 놀라게 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이 이 전략에 불참하면서 미국이 평가하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도 상당히 감소했고, 문 정부가 북한 정권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공동주적 개념도 희미해졌다. 또한, 한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유의미한 규모의 전투부대를 파병하여 미국의 전쟁을 도운 적이 없으며,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GDP대비 2.5% 수준인 한국의 국방비에 대해 미국이 충분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도 않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 건강성 회복에 대한 양국 국민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이든식 동맹 강화는 미국의 일방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과거 방식과는 달리 동맹국의 충분한 기여와 역할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의 문재인 정부나 이후의 한국 정부가 이 기대에 부응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한미동맹의 혼수상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한반도에 전쟁이 나더라도 미국의 참전을 장담할 수 없고 동맹 포기를 의미하는 ‘제2의 애치슨 라인’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점이다. 물론, 지난 5월 21일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는데 다소의 도움이 되었다. 회담 후에 나온 공동발표문에는 ‘철통 동맹’을 재확인하고 코로나바이러스 협력, 인권, 기후변화, 사이버 안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쿼드(Quad) 안보대화, 북한의 대량살무기 등 광범위한 이슈들을 언급하고 중요성을 공감하는 표현들을 담아냈다. 그럼에도 중국과 북한을 주 위협으로 명시하고 확고한 협력 방향을 제시한 4월 16일 바이든-스가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비해 구체성과 방향성이 부족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면전에서 6·25 전쟁에서 중공군과 싸운 노병에게 훈장을 주는 방식으로 중국이 공동위협임을 상기시키는 방식을 취해야 했다.

모든 것을 넘어, 한미 양국의 국민들은 지난 4년 동안 문재인 정부의 좌성향 정책과 동맹파괴 조치들을 지겹도록 지켜보았다.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임기가 끝나가는 문 정부의 뒤늦은 ‘동맹 예찬론’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한국 국민의 판단을 지켜볼 것이다.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눈 외교적 수사들에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다음 대선에서 드러날 한국 국민의 판단을 기다릴 것이다. 한국 국민이 친북·친중·반일·탈동맹 정책을 원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그것으로 한국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도 있다. 동맹의 해체는 미국에게 ‘상당한 전략적 손실’이 되겠지만, 한국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가 될 것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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